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을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신년 연휴에 갔더니 정말 문자 그대로 인산인해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까지 타지마할을 본 게 열 번도 넘으니, 그저 그렇게 그런 분위기에서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리 없어서였다. 신년 연휴 미어터지는 인파 속에 타지마할을 두고 그 사람들을 사진으로 작업하는 기회를 보고 싶은 마음이 설레었다. 인도를 전문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작업하는 사진가로서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있을 수 없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말티재 고개 넘어가듯 구불구불 줄을 선 인파 속에서 죄 지은 자마냥 찍 소리도 못한 채 1시간 가까이 기다려 간신히 경내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이미 이 타지마할은 오랫동안 봐온 그 타지마할이 아니었다. 내 관심은 왕과 왕비의 슬픈 사랑 이야기나 무갈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세계 유산으로서의 타지마할에 더 이상 있지 않고, 대기오염에 무너져가는 답답한 타지마할에 있었다. 그 차원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구경 인파, 과연 그들은 왜 타지마할을 보러 오는 것일까가 사진의 주제가 되었다. 타지마할을 찍되, 풍경의 초점이 묘와 유적에서 사람과 구경거리로 옮긴 것이다.
사람이 겹치지 않는, 한적한 묘당 건축물만 온전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사진이 필요하면 관광엽서를 사보면 될 일이다. 그 안에는 그 사람들이 온갖 포즈로 타지마할을 놀이 대상으로 삼아 히히덕거리는 장면으로 가득 차니, 경건함이라든가, 돌아봄이라든가 하는 따위의 감상은 역전앞 값싼 여인숙에서나 할 철 지난 것이기 마련이다. 경건함이 경박함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일상과 노동이 분리되어 있듯, 일상과 철학이 분리된 냉혹한 현실에 서있다. 오로지 인증 만을 위한 기념사진은 읨없다. 사람으로 가려지지 않는 타지마할은 신화다. 타지마할은 가려진 인파와 함께 찍는 것이 현실의 재현이다. 타지마할 묘당은 끄트머리만 보이고 내 앞으로 옆으로 사람들이 바글 거리게 찍으면 그게 더 좋을 일이다, 라는 생각으로 셔터를 끊는다.
무엇이든, 그것이 사진이든 글이든 음악이든, 주제가 정해지면 설사 동일한 것으로 정해지더라도 표현은 각자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진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당신이 이렇게 표현하면, 같은 사진이라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지 않는 기록자로서 사진가는 저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주제를 갖고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주체적 사진이다. 그 표현에 따라 그 사진들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달라지는데, 어떻게 표현했느냐에 따라 그가 문학적 관점에 집중하는지, 기록적 관점으로 표현하는 지로 나누어진다. 그러니 그 둘을 한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같은 다큐멘터리라 할지라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경우 사진으로 만든 내러티브가 어떤 닫힌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문학이라는 것 혹은 예술이라는 것은 팩트와 주장이 아니고 해석과 사유 혹은 그것의 소통이니, 결론으로 이르지 않고 결론을 향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다시 나가고 하는 감성의 흐름을 끝내거나 멈추려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는 의미다. 그런 사진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독해는 처음과 끝이 정해지지 않는 도돌이 음표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끝없이 좌충우돌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것만이 열린 독해가 아닐지. 사진이란 이미지는 비록 죽은 것이지만, 그것을 읽고 해석하면서 받는 감성이라도 살아 있어야 사진하는 맛이고 멋이 아닐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을 한다는 것은 삶에서 생성을 맛보는 것이 될 것이다. 생성이란 결코 멈추지 않는 무한 연속선상에서 기억과 상상이 반복적으로 교차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일이 시작되고 끊어지고 어떤 결과를 도출하면서 덩달아 시간도 그와 동일한 궤적을 걷다 보니, 기억과 상상이 작동되지 않고 멈춰버린 것이다. 현대인의 일상에서 만나는 매일의 과정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그런 세계관을 담은 신화는 미움을 받고, 이야기는 루저들이 한가하게 나누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으로 전락되어 버린 지 오래다. 어린 청춘 때 들었던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우리 사는 세계에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꿈과 희망 사이로 흐르는 것은 이제 없다. 모든 것이 일직선상에서 멈춰 있는 세계다. 효용이 없으면 필요도 없는 세계가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다.
독자여, 대담자여, 당신 앞에 새로운 장르의 안내자가 서 있다는 것을 이해하라. 그 안내자는 당신을 순간과 사물들, 욕구와 만족들의 미궁 속으로 인도할 것이다. 여기서 당신에게 제공하는 것은 현대성과 일상성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논문이 아니다. 또한 해결을 위한 안내서도 아니다...상상을 검토, 재검토하고 또 상상의 기능과 자리를 고찰, 재고찰 하는 일이다.
앙리 르페브르 《현대 세계의 일상성》
인도 웃따르 쁘라데시, 아그라,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