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수 May 04. 2016

낙화가 없으면 열매도 없다

# 떨어진 꽃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

철쭉의 낙화


꽃이 진다.

어찌 이리도 짧은가 싶어 슬프다.

그러나 그들의 낙화가 없다면, 그들이 떨어지지 않고 내내 피어있다면 덜 슬플까?


슬픔이나 죽음이 없는 인생은 빛날까?

오히려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은 슬픔이나 아픔 혹은 죽음 같은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존재라는 깨달음, 
그것은 우리의 삶을 허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지하게 만든다.

겹벚의 낙화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니다.

수정을 마친 꽃이 진 자리에만 열매가 맺힌다.

어떤 꽃은 무슨 까닭이 있어 수정을 마치기도 전에 떨어진 것일까? 그는 실패한 것일까?


아니, 피어난 꽃마다 모두 열매를 맺는다면 가녀린 가지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감당한다고 해도 열매가 너무 많아 자잘하고 볼품이 없을 터이다. 


떨어진 꽃들에게 감사를, 

수정도 하지 못하고 낙화한 꽃들에게 감사를 해야 할 이유다. 



낙화하는 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떨어져야만 할 때가 있다.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아픔, 인간의 한계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아픔의 상황에 처하게 될 때가 있다.


만일, 누구나 견딜만한 아픔이었더라면 아파할 일도 깊은 슬픔에 침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이겨낼 아픔인데, 그것으로 인해 불안해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다가 모든 것이 다 끝날지도 모른다는 심연의 아픔 혹은 슬픔에 처하게 될 때가 있다. 자포자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절망의 순간이 있기에 누군가의 아픔이나 슬픔에 대해 너무 쉽게 위로하지 말자. 


우리는 불행하게도 위로는커녕 손가락질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벚의 낙화


낙화가 없으면 열매가 없는 것처럼, 슬픔 없는 인생은 죽음일 뿐이다.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시련 없이, 슬픔 없이, 죽음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 슬픔과 시련을 낙화의 과정으로 생각하여 내 삶의 디딤돌로 만드는 것이다. 그때, 신도 우리의 편이 되어 우리를 위로해 주고, 우리와 함께 걸어가지 않겠는가?


떼죽나무꽃의 낙화


봄날이 간다.

바람이 없어도 낙화하던 꽃들이 여름날 태풍 같은 심술궂은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웃고 있다.
참 예쁘다.



그러고 보니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사람, 그 사람은 슬픔이나 아픔을 디딤돌로 삼은 사람들이었다. 슾픔과 아픔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를 주며 그들을 사육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더 깊은 삶의 향기를 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꽃이 진 자리에 벌써 열매가 맺혔다.
참 빠르기도 하지....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천히 걸어야 깊이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