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그대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정의하거나 실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을 보는 것이 사실인지, 그 무엇을 어떤 관점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유독 이런 생각에 많이 잠긴다. 이날도 그리하였다. 불가촉천민들이 마을 희생제를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았다. 칼을 든 도살자 뒤로 희생양이 되기를 기다리는 염소가 수 십 마리가 줄 지어 기다린다. 한 마리씩, 내리치는 칼질에, 그 목이 톡 떨어져 나간다. 분리된 머리와 몸통 양 쪽에서 피가 콸콸콸 쏟아진다. 칼날을 내리치는 장면을 몇 컷 찍고,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담는다. 몸통은 하수구 쪽으로 줄을 지워 나란히 늘여놓고, 머리는 제사 터 한 중앙에 가지런히 늘여놓는다. 누가 봐도 이들에게 중요한 건 몸통이 아니고 머리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순간, 동네 아낙 한 사람이 떨어져 나간 머리를 뒤로 하고 신에게 기도를 하고 제사 터를 빠져 나간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미지로 기록하려면 그나마 동영상으로 찍는 게 더 낫다. 맥락이 그나마 단절되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나 나는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객관적 사건의 맥락을 인위적으로 끊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사실의 맥락에 개입시켜 내러티브를 사진가의 의도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저 한 아낙이 기도하는 장면을 눈여겨 본 사람이나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거나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바로 이 장면만이 이 제사에 존재했음을 의미로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결국, 내가 찍은 이 사진은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희생제의 풍경이 아니라 타자의 목숨을 앗는 것 그리고 그 희생물의 명복을 비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아이러니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계는 결국 이기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표상되든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표상되든 다 마찬가지다. 그것이 사랑이든 희생이든 한 쪽에서 다른 쪽을 위해 일방적으로 대가없이 주는 것을 최고의 사랑이나 희생으로 가치를 매기기 때문이다. 예수의 사랑이나 희생이 그렇고, 어머니의 사랑이나 희생이 그러하다고 숱하게 많은 도덕이 가르친다. 그 도덕은 틀을 만들고, 그 틀은 전형이 되어 그것을 따르라는 강요를 만든다. 그 구조 안에서 도덕의 욕망은 순종을 부르고, 순종은 신화 안에서 미화된다. 그리고 신화로 무장 된 희생의 원리는 사랑과 희생이 결국 폭력과 갈등으로 표출되는 이기의 역사로 확장된다. 인간의 역사가 단 한 번도 피할 수 없었던 갈등, 그 갈등으로 우리가 사는 공동체가 분열되고 폭발될 위기에 처하게 될 때, 사람들이 내 세운 것은 희생이다. 그리고 그 희생은 항상 그렇듯 힘없는 자에 대해 부과하는 강요다. 그리고 그 강요 위에서 희생당한 자는 아름다운 신화로 포장되고, 그를 희생시키는 공동체는 물질의 번영을 만끽한다.
인류애라는 거창한 이름이든 휴머니즘이라는 좀 더 세련된 이름이든 그것은 오도된 희생, 강요된 희생 위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위선의 바벨탑이다. 그 안에서 양은 그것이 실제로 양이든 염소든 아니면 소든 돼지든 심지어는 효성이 지극한 심청이든, 아무 죄도 흠도 없는 예수든 아무 관계없다. 관계있는 것은 권력으로 만들어진 관계와 그 위에서 구조화 된 도덕이라는 틀 위에서 모두 희생당한다, 라는 사실이다. 그 희생양과 그 구조 안에서 계발된 도덕과 숭고의 미는 항상 욕망을 매개자로 중간에 놓는 구도 안에서 형성된다. 욕망은 서로의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피치 못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경쟁과 갈등 위에서 발생한다. 갈등은 싸움을 낳지만, 싸움은 조정과 중재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 조정과 중재는 분명한 승과 패, 우와 열의 관계를 인정하는 선 위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래야 공동체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 희생양이다. 희생양이 갖는 본질적 속성은 스스로의 위치에 따라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희생을 시켜야 하는 자와 희생을 당해야 하는 자의 관계에 따라 정해진다는 사실이다. 누가 그 원리를 작동시키는 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것이 도덕 혹은 종교 혹은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작동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희생, 인간이라는 포식자가 설정하는 이 땅에서의 일방적인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 희생당한 자가 본질적으로 갖는 고유 속성은 아니다. 권력의 문제일 뿐이다. 그 권력의 관계가 변화한다면, 그 속성도 변한다. 그러나 그 권력의 관계는 순서는 바뀔 수 있어도, 그것이 없어지는 건 없다.
모든 풀은 풀이다. 잡초인 풀은 없다.
어느 북아메리카 체로키 인디언
인도 까르나따까, 까벨루르,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