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는 신을 골탕먹인 인간으로, 그 죄로인해 영원한 시간동안 바위를 산으로 올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대 신화를 현세에서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한직업이라는 다큐속에서 나오는 중국 '화산'의 짐꾼들 이야기입니다.
화산은 중국오악 중 하나로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무협소설을 좀 보신 분들이라면 이 화산이 익숙하시겠죠.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무협 속 화산파의 비기와 절공이 검술이었다면, 현세 화산이 지닌 절세신공은 바로 이 짐꾼들입니다. 60키로이상 나가는 짐을 지고 끝없이 이어진 험세를 오르는 그들의 인생에는 자연히, 섣불리 재단할 수 없는 '내공'이 존재합니다.
화산짐꾼에 대한 다큐 속에는 여러명의 짐꾼들이 나오지만, 단연 저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분은 '허티엔'이라는 이름을 가진 외팔이 짐꾼이었습니다. 탄광에서 일하다 사고로 한팔을 잃은 이 화산의 짐꾼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화산까지 흘러들어왔다합니다. 키로당 200원도 안되는 값에 60키로 등짐을 지고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화산을 매일 오르내립니다.
허티엔씨가 화산을 오르는 과정을 보다보면 여러가지 감정이 지나갑니다. 힘차게 산을 오르기시작한 초입에는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입니다. 그러다 산중턱즈음, 허티엔씨가 다리를 떨고 땀이 비오듯흐르는 모습을 보다보면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생깁니다. 저렇게 고생하는데 하루일당이 만원 이만원이라니..삶의 엄정함이 눌러대는 그의 작은 어깨가 애처롭습니다. 그러다 결국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여 짐을 내려놓을때 허티엔씨의 표정을 보면, 마치 평생 공부를 마치고 난 대학자의 고절한 풍모가 엿보입니다. 한 인간의 평생이 마치 하루로 축약된 듯한 모습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됩니다.
허티엔씨는 두 아들과 몸이 불편한 동생을 위해 화산에서 번돈 9만원을 전부 송금합니다. 10년넘게 등짐을 지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바람에 어깨에 옹이가 졌음에도 본인은 이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습니다. 가족들을 돌 볼 수 있는 돈을 벌게 해주는 화산에게 고맙다면서 말이죠. 이름 날리는 고승대덕들의 설법에서도 느껴지지않던 무언가가 그 미소에서 느껴집니다. 견식이 부족한 제가 보기에 허티옌씨는 이미 '돈오(頓悟)'한 사람이었습니다.
다큐 초반, 매일 60키로짜리 짐을 지고 험하디험한 산길을 오르는 짐꾼들을 보며 저것은 형벌과도 같은것이 아닌가. 신화 속 시지프스를 생각했었습니다. 만장의 업이 저 짐꾼들의 어깨에 얹혀있는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알베르카뮈의 시지프신화속에서 시지프스가 즐거움을 찾았듯이, 화산의 짐꾼들도 역경틈에서 인생의 무언가를 찾는것을 보면서 저의 짧은 생각은 변화하게됩니다.
'일보일경. 한걸음 걸을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내딛는 발에 따라 우리가 보는 세상은 달라지고 달라지는 풍경은 우리의 생각을 환기시키기마련입니다. 화산의 짐꾼들에게는 일보일보가 바로 삶으로 이어지는 생로이면서도 삶에 대한 눈물겨운 분투 그 자체인 바, 그것을 한참 먼 곳에서 영상으로 보는 저에게는 그것이 또다른 세상이 됩니다. 다큐가 만들어진지는 10년도 훌쩍 넘었지만,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십여년의 세월도 사를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감상이 남습니다.
'삶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한다, 어떻게하는것이 바람직하다'라는 말들이 공허한것은 그 몇마디 말 사이를 꽉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많이 보지 못해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위선이 판치는 세상에서 몇마디 명언들은 손에 닿지않을만큼 멀리 있는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와중에 멋들어진 말 한마디보다 짐꾼들에 대한 다큐속에서 오히려 어떠한 존엄을 느껴, 그 감정을 공유하고싶어 글을 써봅니다.
화산짐꾼이 흘리던 땀과 옹이진어깨, 탈력하여 하염없이 떨리던 두 다리, 그리고 마침내 하루의 고된 일을 끝마치고 난 뒤의 시원한 미소가 다큐안에 있습니다. 적어도 다큐 속 짐꾼들은 각자가 천착해야하는 삶을 무언가로 꽉 채우고있었습니다.
묵묵한 생업이 수십마디 허황한 말보다 무거운 세계가 있음을 저는 이 다큐로 다시 한번 배웠습니다. 그래서 짐꾼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분들에게도 추천해보고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