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다로 Aug 26. 2024

생명의 눈. 그 안에 담긴것들

잉태된 영혼. 눈

저는 아주 어린시절에 산골의 시골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자리를 잡지못해 할머니댁에 저와 동생을 맡기셨는데 그러다보니 산에서 볼수있는 동물이나 곤충들을 꽤 많이 볼 수있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볼때 저의 나이 7살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기억들은 편린처럼 조각나있지만, 처음 개의 눈을 빤히 들여다볼때의 기억은 제법 선명합니다.


시골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런색진도잡종이었습니다. 나이도, 그 이력도 알 수 없었지만 그 개는 저와 동생을 잘 따랐습니다. 유치원에서 받아온 우유를 저랑 동생은 마시지 않고 가져와서 그 개한테 주었습니다. 시골에서 키워지던 개들에게 먹이란 사람들이 먹고남은 음식들이던 때였다보니, 그 개는 우유를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찌그러진 그릇에 우유한팩을 담아서 주면 숨 한번도 제대로 안쉬고 먹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개를 키워보신분들이라면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게될까요? 찰박거리며 우유를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우유를 매번 받아서 집에 가져왔었습니다. 저랑 동생이 저 멀리서 동네 입구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면 예의 그 누런색 개가 달려오곤했죠. 달려와서 꼬리를 흔들때, 고개를 쳐들고 저희를 빤히 바라보던 그 개의 눈이 기억납니다. 개가 사람들과의  긴 눈맞춤을 싫어한다는것은 한참뒤에 얻게된 지식입니다. 항상 저와 동생을 쳐다보던 그 개도 막상 우리가 눈을 마주치고 바라보면 눈을 슬쩍 피하곤했었습니다. 7살이던 제가 그 개의 눈에서 읽을 수 있던 감정은 사실 명확한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새까만 눈동자안에 우리 모습이 그대로 들어가있구나, 저 개의 모습이 내 눈에도 들어있겠구나, 이 개도 우리를 좋아하는구나.


소를 직접 보신분들은 하나같이 소가 가진 눈이 너무나 예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소의 눈은 측량키 어려운 깊은 우물을 닮았습니다. 그 크고 동그란 눈 안에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호기심이 같이 담겨있다는것을 느껴보신분들은 소라는 동물이 얼마나 귀여운 짐승인지 이해하실겁니다. 여물을 먹다말고 가끔씩 하늘을 바라보던 소의 눈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무구(無垢)하기만 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시절 곤충이나 벌레를 수도 없이 잡아서 가지고 놀았던 경험 덕분에, 저는 지금도 사실 만지지 못하는 곤충이나 벌레가 없습니다. 거미나 바퀴벌레도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데요. 자랑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곤충이나 벌레의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싶어서 사족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사마귀나 잠자리, 메뚜기 같은 곤충들이나 벌레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눈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어서이지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얘네들은 눈동자가 보이지도않고 눈에 내모습이 비춰지지도 않으며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알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저는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없이 그들을 잡아서 가지고 놀았습니다. 저 눈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순간 확실하게 인지한 것이 초등학교4학년쯤이었던 것 같네요. 잠자리는 위에서 아래로 손을 채서 잡는것보다 아래에서 위로 손을 채는것이 잡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잠자리의 큰 두 눈은 등뒤의 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수있도록 특화 되어있기 때문에 밑에서 위로 손을 올려채는것에 취약한편입니다. 사실 이는 잠자리 뿐만아니라 많은 곤충이나 벌레들에게 다 해당하는 것이긴 합니다.


콩밭에서 부지런히 뛰어다니던 방아깨비가 제가 근처로 다가가는순간 움직임을 멈추는것이 특별하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 방아깨비가 나를 주시하고 있고, 본능적으로 더 움직이면 자신이 눈에 띈다는것을 마치 알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런 현상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특별했으니 일상은 사소한 깨달음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는동안 방아깨비는 더듬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저는 곤충을 심심풀이로 잡아서 가지고 놀던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사람의 눈은 어떨까요.


불교에서

'다섯자 여섯 자의 몸에 담긴 정신은 한자의 얼굴에 나타나며, 한자 얼굴의 정신은 한 치의 눈속에 들어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정기는 눈빛으로 드러나게 되는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첫인상을 평가할 때 무의식적으로 그사람의 눈을 바라보게 됩니다. 미추의 기준을 벗어난 사람의 분위기는 분명히 그 사람이 가진 눈빛에 많이 좌우됩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의 눈에 담긴것들이 참으로 많다는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린시절 제가 우유를 주던 개의 눈에서는 오로지 친근만이 읽혔고, 옆집 외양간에서 마주한 소의 눈에서는 무구(無垢)함을, 수도없이 잡아가지고 놀던 각종 곤충들에게서는 어떠한 본능만을 느꼈습니다만....


제가 섞여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눈에서는 오욕칠정 전부가 느껴지니, 그것은 저 역시 오욕칠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일겁니다. 제가 생각하는것은 남들도 똑같이 생각하고있고 저 사람이 받은 감상은 저에게도 거의 비슷하게 다가온다는것을 알고있으니 불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해탈, '피안(彼岸)'의 경지는 저에게 그저 요원한것 같습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사소한 깨달음이 가끔 있으니, 이 사바세계에서 구르는것이 아주 나쁜것만은 아닐것이란 자기위안은 가능하겠습니다.


조금 전 주인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더콜리가 신호가 바뀔때까지 주인만을 바라보던 눈에 깃든 애정과 신뢰를 봤습니다. 우주삼라만상이 그 눈에 담겨있음을 확인하고 그 후기를 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전 하나 추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