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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로 Aug 24. 2024

달이 아름답네요(月が綺麗ですね)

혹시라도 소싯적에 문학에 잠시라도 골똘해보신분들이 계시다면 아마도 한번쯤 들어본 문장이 아닐까 저 스스로 짐작해봅니다. 사실 저는 그리 낭만적인 문학도였던적은 없어서 저 문장을 20대중반이 지나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2013년도에 저는 한 여학생을 만났었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했다던 그 친구는 저와는 다르게 감수성이 넘치고 글로 써내는 문장하나하나에 생명력과 감성을 부여할 줄 알던 문학도였습니다. 저도 나름 책을 꽤 읽어왔다 생각했지만 사실 저의 독서는 무언가 기준이라던가 취향이라던가 그런것들을 정확히 정할 수 없는, 약간은 대중없는 그런 마구잡이식의 독서였습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어떤 글을 좋아하냐고 물었을때 명확한 저의 취향을 답하기 어려웠죠. 사실 저조차도 제가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크게 생각해본적이 없었으니, 제가 저 스스로 글을 좋아한다는 말은 어쩌면 공허한것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 친구가 어떤 소설을 좋아하냐는 물음을 저에게 건넸을 때에서야 저는 저의 독서관을 처음으로 되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친구의 물음에 답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재밌는글을 좋아한다였습니다. 셜록홈즈같은 추리소설도 좋고 해리포터같은 판타지소설도 좋지만, 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것은 사실 무협소설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랬죠. 고전명저로 불리는 여러 클래식들에게는 그닥 큰 재미를 느끼지못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글 읽는자의 소양이 부족하니 고전에 재미를 못느끼는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아오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더 빼고 더할것없이 그 말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무협이라.. 유독 눈동자가 커서 우물같은 눈을 가졌던 그 친구가 저에게 의외의 질문을 해왔습니다. 자신은 무협소설을 읽어본적이 거의 없지만, 어린시절  아버지께서 무협소설을 읽는것은 본적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치고받고 싸우는 소설이 무협아닌가? 네가 생각하는 무협은 다른게있어?'

저는 딱히 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무협소설은 주인공과 적이 치고받고 싸우는소설이라는것. 간단하지만 무협이라는 장르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이만한 표현도 없지않을까 싶습니다. 그 친구의 물음과 동시에 그 자체로 답이 된셈이죠.  단순히 주먹질하는 소설이 재밌다니, 너도 참 유치하구나와 같은 핀잔이 돌아올줄 알았습니다만 그 친구에게서는 또 다시 예상과는 다른 한마디가 흘러나왔습니다.

'무협소설 속 주인공들은 협객이라던데, 그럼 무협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협객의 마음을 품고사는걸까?'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때 제 앞에 앉아있던 문학도는 어떠한 편견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고전명저도 자신은 즐기지만, 아주 복잡한 치정으로 몸서리쳐지는 그런 소설도 좋아한다고했습니다. 자신은 어떠한 소설을 읽고나면 그 소설속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되고, 주인공이 슬프면 같이 슬퍼지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게된다고 말이죠. 슬픈 소설을 보면 몇날며칠을 그 감정에 빠져있고, 주인공의 고통이 자신에게도 그대로 느껴져서 괴로울때가 자주있다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소공녀라는 소설 속 주인공 세라를 무척 좋아한다는 말을 덧붙였는데, 세라가 가진 마음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세라처럼 되려면 돈이 많아야할텐데 자신은 쉽지않겠다는 농담이 따라왔습니다.

세월이 지나고나서 다시 생각해보자면, 그 친구는 문학이라는 바다에 몸을 흠뻑적시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을까하는 짐작을 해보게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마음과 자세로 소설과 소설속 주인공을 대한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니 무협소설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음에도, 무협소설속 정의로운 주인공의 마음을 독자들도 같이 품고사는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을겁니다.

저는 원래도 말을 잘하는 달변가가 아니었지만, 그 날은 유독 그 친구의 별뜻없는 몇마디에 이렇다 할 쓸모가 있는 답변을 해줄수가 없었습니다. 협객의 마음이라. 내가 그런것을 생각하며 무협소설을 읽었던가. 나는 그냥 통쾌한 재미가 좋은것일 뿐이었는데. 그 때 저는 별 재미도없는 이야기를 답변이랍시고 몇마디 주절거렸습니다.

'사조영웅전이라는 무협소설이 있는데 나는 작품속 주인공인 곽정을 좋아한다. 우직한 사내가 가지는 신의와 그가 걷는 협도가 좋았다. '

그 뒤로 얼마간의 시간동안 어떤 대화가 더 오고갔었는지는 불분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별 말구변없던 저였기에 아마도 그다지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을겁니다. 수준높은 고전에 대한 감상보다는 재미본위의 글들을 좋아한다는 멋없는 남학생에게, 문학에 깊이 빠져버린 문학소녀가 가진 소회가 어땠을런지는 그때 그 시간의 그 친구만이 알고 있을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저녁에 그 친구에게서 카톡이 아니라 문자 한통이 왔습니다.  
'月が綺麗ですね'

저는 일본어에 대해 아는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어를 거의 알지못하고 그나마도 고등학교때 선택했던 제2외국어는 안타깝게도 중국어였습니다.

일본어를 좀 아는 친구가 주변에 있긴했었습니다. 문제는 주로 일본애니메이션을 위해 일본어를 배웠던 친구인지라 해석을 부탁했더니

달이 아름답다? 뭐 그런뜻인데?

다소 건조한 해석이 돌아왔습니다. 달이 아름답다. 그 문자가 온 날 저녁에 달이 떴었던가라는 생각이 이어졌습니다만, 그 날 일기예보에서 달이 뜨지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뒤로 잘못보내진 문자로 저는 치부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잘못수신된 문자도 세월에 희석되어 잊혀져갔더랬죠.

2014년도 10월. 그 친구는 미국으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했으니 공부하러가나보다 간단하게 생각했었고, 그 친구도 그런 저의 생각에 크게 가타부타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으니 일종의 유학길인셈이었습니다. 공부를 위해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는 그 친구가 대단해보였고, 문학을 천성으로 여기며 살던 친구였으니 미국에서도 잘할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날 때 잘지내라며 손을 흔들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지금에와서야 생각해보면 사진 한 장 정도 같이 찍을 수도 있지않았을까 싶었는데, 글쎄요. 잘모르겠습니다. 저 말고도 몇몇 지인들이 더 있었기에 그냥 그런배웅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않을까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가 미국으로 떠난지 한달정도 뒤였나요. 유학이 아니라 아예 미국에서 살려고 돌아간것이었다는 사실을 다른지인에게 전해들었습니다. 원래 부모님이 미국에서 터를 잡고 사셨다는 이야기를 저는 그때 처음 들었네요. 미국 살던 친구가 뭐하러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는지 사소한 궁금증이 생겼지만, 저는 그냥 이런식으로 지나간 인연이 생기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달이 참 아름답네요 라는 문장에 어떠한 다른 뜻이 가미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건 얼마전의 일이었습니다. 최근 저는 요즘 일본 노래의 알고리즘에 걸려 일본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중입니다. 아이묭의 사랑을전하고싶었다던가라는 노래에 빠져서 몇날며칠을 들었더니, 유튜브는 마치 어떠한 마력을 지닌것처럼 저에게 일본문화에 대한 영상들을 조금씩 풀어놓았습니다. 다나카유코라는 1980년대의 미녀 여배우를 보여주었고, 일본 최고의 전성시대였다는 1980년대의 찬란과 역동을 엿보게 해주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이시떼루'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않고 대신 '스키데스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된 사실입니다.

'달이 아름답네요(月が綺麗ですね)'

라는 문장이 일본문학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그렇게 알게되었습니다. 아주 우연한 일인것이죠.

일본의 유명 번역가였던 나쓰메소세키는 제자들에게 번역수업을 하던 중 영어의 ' I love you'라는 표현을 일본어로 번역해보라는 과제를 냅니다. 학생들은 정직하게도 나는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을 답으로 내었으나, 나쓰메는 고개를 저었다고합니다.

'그런 직설적이고 낯뜨거운 표현은 일본인과 어울리지않아. 단지 달빛이 아름답네요 정도면 그 의미가 충분히 전달될걸세.'

'사람의 말과 글은 생각을 통해서 나오는것이고 상대에게 전달하는 어떠한 말이나 글은 그 안에 새겨진 깊은 의미를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 좋아서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던 저로서는 영 씁쓸한 깨달음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 날 단순히 일본어 한문장을 문자로 보낸 그 친구의 생각을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와서 어찌 헤아려볼 수 있겠습니까마는, 세상은 아는만큼보이고 듣는만큼 알게된다는 말을 새로이 깨닫습니다.

 어쨌든간에 제 마음속에 달빛이 아름답네요라는 이 한 문장은 앞으로도 아주 오래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낭만적인 한문장 전할 사람이 있기를 바라며, 저의  쓸데없는 과거회상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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