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이 말은 단지 작아서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생명은 죽음과 대치되는 말이며, 그래서 살림이다.
맘몬의 사회는 큰 것을 추구한다.
거대담론이 아니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진리는 거창하지 않으며 아주 단순하고, 작다.
생명을 품고 있는 한, 작은 것은 결코 작지 않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철학적인 사색이다.
삶의 문제로 돌아오면 작은 것은 보잘 것 없고, 보잘 것 없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아기 예수도 사실은 가장 낮은 곳, 천한 곳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사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평등, 민주주의 같은 개념은 17-18세기 계몽주의 이후에 생겼다.
왕이나 황제, 권력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별 볼 일 없는 존재로서 평생 자기가 태어난 자리에서 지배계급을 위한 노예로서의 삶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역사를 누가 만들어 왔는지.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은 지배자였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역사를 이끌어온 주체는 보잘 것 없는 천덕꾸러기들, 작은 자들이었던 것이다.
봄은 거창한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로부터 온다.
꽃다지 같이 작은 꽃, 흔하디 흔해서 봐주는 이 없지만 그들은 자기를 피워내는 데 열중한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미움받을 용기>에서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노심초사하지 말고 자기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누군가에게는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오용되지 않는다면, 남이 보기에 아름다운 삶이 아닌 자신이 보기에 아름다운 삶을 피워낼 수 있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가?
어쩌면 이들은 피어나 단 한 번도 누군가 눈 맞춤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군가와 눈 맞춤하거나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것은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작은 웃음을 줄 수 있다면,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살림에 동참하는 일이다.
'살림'은 '살리다'의 명사형이니, '죽음'과 대척점에 선 말이다.
죽음의 시대에 살림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어쩌면 이 시대의 빛이 되는 일은 모두 작은 일이다.
그러나 그 작은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생명을 품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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