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I. 깨닫는다는 것 6. 요가 Yoga


인도의 여러 세계관 가운데 요가만큼 그 뜻이 잘못 알려져 오늘 날 전혀 새로운 문화 특질로 자리 잡은 것도, 별로 없을 겁니다. 원래 ‘요가’yoga라는 것은 고대 인도에서 시작된 영적·정신적 수련입니다. 산스끄리뜨어의 ‘멍에’라는 뜻의 어근 yuj유즈에서 파생되었으니, 그 가장 원래적 의미는 감각을 억제하거나 제어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러니 요가의 가장 기본 개념은 뭔가 인간적인 감정이나 본능을 꽉 눌러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앞의 두 글에서 말씀드린 디야나禪나 사마디三昧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영적, 정신적 마음 억제 훈련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고대에서 중세로 사회가 크게 바뀌면서 영적, 정신적 훈련이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즉 영적 정신적 훈련이라는 게 다름 아닌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훈련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그 훈련이 육체를 제어하는 훈련으로 바뀌어 버리지요. 그러한 육체 훈련이 나중에 서양으로 전해지지요.


19세기 중반 서양에서는 인도를 크게 오해했습니다. 인도를 세계의 여러 나라와 똑같이 사람 사는 곳, 물적인 문화도 있고, 영적인 문화도 있는 곳, 전쟁도 있고, 권력 다툼도 있는 곳으로 보지 않고 명상과 사색과 영성으로 가득 찬 신비의 나라로 여기는 낭만주의자들이 대거 생겨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들이 인도를 바라보는 관점을 오리엔탈리즘이라 하는데, 철저히 편견과 왜곡으로 점철된 관점이지요. 그즈음에 비웨까난다Vivekananda라는 인도의 한 힌두교 승려가 서양 세계는 힌두교의 명상과 요가를 중심으로 하는 관용과 보편의 성격을 널리 받아들일 것을, 호소합니다. 그가 규정하는 힌두교의 일부를 전부인양 오해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요가가 서양 사회에 신비의 명상 수단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때 그들 서구인이 접한 요가는 중세의 육체적 수행을 통해 영적인 수련을 하는 ‘하타hatha’ 요가였습니다. 이 요가는 깨달음의 중심이 더 이상 마음에 있지 않는, 단지 몸을 통제하는 신체 운동의 한 종류였지요. 그 변화한 요가가 그 후 서양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게 지금의 스트레칭 비슷한 요가가 된 거지요. 그건 ‘아사나asana’라고 하는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면서 어떤 호흡법으로 몸을 이완시키거나 수축시키면서 신체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운동이 되어버렸지요. 영적 깨달음이라는 목표는 완전히 사라지고,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휴식과 체력 증진이 목표가 된 겁니다.


새로운 신체 운동으로서의 요가도 여러 요가 중 하나이지만, 인도인들이 갖는 세계관으로서의 보편적 개념의 요가와는 많이 거리가 멀다고 봐야할 겁니다. 자, 그러면 변화한 요가의 개념에 대해 인도의 민간에 널리 퍼져 있는 두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요가란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사막이 많은 라자스탄 지역의 이야기입니다. 옛날 작은 사막 곁에 있는 작은 마을에 어떤 소년이 살았는데, 사막에 부는 바람처럼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어느 날 요가 수행자 한 사람을 만나 그에게서 호흡 조절법을 배워 몇 년 동안 수행을, 했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처럼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사막을 달릴 수 있었고, 이후 사막으로 사라져 사막의, 일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 즉 호흡법을 연마하여 바람이 되거나 물이 되거나 하늘이나 우주로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는 전국 각지에 많이 있으니, 그들은 요가를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 하는 대신에, 변신을 통해 인간의 육체를 벗어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하지요.


앞글에서 말씀드렸듯, 사마디 개념도 역사의 변화에 따라 크게 변했지요. 그러니 요가의 개념도 마찬가지로 변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사마디가 세속에서 벗어나 영적인 수련을 하는 것만이 아니고 세속 안에서 살면서 그 경지에 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벵갈에 어떤 가난한 베 짜는 직조공 한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요가를 배우고 싶었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일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요가 수행자 한 사람이 꿈에 나타나 요가는 숨 쉬는 것을 통한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고 마음 안에도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다음 날 이 직조공은 베를 짜면서 실 한 오라기 한 오라기를 잘 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집중하여 베 짜는 일을 하나의 명상 행위로 바꾸었답니다.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 열심히 일하여 시간이 상당히 지난 후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일은 완벽해졌으며,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은 그가 세속의 일을 통해 요가의 길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짠 옷감에는 신성한 에너지가 충만했다는 이야기가 보태지지요. 결국, 요가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정신일도하사불성이 되는 건데, 요가가 삶과 떨어져 있는 수련의 길이 아니고, 삶을 영위하는 그 자체의 길임을 가르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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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이든 감각이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억제하고 제어해야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낮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라는 세계관에서 시작해, 본능이든 감각이든 굳이 억제하고 제어할 필요 없다, 그냥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고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세계관으로 바뀐 것은 인도인들의 사고방식이 이건 이대로 좋고, 저건 저대로 좋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겁니다. 이 요가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서 뭔가 어떤 틀로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본능을 찍어누르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 감각적 본능을 틀로 가두는 것이 높은 경지로 보일 수도 있고, 답답하게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요가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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