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VI.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이니 5. 슈라마나 Shramana 沙門*
불교에 대해 조예가 깊은 분은 ‘사문’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한자로 ‘沙門’이라 적으니 무슨 한 스승 밑에서 같이 수학한 동문 비슷한 개념처럼 들리지 모르겟지만, 어떤 뜻이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산스끄리뜨어로 슈라마나shramana, 빨리어로samana라는 단어를 한자로 음차한 것입니다. 불교의 초기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어휘가 이 슈라마나이니, 불교이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이 어휘의 의미를 먼저 제대로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붓다에게 물었습니다. '사문'이라는 게 뭔지? 붓다가 답하기를, 머리를 깎고 법의를 걸치고 걸식하고 다닌다고 사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악을 멈추고, 선을 닦으며, 욕망과 집착을 떠난 자를 사문이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이를 줄이면 욕망과 집착을 떠난 자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전에서는 사문은 신들과 인간, 악마와 신, 브라만과 왕, 백성들 사이에서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머무는 자라고 답했습니다. 사문에 대한 정의라기보다는 그의 자세 혹은 스탠스에 대해 규정한 거겠지요. 이 두 대답을 통해 우리는 당시 인도 사회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브라만이 설정한 힌두교 세계관과 그에 의거해 조직된 사회법 - 예컨대, 카스트, 제사 의례, 업과 윤회 등-에 대해 반발하며 그것을 부정한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심한 논쟁을 했다는, 그리고 그 논쟁은 왕과 백성들 사이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논쟁에는 반(反)브라만 전통을 주장하는 사람들 즉 사문들끼리의 논쟁도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고요. 또 하나는 그 브라만 전통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사람들, 즉 머리 깎고 그들만의 옷을 입고 다니면서 탁발 걸식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요샛말로 ‘짜가’가 많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붓다의 대답에서 '사문'의 정의에 가장 가까운 단어는, ‘수행자’일 겁니다. 이를 부연하면, 세속을 버리고 떠나 세상 바깥에서 뭔가를 찾으려 수행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버린다는 게 무슨 말이며, 왜 그런 행동이 나온 걸까요? 붓다가 살던 당시는 베다 시대라고 하는 1,000년 간의 유목 이동 생활이 끝나고 농경이 크게 발달하여 도시가 곳곳에 발생하고, 국가가 생겼는데, 그 국가들끼리 더 많은 땅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힘을 축적하기 시작했는데, 그 힘을 축적하는 수단으로 대규모 제사를 통해 엄청난 양의 소를 백성들로부터 받아내는 일이 많아졌고, 그런 착취를 합리화하기 위해 힌두교를 통해 제사를 고무 찬양하였다는 겁니다. 그런 권력의 정당성 확보 차원으로 카스트를 고착화하였고, 제사장 브라만과 왕-무사 끄샤뜨리야의 엽합 세력이 맹위를 떨쳤고, 그 와중에 보통의 백성은 철저히 착취당했지요. 그러자 일군의 양심적 지식인이 이러한 불평등하고 착취 만연의 세상을 부정하면서 제사 중심의 의례주의 힌두교에 강력히 반발, 논쟁하고 싸웠으나 세상 안에 남아서 세상을 바꾸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해 세상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 수행자가 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 즉 브라만 전통의 힌두교 세상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 모든 악의 근원인 생산을 거부하고 걸식하며 수행하는 사람들을 사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문들은 세상을 버리고 밖에서 걸식 수행하는 것까지는, 같은 스탠스를 취하지만,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왜 깨달아야 하는지,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 등의 여러 문제에서 서로 입장을 달리하면서 그들 간의 논쟁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붓다는 이를 두고, 세상 안과, 세상 밖에서도 싸우지 않으면서 수행하는 자를 진정한 사문이라고 규정했지만, 그건 붓다의 해석일 뿐, 더 정확하게는 ‘세상을 버리고 밖에서 수행하는 자’를 사문이라 해야겠지요.
그런데, 불교가 처음 시작한 지 500년 정도가 지난 뒤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찾는 일이 더이상 유의미하지 않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출가하는 것과 재가로 사회에 남는 것을 분별하지 않고, 세상 안에서 여러 덕목을 지키면서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게 종교의 핵심이 되지요. 그러면서 사문의 뜻도 변해, 사문이란 세상 안에서 불교의 길을 가는 사람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이렇게 사회화한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가는데, 중국에서는 황제 권력 밖의 구조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부모와 가문을 버리고 효를 버린다는 그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불교는 국가 권력 아래로 들어가게 됩니다.
고대 인도의 사문 개념 즉 세상을 버리고 떠난다는 세계관은 아시아 각지 특히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형태와 의미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그 영향은 만만찮습니다. 채식, 명상, 템플 스테이 같은 문화가 현대 사회에서 변종 혹은 새로운 슈라마나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것들이 원래의 것에서 너무나 달라졌고, 비즈니스의 일종으로 운영된다는 비판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지만, 그를 통해 돈, 섹스, 계급, 권력, 성공 등에 찌들어 사는 우리 삶을 가끔이라도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그 또한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원래’를 근본으로 삼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여기’를 고려하는 그래서 변화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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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꼭지는 원래 II-9의 자리에 들어가야 하나 제 착오로 지금 이 자리에 싣습니다. 나중에 책으로 낼 때는 그 자리로 가고, 이미 있는 II-9의 '끌레샤, 번뇌'가 이 자리로 배치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