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V. 만민은 불평등 하나니 4. 아슈라마Ashrama 인생 단계
중국 사회는 유교가 만든 이데올로기로 오랫동안 유지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덕목 내지는 윤리는 사농공상, 삼강오륜, 군사부일체 같은 것일 겁니다. 그런 윤리는 법적으로 강제하는 식으로 작동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따르면 사회인으로서 대단한 정당성을 부여받음으로써 막강한 위력을 가했습니다. 고대 인도 사회에도 당연히 이런 역할을 하는 뭔가가 있었겠지요. 바르나-아슈라마-다르마varna-ashrama-dharma라고 부르는 것이, 그런 것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 사회 윤리 덕목이지요. 바르나는 앞글에서 상세하게 설명했고, 이 글에서는 아슈라마ashrama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슈라마는 중국어로 번역된 게 거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음으로 번역된 건 몇 있지만, 뜻으로 번역된 게 없다는 의미지요. 그 뜻을 번역하는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 개념은 전적인 힌두교의 사회 개념이라 불교에 관한 관심만 가진 그들이 굳이 이를 번역하는 데 공력을 들일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러니, 이 아슈라마를 뜻으로 풀어 인생 단계라고 쓰겠습니다. 사실, 마하뜨마 간디나 요가 수행에 관심이 꽤 있으신 분은 이 어휘에 대해 무심결일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수 있습니다. 수행처, 수도원 등을 의미하는 (힌디어의) 아슈람과 동음이의어입니다. 아슈라마는 ‘바르나’와 묶여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다르마 즉 도덕, 법, 의무가 되니 이 셋을 묶어 바르나슈라마다르마로 한 단어같이 만들어 부릅니다. 그 정도로 사회에서 어느 하나를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거라는 거지요.
세상 속에서의 가치를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힌두교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나가려면, 모름지기 아래의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인데, 이 사중 단계를 아슈라마라고 하는 겁니다. 첫 번째는 결혼하기 전까지의 청년기에는 스승 밑으로 들어가 힌두교 경전을 공부하면서 금욕하며 수행하는 시기입니다. 대체로 이 사중 단계와 동음이의어인 수행처 아슈람에 들어가서 학습하고 수행했습니다. 사회 공동체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 지켜야 할 공동체 교육이지요. 물론 고대 사회가 점차 도시화가 진행되고, 복잡해지면서 이 장소는 수행처가 아닌 곳에서도 가능해졌고, 왕실에서는 그 안에 아슈람을 두거나, 돈 많은 개인이 따로 세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일부에서는 사립 학교를 세워 고대 전통을 이어가려 하는데, 요즘은 전적으로 극우 힌두 종교공동체주의에 편향된 교육을 하는 곳으로, 변질해 버렸습니다. 그다음 단계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중심으로 노동하고, 돈 벌고, 소비하고, 관계짓는 일을 하는 단계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은퇴하는 시기입니다. 대체로 아들이 장성하여 또 하나의 가족을 이루면, 대가족 안에서 부모는 곳간 열쇠를 아들 부부에게 물려주고, 세상일에서 은퇴하여, 은둔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뭔가 왕성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가 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 일에서 벗어나 살라는 의미인데, 자식 세대의 일은 자식 세대에게 맡기고 상관하지 말라는 매우 무거운 삶의 의무를 다지는 거지요. 이 시기에 따른 세 가지 단계가 아슈라마의 근간인데, 여기에 삶의 양식이 전혀 다른, 즉 시기에 따른 단계가 아닌 아무 때든, 뜻하는 자는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세상 포기의 단계가 추가되어 사중 단계 체계를 이룹니다. 이 네 번째 단계가 제1장에서 설명한 ‘산냐사’라고 하는 기세(棄世)의 길입니다.
이 아슈라마 사중 단계의 의미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중요 비중을 달리하는 게 보통입니다. 대체로 사회는 두 번째 단계를 중심으로 유지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세 번째 단계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마하바라따]를 보면 이 서사시를 통해 브라만 신학자들이 얼마나 은퇴를 의무로 삼기를 독려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빤두 가문 5형제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왕국을 되찾은 뒤, 모든 세속적 책임을 마친 후 은퇴하고, 그 방편으로 기세자의 단계에 진입하지요. 그들은 모두 히말라야로 떠나는 것을 삶의 마지막 단계로 삼는데, 그 히말라야가 바로 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이 됩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실제 역사에서 얼마나 실천되었는지는 또 따로 분석해봐야 합니다. 그나마 사료가 좀 있는 왕의 경우를 살펴보면, 신화 속에 등장한 이야기 주인공 왕은 상당히 있는데, 그래서 그 전거로 제시되는 게 사실인데, 실제 역사에는 마우리야 제국을 건국한 짠드라굽따 마우리야Chandragupta Maurya 한 사람만 이와 비슷한 단계로 말년을 살았다는 즉 그는 살아서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준 후 은퇴하여 자이나교 수행자로서 남인도에 가서 수도원 생활을 하고, 최종적으로 자발적 단식으로 삶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 외에는 실제 역사의 예는 없습니다. 역으로 아버지가 자식을 죽여 왕권을 유지하거나 자식이 아버지를 죽여 왕위를 찬탈한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결국, 종교에서 규정하는 삶의 사중 단계는 이상일 뿐, 현실은 아닌 겁니다. 그래서 이 아슈라마 특히 세 번째 단계를 근대 이전 인도 사회의 실제로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겁니다. 참, 한 가지 사실이 빠졌습니다. 이 아슈라마 프레임을 따라야 하는 건 브라만, 끄샤뜨리야, 바이샤의 세 상층 바르나에게만 해당하는 겁니다. 슈드라는 이를 따르고 싶어도 따르지 못하게 강제하지요. 불가촉천민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테고요. 마치, 조선시대에 백정이 공맹을 배우고 실천하고 싶다고, 서당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오뉴월에 개만큼 죽도록 맞는 게 상사이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