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15일. 대한민국이 36년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날입니다. 그로부터 약 80여년이 지났으니, 흘러가 버린 세월의 명확한 수치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묵은 감정의 무게를 다시 가늠해보게 만듭니다. 그러니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 역시도 그렇게 다시 한번 재어지게 되는듯합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론, 과거의 일을 가지고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는데에 지나치게 많은 심력을 낭비하는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은 항상 존재합니다. 국제정세에서는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는것이 상례이니, 오로지 제국가와 제국민의 이득만을 위해 저울추를 매달아야함이 박정하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유럽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 앞에 설치된 유대인들의 비문은 마음에 새길법합니다.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겠노라'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것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는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과서에는 교과서적인 한줄이 적혀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결과로 이루어진것이라 말이죠.
이 한 문장에 대해 여러의견들이 오가는걸 봅니다. 사실상 선인들이 한 독립운동은 큰 의미나 성과가 없는것이었고, 미국이 일본을 폭격함으로 인해 독립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다소 드라이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이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어떤 쪽이든 생각하기 마련이겠으나, 저는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일신을 내던진 지사에 대한 이야기도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런 글을 씁니다.
사람 각 개인이든 하나의 국가든 그 안에서 흥망성쇠는 있는법이고 생겨났으면 그 어떤 존재든 소멸을 향해 달려가는것이 거역할 수 없는 섭리입니다. 사람이 흙아래로 녹아내리고 하나의 국가가 수십년이든 수백년이든 그 세월이 풍진에 스러진다하니 종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개인의 신념과 뜻은 결국 사람이 잇고, 국가의 흥망은 후인들이 다시 평가하니 사람이든 나라든 그저 소멸하여 만사가 의미없다 말하기에는 남는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송나라의 마지막 사대부였던 문천상은 남송이 멸망전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몽골군과 대적할 군사를 조직했습니다. 그래봐야 몽골의 정예 앞에서는 그저 이란투석이요, 철수레를 막아선 당랑의 신세와 다름없는것이었죠. 주변에서 남송은 이미 망조가 들었는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을 하니 문천상은 이렇게 대답했다합니다.
'망국의 기운을 내가 왜 모르겠소. 하지만 나라가 위급하여 천하에 군사를 모으는데 응하는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통탄할 일일것이오. 내 비록 아둔하여 이런 무모한짓을 벌여 죽게되어도, 그로인해 천하 충의지사들 마음에 발분의 불씨라도 틔우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한이없겠소.'
도시락폭탄으로 유명한 윤봉길의사조차 폭탄 하나로 꿈같은 광복이 다가올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거후 취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폭탄하나 던지는걸로 독립이 된다고 생각하지않는다. 단지 나같은이에게서 촉발된 이런 사태가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세계가 조선의 존재를 명료히 알게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근 8백여년전 무너지는 사직을 바라보며 애쓰던 망국의 재상과 대한독립을 위해 애쓴 우리의 애국지사가 지닌 생각이 닮았습니다.
한 나라의 독립이라는것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국제정세에 크게 의존하는바, 이미 쇠락할대로 쇠락한 국가가 그 판에서 주도권을 쥘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소규모 몇몇이 소요를 일으켰다하여 그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못했다는 의견 역시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8월15일을 특별한 날로 기억하고 독립지사들을 기리는것은, 선인들 마음속에 품어졌던 뜻이 아직 그 무게를 잃지 않았기 때문일겁니다. 국가라는것은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지는것인즉, 결국 국가라는것은 각 국민들의 뭉쳐진 생각 아래로 존재하게되고 국가의 정기는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속으로 갈무리됩니다. 옛사람의 신체는 이미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모래알처럼 다시볼 수 없게되지만, 그 마음속 정기는 그대로 사람에게 이어져 후대인들의 귀감이 되고 뜻 있는자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고도조안색(古道照顔色)
위에서 말한 송나라 최후의 재상 문천상이 끝내 망해버린 조국을 보고 죽기전 지은 '정기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송나라 3백여년 역사를 문천상이 거두었다는 평가가 이 시로부터 나왔습니다. 옛부터 내려온 도리가 내 낯을 비추는도다 라는 뜻을 가집니다. 시기와 시대상황이 어떻든, 마땅히 지키고 추구하여야 할 절의(節義)와 정도(正道)에 대한 깊은 헤아림이 담겨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와 세월과 질곡 속에서도 오롯한것들은 오래전에도 있었으니, 그 변하지않고 내려오는 도리와 뜻과 사람을 헤아리고 기리는 날이 있음은 당연하다 할것입니다.
저같은 사람도 애국지사를 기리는일이 아직은 새삼스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음에, 이런글을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