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I. 깨닫는다는 것 8. 산냐사 Sannyasa 棄世


교수로 부임하고 난 후 90년대 초, 우리나라에 인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 넣은 적이 있습니다. 기억나는 분은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류시화라는 사람이 인도를 명상과 사색의 나라로 만드는 고약한 분위기에 실컷 바람을 집어넣었더랬죠. 인도 연구자가 거의 없던 그 시절, 저는 그게 아니라고 이런저런 자리에 가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의 큰 마이크에 묻혀 제 목소리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본 인도는 세상을 떠나는 수행자들이 사는 나라, 물질을 초월하여 떠돌이 삶을 사는 수행자의 나라였습니다. 시인은 길을 걸으며, 수행자를 만나 지혜를 얻고, 거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배우며 심지어는 주인 없는 들개들한테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고, 그것이 인도에서 초월의 의미를 찾는 길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초월적 삶을 갈망하는 한국의 현대인에게는 그게 진실이든 착각이든 관계없이 가뭄에 내리는 단비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부산에서 뭄바이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어느 비즈니스 맨은 출장길에 그 시인이 쓴 책,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있었습니다. 어떤 회사와 계약 협상하러 간다던데, 나중에 들어보니, 크게 속아 엄청난 손실을 보았답디다. 사람들은 인도의 리얼리티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래 전 유럽인들이 설정해놓은 존재하지 않은 어느 낭만을 보고 싶어 했을 뿐입니다. 그 안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는 기세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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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도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나라지요. 인도인 또한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속이고, 뒤통수치고, 폭력 쓰고, 지배하고 착취하고 안 빼앗기려고 버티고 하는 물질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99%는 – 정확히 그 숫자는 알 수 없습니다. - 될 것이고, 비록 1%밖에 되지 않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는 세상을 버리고, 떠나,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세상을 버린다는 건,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버리고, 자신이 낳은 자식도 버리고, ‘님을 위한 행진곡’ 노래 가사처처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세상을 버리고, 떠나가 히말라야 어디에선가 눅어 물이 되고 바람이 되어 사라져버린 삶을 말하는 겁니다. 이 세계 모든 문명권 가운데 인도에서만 있었던 개념입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그 두 시각이 공존하는 문화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없는 그 독특한 기세의 세계를 확대 과장하여서 인식하였지요.


힌두교 세계관에서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이 ‘세상 포기’ 행위를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기원전 6세기경 붓다가 그랬듯, 이 세상에는 궁극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해 세상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 버린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힌두교의 삶의 일부 단계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불교같이 따로 공동체를 만들어 종교로 독립한 예도 꽤 있었지요. 그들은 모든 것은 변하니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니 세상에서 카스트에 따라, 세상의 질서 윤리에 따라, 돈과 물질과 관계를 좇으며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서 뭔가를 찾지요. 그것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인도의 세계관이라는 게 항상 그렇지요. 정해진 답에 따라, 가는 게 아니고, 그걸 찾으러 가는 거지요. 각자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이렇게 세상을 포기하고 떠난 사람을 인도 고유 언어로는 사두sadhu 혹은 산냐신sannyasin이라고 부르고 한국어로는 마땅한 용어가 없어서 제가 세상 포기자라는 의미로 기세자棄世者라고 씁니다.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힌두 세계의 당당한 한 부분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지요. 기원전 6세기 때도 그랬고, 그 후 중세 때도 그랬고, 근대에 이어 현대에도 인도 사회는 세상 안에서 세상 이치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사는 삶과 그것을 부인하고 세상 밖에 나가 사는 삶, 이 두 가지가 공존합니다. 우리가 아는 불교에도 세상을 버리고 떠난 승려와 재가 신자로 구성되었듯이 힌두교도 마찬가지로 기세자와 재가 신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기세라는 세계관을 그림으로 어떻게 그릴까, 꽤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읽었던 초기 불교 경전인 숫따니빠따Suttanipata의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붓다는 브라만이 제사라는 의무를 설정해 쳐 놓은 테두리 안에서 단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붓다는 사회 안에서의 삶이란 장애물로 가득 차 있는 욕정에 얽매인 것일 뿐이라고 했지요. 그는, 모든 세상을 버린 자의 삶은 공기와 같이 자유스럽다고 하면서, 세상의 그 끈을 끊어 버리고, 물고기를 덮친 그 그물을 찢어 버리고, 다시는 그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는 타오르는 불과 같이 나가라고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널리 이해한 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원래 구절, 외뿔소와 같이 홀로 유랑하라고 설파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인도에서의 기세자들이 세속의 삶을 완전히 버리고, 홀로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그건 또 오해입니다. 그들도 교단이 있고, 그들 내부에도 싸움이 있습니다. 세상 밖이라고 그런 것으로부터, 완전히 초월해서 살 수 있겠습니까? 거기도 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물론 타오르는 불꽃같이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기세자들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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