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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혼외자기사를 보고드는 생각

by 강다로

가정을 이룬다는것은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강현실 세계에는 자녀가 있고 그 자녀들에겐 영원히 무너지지않을것같은 하늘로 보이는 부모가 존재합니다.

그런점에서 이땅의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저렇게 창조된 세상이 동화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상과 바람만 존재하는 곳은 결코 아닐겁니다. 현세의 많은 문제는 바로 저 가정이란 세계의 비틀림에서 시작됩니다.

스피노자는 내일 세상이 어찌되든 나무를 심겠다고했지만, 내일 세상이 어찌되든 나는 가정을 꾸리겠다라는 말은 분명 또 다른 문제일겁니다.

커뮤마다 올라오는 엄마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그래서 저는 숭고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고민에는 남편, 아내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자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 애가 어찌되든 나는 도저히 내가 창조한 세상에서 못견디겠다. 엑싯하겠다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하는 부모를 저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폭력에 못견뎌 애를 버리고 야반도주하던 어미조차 까무룩한 어둠을 몇번이나 되돌아보았는지. 다시는 보지못할 딸의 뒷모습을 눈에 조각하듯 새겨넣는 시한부 아비는 망막 속 조각이 흐려질까 눈물도 함부로 흘리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노예들을 데리고 출애굽을 결정하였을때. 그만큼의 고민이 이혼이든 파탄이든 시한부든 결과에 도달하는 부모들에게는 있었습니다.

이번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아이는 낳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지원해주겠지만 결혼은 안된다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정우성이라는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는 뒤로하더라도 드는 생각은 그렇습니다.

이미 태어난 아이에게 제대로 된 하늘이 존재하지않는다면 그것은 그 아이에겐 슬픈일이지 아닐까. 물론 남보다못할 부모자식관계도 충분히 존재합니다만, 일단 태어난 아이 입장에서 그 관계를 조기 설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초보운전자에게 완벽한 네비게이션이 존재한다해도, 조수석에서 간간히 한마디 던져주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존재가 필요없는것은 아닌것처럼말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족치않은 지원이 얼마나 큰 힘인지 깨달을 나이대의 아이는 아직 그 시기가 너무 멀리있고, 단지 운동회에 데려올 아비의 부존재가 더크고 파괴적으로 다가올 나이가 가깝다는것이 이 세상의 섭리이면서도 비극일수 있죠.

경제적으로 다 도와준다는것에 대한 든든함은 나 대신 먼저 달리는 아비의 넓은 등을 본 다음에 찾아옵니다

그러니 하나의 가정, 하나의 또다른 세상 속에서는 돈말고도 굉장히 많은것이 필요하다는것이겠죠. 좋은가정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서 존경스럽습니다

어쨌든 결국 태어난 아이들은 당장의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 친구들이 상처받지 않고 자라길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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