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
III 붓다, 세상을 버리고 떠나다. 10. 디빠 自燈明, 法燈明
붓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기록은 더욱 없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건 그의 가르침이지 인간 싯다르타의 역사성을 기록하고자 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여러 기록을 종합해보면, 붓다는 35세에 깨달음을 얻어 깨달은 자 즉 붓다가 되었습니다. 이후 사회를 떠난 후 자신이 조직한 승가에 들어와 제자가 된 사람들을 45년간 가르치고, 80세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깨달음을 열반이라 하고, 죽음을 대열반이라 부르는데, 입멸(入滅) 혹은 입적(入寂)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붓다가 입멸하기 전,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마지막 가르침을 남깁니다. 일종의 유언으로 최후의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으며, 붓다 가르침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니,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즉,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변화하고 사라지니, 수행에 힘쓰고 부단히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수행에 힘쓰고 정진해야 하는지를 제자들에게 남길 순서입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문장이 나오는데, 원인 빨리어로 이렇습니다. 팔리어로 앗따 디빠 Attadipa, 담마 디빠Dhammadipa.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니, 어휘 분석을 좀 하지요. 앗따는 자기 자신을 뜻하고 그 다음 문장 중 담마는 법을 말합니다. 문제는 ‘디빠’에 있습니다. ‘디빠’는 두 개의 의미를 갖는데, 하나는 ‘등불’이고 또 하나는 섬입니다. 그러니 첫째 문장은 자기 자신을 등불로 혹은 섬(이라는 피난처)로 삼고, 법을 등불로 혹은 섬(이라는 피난처)로 삼으라는 말이 되겠지요. 어떻게 해석하든, 붓다의 뜻은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하고, 붓다가 찾은 진리를 중심으로 수행하라는 뜻이 되니, 둘 사이 해석에 큰 충돌은 없습니다. 다만, 한문으로 번역한 경우, ‘디빠’는 대부분이 ‘등’으로 번역하여, 이 두 구절은 自燈明, 法燈明으로 번역한 경우가 많고 섬으로 번역한 경우는 훨씬 적습니다.
이 둘을 지금의 학문으로 살펴보면, 여러 맥락상 ‘디빠’를 섬으로 번역하는 게 더 합당하다는 게 학계에서의 중론입니다. 현대 서양에서의 번역 또한 ‘디빠’를 섬으로 번역합니다. 간단히 그에 관해 설명하면, 《마하빠리닙바나 수따》에는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의 구절이 나옵니다. viharatha는 머무르다의 뜻이니 별 문제가 없는데, dipa 뒤에 sarana라는 어휘가 나옵니다. 이 어휘는 우리가 잘 아는 불교 삼보에 귀의한다고 번역한 ‘귀의’라는 의미로 번역된 어휘인데, 원래 뜻은 피난처, 보호처, 의지처 등입니다. 결국, 이 말이 쓰인 맥락은 ‘고통의 바다속에서 피난처로 삼은’ 의미이므로, 다수의 학자들은 이 디빠를 ‘섬’으로 해석합니다. 붓다의 가르침 즉 법을 엄청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는 피난처로 삼아 그곳에 의지하고 수행하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중국 사람들은 왜 디빠를 등불로 번역했을까요? 불교가 어두운 삶을 밝히는 등불이라고 비유하는 게 대중을 교화하는 게 더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불교라는 종교는 기독교나 이슬람과 같이 유일신을 믿거나 다른 종교와 공존할 수 없는 도그마로 작동하지 않았고, 특히 붓다가 입적할 당시 불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출가한 수행자는 붓다가 제시한 수행의 방법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이지만, 그들에게 사원 유지 비용이나 거처, 음식, 옷, 약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품을 주는 사람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흠모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종교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힌두교도였던 건 사실입니다. 붓다를 존경하고 따르지만, 힌두 사회의 카스트 체계 안에서 살고, 세상 안의 가치를 따르며, 힌두의 여러 신을 믿고 브라만이 제시하는 의례를 실행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붓다는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가르침은 오로지 그 사회를 버리고 오로지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에게만 주는 가르침이었다는 말씀이지요.
그 마지막 말은, 세상에서 가치로 여기는 것을 뒤돌아보지 말고, 스승이 찾은 그 진리의 길 안에서 다른 사람이 제시한 순종의 길을 가지 말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그 길을 찾아가라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붓다는 종교인이라기보다는 니체와 비슷한 태도의 철학자였지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 안 즉 힌두교 안에서 널리 통용되는 어떤 진리라고 하는 것 즉 변화하지 않는 불변의 본질인 아뜨만이 있다는 건 틀렸으니, 그것을 따르지 말고, 모든 건 변하니 여덟 가지의 바른길을 좇고 거기에 의지하여 수행에 게으르지 말라는 거지요. 그는 팔정도와 연기의 법, 안에서 스스로 찾으라고 했을 뿐, 붓다 자신이 찾은 것을 믿고 따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요즘 말하는 종교의 길은 아니지요. 그런데 자신의 주체에 따라 그 길을 가면, 스승이 남긴 가르침에 대한 해석은 분분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의 법은 크게 달라지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건 예견했을까요? 그날이 500년쯤 뒤에 오게 되리라는 것을, 그가 알았을지 몰랐을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그런 날이 와서 자신의 가르침이 크게 변할지라도 ‘스스로’, ‘법에 의지하여’ 가는 길이라면 별로 문제로 삼지는 않았을 걸로 봅니다. 후대 사람들이 ‘스스로’, ‘법에 의지하여’ 길을 찾아보니, 그 길이 스승의 길과 크게 달랐다는데, 그걸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붓다가 남긴 최후의 가르침, ‘자등명 법등명’의 역사적 맥락의 의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