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낸 아픔이 깊으면 깊을수록 인생의 향도 깊어진다.
강원도 산골의 밭은 기나긴 겨울이 더는 남아있을 수 없을 만큼 완연한 봄이 되어서야 부드러워졌다.
꽃샘추위가 남아있어도 어서 봄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냉이며 씀바귀 같은 것들을 캐서 봄나물로 먹기도 하지만, 완연한 봄날의 백미는 3년 이상된 도라지와 더덕을 캐는 일이다.
강원도 추위를 이기고 자란 도라지는 목이 아릴 정도로 쓴맛이 나고, 더덕향은 하얀 진액보다도 더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봄날을 붙잡는다.
"더덕도 도라지도 왜 이렇게 향이 좋은 줄 아세요? 강원도가 추워서 그래요."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제법 굵은 도라지와 더덕 때문에 흥이 잔뜩 묻어있다. 아마 혼자서 일하는 중이었다면 십중팔구 콧노래가 절로 나왔을 터이다.
할머니가 도라지와 더덕을 캐시는 이유는 오랜만에 그곳을 찾은 내게 뭔가 손에 쥐어 보내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그토록 실한 것이면 내가 먹든지 팔든지 할 것 같다. 차마 아까워서 남을 주지도 못할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더덕을 깐다.
더덕의 진이 손에 묻어 손이 끈적거린다. 세 시간여 씨름한 끝에 더덕 4kg나 되는 양을 다 깠다.
애써 깐 더덕인데 아내는 바리바리 나눠 싸서 지인들에게 나누겠단다. 허긴, 요즘 젊은 주부들이 까지도 않은 더덕을 주면 언제 까서 요리를 해 먹을까 싶기도 하다. 거저 얻은 것을 나누는데도 이토록 아까운데 애써 농사지은 것을 선뜻 캐주는 할머니의 마음을 닮으려면 한참이나 멀었다.
봄이면 종종 냉이며 고들빼기, 씀바귀, 달래, 쑥, 망초 등을 해오곤 했다.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봄나물 해 드시고 입맛 좋아지시라고 해왔어요."했고, 어머니는 아들이 해온 봄나물을 다듬어 식탁에 올리셨다.
나름 효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나물을 손질할 수 없으신 연세가 되어 다듬는 일까지 내가 다 해야 할 때에서야 비로소 나물 다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들의 입맛을 찾아드린 다는 명목으로 사실 나는 그냥 봄나물을 하며 봄의 정취를 느낀 것뿐이다.
이후에는 봄나물을 할 때 더디더라도 씻어서 먹을 수 있도록 아예 다듬어가며 나물을 캔다. 더덕을 애써 다듬어 지인들에게 나눈 이유이기도 하다. 선물이라고 주었는데 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더덕을 다듬을 때마다 그 향기 깊은 이유를 헤아린다.
추위는 고난이다. 고난이 깊을수록 깊은 향을 간직하게 되는 더덕, 우리네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더덕 향을 맡으면 나는 눈물 젖은 빵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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