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VI.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이니 8. 찟따 Citta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인도 델리대학교에 가서 박사학위를 위해 인도 불교사를 연구할 때, 저는,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지금도 당시와 학문적 입장은 그리 크게 다르진 않은데, 당시 고대 불교에 대한 제 시각은 불교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민에 대한 아편의 역할을 너무나 잘 수행하고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대승불교의 불이론이 그러하였고 그 가운데 정점은 ‘일체유심조’였다고 생각한 거지요. 모든 게 사람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 뿐, 그 어떤 사회 현상이라도 실체가 없다는 말을 인민들이 믿고 의지하면서 인민들은 엄청난 재물과 노동력을 사원에 바쳤고, 그 곤궁한 삶을 구조적으로 변혁하려 하지 않았다는 시각입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서 인도 불교사 연구를 계속하면서 불교를 바라보는 그 관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었고, 50이 넘고 60이 넘었습니다. 그러면서 언젠가 어느 날, 저는, ‘일체유심조’가 제 마음에 들어와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일체유심조’는 고대 한국에서 불교도들이 아주 많이 읽고 의지하던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붓다가 설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지만, 그건 그 이야기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화엄경의 편자가 취한 방편일 뿐, 붓다가 설한 세계관과는 다르니, 붓다가 가르친 것은 아닙니다. ‘일체유심조’는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일이라는 게, 다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붓다는 세상일이라는 게 모두 억겁의 시간 속에서 규정할 수 없는 인연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은 모두 변하니, 영원한 항상(恒常)이란 없다고 했을 뿐인데, 이것이 대승불교에 와서, 모든 행위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마음이 작용하여 만들어낸 것이라는 이치로 바뀌었지요. 그러다 보니, 불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현상은 사회에 실재하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자기 마음이 지어낸 표상, 즉 요샛말로 하면 이미지가 된 것이지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아내를 빼앗겨도, 절을 위해 죽도록 일만 하고, 새경으로 받은 건 다시 절에 다 바쳐도, 과다한 세금을 걷어가 보리쌀 한 톨 없이 자식들이 굶어 죽어도 모두 그런 현상은 실체가 아니고 마음이 만들어낸 이미지라고 생각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일체유심조’를 세상에 널리 알린 승 원효(元曉, 617~686)의 잘 알려진 일화를 들어보고 다른 생각을 한번 해보도록 하십시다. 《삼국유사》에 이렇게 나옵니다. “원효는 당나라로 건너가려 의상(義湘)과 함께 당성(唐城)에 이르렀다. 밤에 비가 와서 계단을 따라가다 동굴 같은 토굴(土窟)에 들어가 머물렀다. 곧 잠이 깨서 물을 마셨다. 아침에 보니 그 물은 해골 속에 고인 물이었다. 원효가 깨달아 이르기를, ‘모든 현상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며, 외부에 특별한 실체는 없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돌아와서 신라로 돌아갔다.” 원효에 따르면, 실체라는 게 변하는 것이니, 그 자체가 영원한 게 아니고, 마음을 바꿔 먹으면, 달리 보이니, 그 외부 현상을 바꿀 수도 있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겁니다. 외부 현상 혹은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외부 실체의 성격도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대하느냐의 여부도 아니고, 돈과 기술과 실력이 얼마나 쌓였느냐도 아니고, 오로지 그 외부 실체를 대하는 개인의 태도 즉 마음가짐이라고 거지요.
원효는 저 사건이 일어난 후 불교의 심오한 계율을 배우기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귀국하여 세상으로 나아가 저잣거리 사람들을 만나면서 실천합니다. 그래서 그 이전까지는 왕실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불교의 성격이 인민들 사이에서 희망의 메시지로 널리 퍼지게 되지요. 그들은 일체유심조 같은 화염경의 가르침을 따라 국토 전체를 부처님이 거하는 극락과 같은 땅 즉 불국토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근대적 가치가 지향하는 자유, 평등, 박애, 민주와 같은 가치를 관계적 차원에서 키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지요. 이를 지금 여기 우리에게 적용해, 달리 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일체유심조’의 사고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공존과 조화의 길을 토대로 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는 통찰로 삼을 수 있을 거라는 거지요.
‘일체유심조’를 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다른 데 있습니다. 저는 교수가 된 이후 지금까지 35년이 넘도록 사회를 바꾸기 위해 진보의 입장에서 정치와 사회운동을 꽤 오랫동안 해왔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 태도에 문제가 좀 있었습디다. 세상을 눈곱만큼이라도 바꾸려면, 세상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어 재단하고 평가하고 비판하고, 구조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하고, 강요하지 말고, 조직보다 사람 개체를 존중하는 사고가 무엇보다 우선적이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학문하는 사람 관점에서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분석하여 그것을 비판하는 관점을 갖추지만, 그것이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유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 거지요. 세상이란 자로 잰 듯 분별하여 평가할 수도 없는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외부가 아닌 내부 즉 마음에 주체적으로 접근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인데,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는 반성이 생긴 거지요. 평생 한 학문보다 살아온 삶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