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I. 깨닫는다는 것 10. 쁘라쟈 prajna 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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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와 불교에서 해탈이나 열반과 같이 물질 바깥의 세계에서 추구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다면, 아마 쁘라쟈(prajna)일 겁니다. 넓게 보아 지혜를 의미하는데, 어떤 이치를 통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물론, 단순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요. 인도의 여러 세계관의 개념이 중국 문화 안에서 한자로 뜻 번역을 하기가 곤란한 점이 있어, 많은 경우에 그리 하였듯이 이 쁘라쟈 또한 음역을 해서 ‘반야’라고 해 왔습니다. 그만큼 그 뜻이 단순히 ‘지혜’나 ‘통찰’로 국한하기가 어렵다는 거지요. 그들은 어떤 개념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이야기를 만들어 민간에 널리 보급했지요. 대중은 그 개념을 알고 따르고 실천하는 게 목적이지, 담론 차원에서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게 목적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저 또한 같습니다. 쁘라쟈의 정확한 철학적 개념의 정의나 의미를 아는 게 목적이 아니고, 그 세계관에 대한 이해 나아가 우리 삶에 실천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성찰해보자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베다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들어보세요. 어떤 선인이 평생을 경전 연구와 학문에 전념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전히 배울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는 신들의 왕인 인드라Indra에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시간을 더 달라고 간구했으니, 인드라가 나타나 작은 먼지 세 움큼을 보여주며 이것이 당신이 평생 배운 모든 지식이라고 하면서 우주에 대한 지혜는 산만큼이나 방대하다고 가르쳤답니다. 인드라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쁘라쟈를 깨닫고 내면화하여 적용해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지요. 지식은 유한하나 쁘라쟈는 무한하니, 지식을 축적할 게 아니라, 쁘라쟈를 깨닫고, 삶에 실천해야 한다는 거지요. 이 경우 쁘라쟈란 지식을 넘어 이치를 깨닫는 통찰이나 지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 지혜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 걸까요?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비슈와미뜨라 왕은 선인 바시슈타의 쁘라쟈 경지에 도달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행을 수행하기로 했으니, 고행이야말로 쁘라쟈를 깨닫게 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봤기 때문이지요. 그는 극도의 여러 금욕 고행을 해봤습니다만, 쁘라쟈를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선인 바시슈타가 이렇게 가르칩니다. 쁘라쟈란, 외부의 힘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자아를 다스리는 것이다, 금욕 수행을 통해 얻는 외부 에너지가 아닌, 내부 자아를 다스리는 통찰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쁘라쟈이니, 지혜란, 결국, 내부의 뭔가를 깨닫는 것이라는 말인데, 그 내부의 뭔가가 무엇인지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우빠니샤드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들어보시면, 그게 뭔지 어렴푸사게나마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한 소년이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죽음의 신 야마Yama – 한자어로는 ‘염라’라 번역하면서 염라대왕이라 쓰지요 -를 만나러 그가 사는 곳으로 떠납니다. 소년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야마 신이 자리에 없었는데, 그는 신을 만나기 위해 먹을 것 하나 먹지 않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면서 사흘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야마는 그의 인내심에 감화하여 그에게 세 가지 은총을 내릴 테니 뭐든 청하라고 하지요. 소년은 첫번째로 아버지가 자신에 대한 화를 거두고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두 번째로, 죽은 후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를 알게 해달라고 합니다. 야마는 불로 지내는 신성한 제사 의식을 가르쳐 줍니다. 이 둘은 가정과 의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걸 교훈으로 가르치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요청한 것이 바로 쁘라쟈에 관한 겁니다. 소년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불멸하는 어떤 본질 즉 아뜨만이 있는지를 알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야마는 소년이 보여주는 본질에 관한 탐구심에 감화하여 아뜨만이란 그 본성이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과 하나, 라는 범아일여를 설명합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가정과 의례이고 즉 재가의 삶이고 그와 함께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가르치는 이야기인데, 그 깨달음이 바로 쁘라쟈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범아일여라는 것을 수행자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 쁘라쟈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실마리가 되겠네요. 그 범아일여는 수행자는 물론이지만, 재가의 삶을 사는 사람도 깨달을 수 있으니, 삶 속에서 지혜를 깨닫는 것이 바로 쁘라쟈라는 말이 됩니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보면, 쁘라쟈란, 무슨 일이든 벌이기 전에 잠시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즉, 쁘라쟈란 양이나 속도가 아니라 이해에 관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신을 앙망하고 그에게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쁘라쟈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앞글에서 말한 바대로, 삶에서 일어나는 탐진치의 여러 욕망을 다스리고, 자제하면서 그 이치를 통찰하는 것이 쁘라쟈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인도의 종교에서는 어떤 개념을 직접적이고 즉자적으로 설명하는 건 없습니다. 무엇이든 이야기로, 넌지시 설명합니다. 그 개념을 사람마다 달리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어떤 주의나 도그마가 아닌 상대적 문화 존중의 자세와 가깝습니다. 무엇이든, 중요한 건, 그 자체가 아니고, 그것으로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어떻게 실천을 하느냐의 문제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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