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많은분들께서는 신춘문예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기간에 어떻게 뭐가 흘러가는지는 잘 모르실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그랬었으니까 하는말입니다.
저는 문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만 밝히는 일이지만, 저는 등단이라는 것을 경험했었습니다. 모순적인 말이죠. 등단을 했는데 문학과 거리가 멀다는 말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나 등단했으니까 자랑하려고 쓰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제 이름 석자로 낸 작품이 단 하나도 없으니 저는 재야에 묻힌 문학가도 아니고, 문학인도 아닙니다.
등단 취소제도라는것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그 명단에는 들어갈 수 있겠네요. 취소이유는 작품활동미비. 이 등단자는 명패만 걸어놓은채 아무것도 하지않았으니, 등단을 취소한다. 그럴듯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신춘문예 시즌은 요즘입니다. 신문사마다 며칠정도 차이는 있어도 11월 중 신춘문예 원고를 투고받습니다.
방식은 여전히 고루합니다. 아날로그 그 자체죠. 자기가 쓴 글을 a4용지에 글자수를 준수하여 적은 뒤 프린트하여 우체국까지가서 신문사 담당자앞으로 우편을 보내야합니다.
누군가는 디지털시대에 그런방식이 낭만적이라고 말합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잉크똥 묻은 종이는 이메일로 가든 서면으로 가든 심사위원 몇에게 전달되면 끝인데 말이죠. 낭만을 모르니까 네가 글을 못썼지라는 힐난을 감수하겠습니다.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친구를 만난 것은 제가 대학교3학년에 재학중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좀 특이하게도 인문학과 애들이 접근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네들의 마음을 약간 알것도 같은 부분은 있습니다.
말수는 적지만 듣는 귀 하나는 쓸만하다는 누군가의 평가가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그렇네요.
국문과 교양수업을 들으러 갔을때나 불어과 교양수업을 들으러 갔을때. 교수님께선 출석명부를 체크하시다말고 꼭 저에게 질문 하나씩을 던지곤 하셨습니다. 인문학부 친구가 상경계 수업듣는건 자주봤는데, 상경계 학생이 이 수업 듣는건 드물다는게 그 이유였습니다.
프랑스파리에 가본적있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가본적 없다고했더랬죠. 그럼 이 수업을 듣는 이유를 좀 여기 친구들에게 말해달라는 부탁에 제가 멋쩍어 하면서 답한 말이 이렇습니다.
'구글지도로 파리 에펠탑을 가끔봤었습니다. 에펠탑 사진을 보고나니 이 수업이 궁금해졌습니다'
에펠탑은 티비에도 걸핏하면 나오는데 너무 빈약한 이유라는 핀잔을 들었습니다만 상관없었습니다. 어차피 제 답변도 거짓말이었으니까요. 교양과목을 하나채워야하는데 제 딴엔 이게 만만해보였습니다라는 답보다는... 예의가 있었다 생각합니다.
참고로 그 수업 c+받았습니다.
11월의 바람은 어딘가 애매한 느낌이 있습니다. 10월 바람에는 무더위의 잔여가 아직 약간은 남은듯한 느낌이 들지만 11월바람엔 더위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죠. 그렇다고 온전히 겨울바람이냐라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닙니다.
길을 걷다가 과거에 들었던 다소 쓸쓸한 분위기의 노래가 흘러나올때 부는 바람이 약간 찬 것 같다고 새삼 느껴지면 그게 11월바람입니다. 너무 추워서 몸을 덜덜 떠는 바람은 11월 바람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반박하실필요는없습니다. 어차피 저만의 생각일뿐이니까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줍시다.
아무튼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친구는 11월에 원고를 들고 저에게 가져왔습니다. 시와 단편소설이었습니다. 시 5편, 단편소설 1만5천자내외의 한편. 각 신문사당 한 장르만 투고할 수 있는 원칙상, 그 친구는 두개의 신문사를 염두에 둔것입니다.
투고날짜가 다가온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죠. 이걸 내가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물음에 그 친구가 해준 대답을 기억하고있습니다.
'투고하고나면 난 내 글이 내 손을 완전히 떠난다고 생각해. 당선작이 되지 못한다면 내 머리속에서도 완전히 지워지는거지. 근데 네가 읽고 혹시라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면, 나에게선 버려졌을지라도 글 몇개는 나름대로 살아가는거잖아'
귀찮으니까 대충읽고 그럴듯한 소감 몇줄 남겨야겠다는 제 얄팍한 마음가짐은 한순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11월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바람은 저 친구 말 어딘가에 같이 달라 붙어서 왠지 쓸쓸한 분위기로 오래 남았더랬죠.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그토록 결연하다는 사실 역시 저는 그 친구를 통해 알게됩니다. 투고한 글이 당선되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새로운 글을 쓰는거죠. 세상의 빛을 보지못하고 죽어간 수 많은 명문구는 그래서 많을 것이라고.. 저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문과출신 친구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11월 신춘문예 시즌만되면 그 친구가 저에게 보여줬던 시와 소설이 떠오릅니다. 내용과 퀄리티에 대해서는 말하지않겠습니다. 다만 11월 어느골목에서 맞는 바람과 닮았다라는 느낌만 전하겠습니다.
사실 조금전에 우체국을 지나는 길에 노란봉투를 들고 우체국에 들어가는 사람을 봤습니다. 노란봉투를 꽉 쥔 맨손등이 찬바람에 많이 시려보이더군요.
신춘문예라고 써붙인 노란봉투 겉면의 붉은글씨가 오랜만에 저를 오래전의 기억으로 데려다놨네요. 그 차가워보이는 맨 손이 12월 어느날의 합격통보전화를 받아들기를 바라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