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VI.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이니 6. 보디삿뜨와 Bodhisattva 보살
붓다가 규정하기를, 삶은 고통이니, 그것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궁극이라고 설파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내 새로운 신앙이 생겨 사회 밖과 안이 다르지 않으니, 안에서 여러 윤리 덕목을 지키면서 사회적 행위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개념이 생기고, 그렇게 살면서 다음 생에 극락에서 다시 태어나고, 이 세상에서 온갖 복을 얻는 삶이 더 바람직하다는 신앙이 대중화를 크게 이루었지요. 그러다 보니, 붓다 이후 초기 불교에서는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는 석가모니 붓다 이후 그 제자들 가운데 깨달음을 얻은 (그러나 ‘붓다’라 부르지 않는) 아르한뜨arhant (阿羅漢)가 이상적 존재가 되었지만, 대중화된 대승불교에 가서는 불교도의 소망이 깨달음이 아닌 극락으로 환생하거나 여러 가지 물질적 복을 들어주는 존재가 이상형이 되었지요. 자신은 붓다가 되지 않고, 중생들의 그런 여러 소망을 들어주는 보디삿뜨와(bodhisattva)가 바로 그 존재입니다. 그런 보디삿뜨와로는, 구원과 자비를 담당하는 관세음보살, 아들을 낳게 해주거나 가족의 안녕을 들어주는 미륵보살, 죽은 후 저승에서의 안녕을 들어주는 지장보살, 일상의 성공을 위한 지혜를 기원해주는 문수보살 등이 있지요. 모두 힌두교에서의 신이 하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하는 실질적인 신이 된 존재들입니다.
‘보디삿뜨와’란 원래 석가모니 붓다의 전생의 그 사람 즉 이번 생에 붓다가 되는 전생의 석가가모니를 말합니다. 그러니 역사적 인물로 붓다는 단 한 명이니 보디사뜨와도 단 한 명이겠지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붓다가 신격화되고, 그에 따라 여러 붓다가 많이 생기게 되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미타불, 미륵불, 약사불, 비로자나불 등입니다. 그런 여러 신으로서의 붓다들이 생깁니다. 이런 존재들, 즉 석가모니 붓다는 전혀 모르는, 그가 죽은 뒤 500년 정도가 지난 후 불교가 크게 대중화되어 생긴 존재들은 대중들이 신이 필요하여 힌두교에서 가져와 신으로서 붓다를 만들어낸 겁니다. 이렇게 붓다가 완연한 신이 된 시기까지의 500년 동안 그의 전생 이야기가 점차 생깁니다. 그 가운데 한 이야기는, 어느 날 독수리가 비둘기를 쫓아오자, 비둘기는 왕에게 구해달라고 하고, 왕이 그를 숨겨주자, 독수리가 그 비둘기는 내 먹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왕은 중도를 택해 자기 살을 베어 독수리에게 주어 비둘기를 살렸다는, 그 왕이 붓다의 전생 존재 즉 보디삿뜨와였다는 류의 이야기가 많이 생기는데, 대승불교에 가서는 전생에 붓다가 배고픈 호랑이에게 자기 몸을 바쳤다는 이야기까지 생기지요.
결국, 붓다는 스스로 노력으로 깨달음에 이르지만, 그 사실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제대로 전해질지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농담으로 하는 이쁜 마누라를 둔 사람은 전생에 삼대가 나라를 구했을 거야, 라고 하듯 그들 또한 붓다가 누대에 걸친 전생에 엄청난 좋은 업보를 쌓았을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붓다 자신도 자기는 전생에도 깨달음을 위해 수행했다는 언급은 했을 정도니까요. 예수가 팔레스타인 땅에서 자랐으니 그는 하나님, 심판, 구원 이런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획기적인 생각은 할 수 없었듯이, 붓다 또한 업과 윤회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세계를 완전히 벗어난 세계관을 가질 수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가 업과 윤회를 택하지 말고, 깨달음을 택하라고 했지만, 그 스스로 업과 윤회의 세계관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러니 그를 따르는 보통 사람들은 어땠겠습니까? 그 위대한 스승은 전생에 희생과 자비를 엄청나게 쌓았을 거라고 믿지 않았겠습니까? 여기가 보디삿뜨와 개념의 출발이자 변화의 지점이지요.
이 보디삿뜨와 개념이 중국에 전해질 때, 많은 다른 불교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마땅히 뜻으로 번역할 만한 단어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뜻으로는 bodhi는 ‘깨달음’ 혹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지혜’이고 sattva는 존재를 의미하는데, 그 의미대로 옮기면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소리 나는 대로 옮기기로 했지요. 보제살타(菩提薩埵)를 많이 쓰다가 나중에는 줄여서 보살(菩薩)로 줄여 주로 사용하였지요. 결국, ‘보살’이라 함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 미래의 붓다가 될 수행자인데, 점차 불교가 대중화하면서, 세상 버리고 추구하는 깨달음이나 세상 안에서 그냥 있는대로 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고, 살아가는 그 자체가 수행하는 것이니, 수행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승불교의 개념이 생기면서, 재가 사회에 살면서 불교의 길을 가는 모든 중생이 다 보살이 되었습니다.
보살은 수행자든지, 모든 불교도든지, 더 넓혀서, 뭇 중생이든지, 특별히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호칭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게, 우리 조선시대에 들어와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절에 다니면서 불공을 드리는 일을 하던 게 거의 여성이어서, 그들을, 보살이라 불렀는데, 그게 나중에 여성 불교 신자만을 보살이라 부르게 된 겁니다. 반면에 남성은 유교 사회에서 좀 높이 부르는 용어로 속세에 사는 선비의 뜻으로 ‘처사(處士)’라 불렀지요. 그때 여성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기도, 아들 장원급제하게 해달라는 기도 등을 주로 많이 했고, 남성은 절에 큰돈으로 시주를 하는 등 불사에 참여하는 일을 주로 맡았지요. 불교가 붓다의 깨달음 추구에서 시작하여 기복, 구복의 신앙으로 변하면서 보디삿뜨와의 개념도 아주 많이 변했던 겁니다. 원래의 것이, 변질하여 나중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종교의 주체가 스승이 아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인,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세계관도 교리도 모두 바뀌는 게 자연스럽다는 인도 세계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