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동네의 초등학교에서는 연례행사처럼 운동회를 열고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여 동네잔치가 되던 시절말입니다. 돼지수육이 천막 안 가마솥에서 올라오고 한쪽에선 이인삼각 달리기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3학년. 얼굴 주근깨 때문에 스트레스 받던 짝꿍이 넘어오지말라고 그어놓은 선은 여름이 지나기전에 사라졌습니다. 학교앞의 명물이라던 오래된 느티나무는 땡볕아래서 수액을 달고 있었는데, 아마 그 느티나무는 이미 수액을 단 시점부터 죽어가고 있던거겠죠. 여름이 지날때까지 그 느티나무가 버텼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한여름 폭염이 아스팔트를 녹여버리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바 없겠지만, 그 시절엔 온몸의 피부가 다 타버려도 밖에서 노는게 즐거웠던 때였습니다. 공하나만 던져줘도 하루종일 놀 수 있는 에너지가 있던, 학교가 끝나면 별다른 연락없이 아지트에 모이는 동네 친구들이 있던 시절. 체감온도가 얼마나 올랐는지는 어른들의 사정일뿐이었고 그때 애들에겐 태양이 얼마나 이글대는지는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릴없이 해맑던 아이들은 사계의 변화가 또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할때부터 해맑음을 잃어버리게됩니다. 대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생각과 걱정이 그들의 머리를 채우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어른이 되어있습니다. 세월은 어린아이들의 맑은 웃음과 자주 모였던 아지트를 앗아가고, 현실을 내어놓습니다.
절절끓는 여름이 지나간다는것은 이번년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할겁니다. 봄이 지나가는것엔 큰 감상이 들지 않다가, 여름이 지나갈 때는 유독 어떤 감상이 생기는 이유가 뭘까요. 땅에서 올라온 열기가 머리 끝 신경까지 태우던 시기가 한참 이어지고나면, 어느날 아침 다소 선선한 공기에 이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버석거리던 이불에 습기 대신 건조감이 느껴지는 어떤 하루가 다가오면 우리는 달력을 다시 들추게되죠.
어린시절엔 시간이 흐른다는것에 이렇다할 감상이 없었지만, 한살 한살이 무게로 느껴지는 나이즈음 되면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할수도 있을겁니다. 내 몸을 감싸쥐고 질척거리던건 끈적한무더위인줄 알았는데, 그 무더위를 붙잡고 있던건 오히려 나였을지도 모릅니다. 아쉬움이란 그런것이 아닐까..뭐, 그렇습니다.
해맑던 시절 동네 공터에서 빠삐코 하나씩 나눠쥐고 공을 차던 친구들은 지금 뭘하며 살지 궁금합니다. 우유한팩을 다 쏟아주면 숨도 안쉬고 찰박거리며 먹던 강아지가 팔랑대던 귀의 까슬함. 그것도 한창 더울때의 어느날 기억입니다.
가끔씩 그 때 그 모든것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돌아볼때가 있습니다. 사소한것들이죠. 해맑지만 아주 사소한것들, 굳이 그렇게 다 어느순간 사라져버릴 필요는 없었을텐데. 몇년 전 본 영화속 타노스가 날려버린건 히어로가 아니라 해맑던 날의 내 기억일지도요.
저기 구름너머 어떤지점엔 그 모든 시간들이 녹아있을것만 같습니다만..
너무 깊이 들여다보는것은 좀 더 다음에 할랍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맞아본 바람에 더위의 힘이 많이 빠졌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다보니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하게되네요.
제가 가는 여름에 질척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