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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pr 07. 2016

그 짧은 봄날을 위해서라니

큰괭이밥의 피고 짐에서 삶의 의미를 배우다.

큰괭이밥


봄날, 숲을 거닐다 보면 숲의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작은 풀꽃들을 만나게 된다.

완연한 봄날, 퇴촌에 있는 나지막하지만 제법 계곡까지 있어 걷기는 만만치 않은 야산을 걸었다. 산이 깊지 않아 야생화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꽃은 아니었지만, 제법 많은 봄꽃들이 올라왔다.




봄에 피어나는 풀꽃들은 키가 큰 나무들이 이파리를 내기 전에 서둘러 피어나 씨앗을 맺고 계절의 뒤편으로 서둘러 사라진다. 게으름 피웠다가는 일 년의 기다림이 물거품 될 수도 있다. 


나무들은 그들의 꽃 피고 열매 맺을 때를 기다렸다 새싹을 내는 듯하고, 꽃은 화답이라도 하듯이 서둘러 피었다 지는 듯하다.


그렇게 숲은 더불어 숲이다. 


큰괭이밥


큰괭이밥을 만났다.

괭이밥보다는 꽃이 제법 크고, 꽃 색깔도 다르고, 꽃이 먼저 핀 다음 이파리가 올라온다.

둘 다, 이파리에 들어있는 옥살산이라는 성분이 신맛을 내는데, 고양이(괭이)가 배탈이 나면 괭이밥 이파리를 뜯어먹는다고 하여 '괭이밥'이라는 이름도 붙은 것이다.




그들이 막 피어날 즈음에 만나고 일주일 후에 그곳을 찾았지만 그들은 커다란 이파리와 씨앗주머니를 단채로 서 있었다.


화무십일홍 이라더니만,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도 얼마나 헛헛한지....

그토록 애써 피운 꽃인데 조금 더 머물다 가도 좋으련만, 백일홍처럼 백일은 아니더라도 보름 정도는 피었다 져도 좋을 터인데 하는 생각에 그들의 짐이 아쉬웠다.



그러나 이내 나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비록 짧은 시간 피었다 졌지만, 씨앗을 맺었고, 그 언제부터인지 모를 시간부터 그곳에서 피고 짐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군락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단 십일도 안 되는 시간을 위해서,
나는 과연 355일을 저토록 기다리며 인내하며
준비해 본 적이 있는가?'


더군다나 군락지라고 해서 그들이 온통 독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다른 풀꽃 친구들에게 바통을 이어주며 살아가니, 자연의 지혜가 실로 놀랍고 깊고 신비스럽다.



봄비가 밤새 내렸다.

이제 봄도 재촉하며 가려고 한다.

떠나려는 봄과 오는 봄이 함께 어우러진 봄날, 우리는 짧은 봄날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냥 짧아서 허무한가?

아니,
그 짧은 봄날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하는 그들의 삶이
거룩하지 않은가?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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