#05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문제는 단순한 삶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단순하다는 것은 '단순무식'이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와는 다르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 품었지만, 복잡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고 간단명료하고 직관적인 것이 단순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슬을 나는 단순한 삶의 상징으로 본다.
아무 색깔도 없는 맑음, 어떤 선의 기교도 없는 단순함의 극치인 원, 작음, 짧음....
그런데 이슬이 가진 속성들 모두 온 우주가 함께 더불어 작용하지 않으면 만들어낼 수 없는 작품이다.
겨울에 피어나는 꽃 동백,
나는 그중에서도 겹꽃이 아닌 홑꽃을 좋아하고, 붉은 동백보다는 흰 동백을 좋아한다.
꽃은 단순하지만 단아하고, 화사하지 않지만 그 여느 색보다 진하게 마음을 물들인다.
흰 동백 한송이에도 온 우주의 섭리가 들어있다.
동백으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들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다른 꽃들보다 더 갖추지 않아 단순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갖췄음에도 단순한 것이다.
이럴 때 비로소 단순한 삶은 소박한 삶, 자발적 가난과 연결된다.
첨단과학의 종결은 버튼 하나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경지일 것이다.
과거에는 너무 복잡해서 기술자들이 다룰 수 있었던 것을 아이들이나 노인들도 쉽게 다룰 수 있도록 단순화시키는 것이 과학기술의 발전사다.
버튼 하나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단순화되었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다.
그 안에는 각종 시스템들이 요긴하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사용하는 사람은 그 시스템들이 얼마나 복잡한 과정들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단순한 삶이란, 단지 도시를 포기하고 시골을 택한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삶은 사실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단순한 삶은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렌즈 중에서 가장 쨍한 사진을 만들어 주는 렌즈는 초점거리가 고정된 단렌즈다.
불편하지만, 단렌즈만이 주는 매력에 빠지면 그것만 고집하게 된다.
불편하지만, 단순한 삶이 주는 매력에 빠지면 그 불편함을 감수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불편함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물론, 환경이 주는 영향들을 모두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단순한 삶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것과 복잡한 것은 같아 보이지만 다르다.
복잡한 것이지만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우리를 단지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라면 비워 버리면 될 일이지만, 복잡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비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만들어가는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삶에는 지혜가 필요하고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아닌지 구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끼의 삭은 겨울에 피어난다.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피어나는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지의류 식물이다.
오래된 돌이나 나무에 붙어 자라고, 서서히 그들을 흙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하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 소중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수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줄기와 포자로 자신의 모든 것들을 단순화시켰다.
다 품었으되 아무것도 품은 것 같지 않은, 다 가졌으되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것 같은
그래서 단순한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