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수 Apr 09. 2016

나의 사진이 진지해진 순간

어느 날 새벽, 용눈이오름을 오르다 만난 사진가를 추억하다.

용눈이오름


제주도의 오름 중 백미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용눈이오름'을 꼽는다.

지금은 용눈이오름 주차장을 만들면서 용눈이오름 입구가 이전과는 달라졌지만, 주차장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오름의 서쪽 부근에서 돌무덤이 많은 곳으로 오름을 올라갈 수 있었다.


오름은 단 하루도 같은 풍경을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 도보 여행가에게 단 한 걸음의 기쁨을 충만하게 안겨주는 곳이다. 아니, 걷지 않고 고개만 돌려 보아도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 제주의 오름이다.


제주도를 다녀왔다면서 '오름'을 올라보지 않고 돌아왔다면 나는 또한 서슴없이 "제주의 속살을 못 보고 오셨군요."라고 말한다.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서쪽의 오름들


지금은 이 사진을 찍었던 곳에서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담아도 이 사진을 담을 수 없다.

단지, 사진의 속성이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이 아니다. 용눈이 오름 서편에 풍력발전기가 자리하면서 부드러운 오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뾰족한 직선의 날카로움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떠나 살다 용눈이오름이 너무 그리워 몇 해 만에 찾았다가 제주의 바람 소리가 아닌 날카로운 기계음에 신경이 거슬렀다.


도대체, 이 날카로운 소리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안타깝게도 그곳엔 오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었다.


용눈이오름 근처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들


그리고 몇 해 동안 그곳을 찾아도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곳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으며, 오름 사진을 담을 때에 그들의 모습이 조금만 나와도 모두 삭제해 버렸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모습조차도 겨우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를 떠난 지 10년, 점점 제주도를 찾아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지금도 나는 분노한다.

도대체 저런 발상을 한 이는 누구이며, 허가를 내 준 것은 또 누구인지 나는 분노한다.

언젠가 진정 제주의 풍광을 사랑하는 이가 저 풍력발전기를 없애준다면 나는 그를 영웅처럼 떠받들 것이다.


용눈이오름 동편으로 보이는 성산일출봉과 우도와 식산봉 등의 오름들


지난겨울에 친구들과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용눈이오름에 올랐다.

제주의 칼바람과 칼바람에 아우성치는 억새와 나지막하게 깔린 구름을 보면서 나는 십 년도 더 된 그날 새벽을 떠올렸다.


용눈이오름(2005년 9월)


일출을 담으려고 용눈이오름에 오르는 중이었다.

제주도에서 오메가의 형상을 한 일출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오메가 일출을 만나려면 '삼대가 복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고 '전생에 나라를 구한 일이 있으면'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새벽에 뜰에 서니  별빛이 성성했다.

성산일출봉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용눈이오름으로 부지런히 달려갔다.

그러나 어느새 자욱한 안개가 밀려오고, 성산포는 그냥 무채색 배경이 되어버렸다.


그냥 오름에 올라 '다랑쉬오름'이나 바라보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오름을 오른 중 언제부터 나왔있었을지 모를 사진가 한 분이 중형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우고 다랑쉬오름을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다랑쉬오름


나는 그를 담았다.

그리고 그 사진은 잊히지 않는 사진이 되었다. 그가 본 풍경, 그가 담은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그토록 이른 시간에 무엇을 보고 담기 위해 그곳에 오른 것일까?
아마도 그 무렵부터 나의 사진도 더 진지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이라는 것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사진을 담는가에 따라 그 가치도 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오름의 능선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용눈이오름에서



지난겨울 용눈이오름에 올랐을 때의 칼바람을 나는 잊지 못한다.

수없이 오른 용눈이오름의 날 중에서 가장 바람이 거센 날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그로 인해 더 깊게 용눈이오름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제주의 바람은 이런 맛이고,
억새의 소리는 그런 소리고,
찬바람을 견딘다는 것은 이런 맛이고,
그 모든 것들을 몸에 새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 어느 날 새벽에 만난 그 사진가를 추억했다. 그도 지금 여전히 잘 살아가면서 사진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면 좋겠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짧은 봄날을 위해서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