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VIII. 기복, 그 순수한 바람 4. 만뜨라 Mantra 呪文
힌두교와 불교 모두 물질로 축복받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무병장수와 대대손손 복 많이 받는 걸 기원하는 종교라는 것 말씀드렸습니다. 힌두교는 애초부터 그리하였고, 그런 힌두교에 반발하여 붓다가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궁극을 향해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나 500년이 지나면서 불교는 완연한 기복의 종교가 되었지요. 그 중심에는 사회가 있고, 그 사회 안에는 가족, 친족, 이웃 등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 자신과 공동체의 안녕과 부귀를 위해 그들의 신에게 간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 기도는 일부는 뜻이 명확한 언어도 있지만, 일부는 뜻이 명확하지 않은 소리의 모음이나 어휘의 연결 문장도 있습니다. 뜻이 불분명한 언어, 우주의 신성한 원초적 힘을 가지고 있는 걸로 믿는 그 언어를 만뜨라mantra라고 합니다.
물론 다른 종교에도 이런 건 있지요. 그러니 다른 종교에서의 그런 마술적 언어를 통틀어 우리말로 주문(呪文)이라고 하는데, 불교 당사자들은 주관적인 입장에 서서 진언(眞言)이라고도 부르지요. 그들은 그 소리나 언어를 신성한 힘을 가진 것이라 간주하고, 주술을 행하는데 제1의 근원으로 삼지요. 힌두교에는 여러 만뜨라가 있는데, 어느 때나 쓰는 가장 보편적이며 최고의 만뜨라는 가야뜨리 만뜨라(Gayatri mantra)라는 겁니다. 신화에 따르면, 어떤 위대한 왕이 있었는데, 신선이 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엄격한 수행을 통해 신성한 지혜를 꿰뚫게 되었고, 드디어 하늘로부터 만뜨라를 계시로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가야뜨리 만뜨라입니다. 산스끄리뜨어로 “옴 부르 부와흐 스와흐 / 따뜨 사위뚜르 바레니얌 / 바르고 데와시야 디마히 / 디요 요 나흐 쁘라쪼다야뜨”라는 문장입니다. 이를 번역하면, “옴, 모든 세계를 탄생시킨 자비로운 빛이시여, 경배받으소서. 태양의 길로 나타나시어, 우리의 지성을 비추소서.”라는 뜻의 언어인데, 계속해서 암송하는 거지요. 많은 사람이 이 문장을 외워서 말을 할 줄은 알지만, 그 뜻이 뭔지는 잘 모릅니다. 우리 불교 절에 가면 반야심경을 무슨 뜻인 줄 모른 채 그냥 암송하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건 이 구절이 뜻은 있지만, 혹은 뜻도 없는 경우에도, 그 뜻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구절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 뱉는 소리가 신성한 힘을 갖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고려 시대에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승려들이 모여 불경을 독송하였던 겁니다. 뜻을 새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요.
만뜨라는 영적으로 지혜를 얻게 하는 기능도 하지만, 주로 물질적인 목표를 이루게 하는 힘으로 작동합니다. 그들은 만뜨라를 읊으면, 그것을 듣는 상대가 영적 또는 물리적 변형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주 쉽게 설명하면, 심한 병에 걸렸거나 정신이 나간 사람에게 적절한 만뜨라를 암송하면, 병의 원인인 귀신이 도망가 병이 낫는다고 믿는 거지요. 병이 낫는 정도가 아니고, 죽음 직전에 구해 주기도 하고, 큰 재난을 막아주기도 한다고 믿지요. 앞에서 몇 차례 말씀드린, 누군가가 죽음의 문턱에서 비슈누나 쉬바에게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항상 내뱉는 게 바로 만뜨라입니다. 그러니,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벽사(辟邪) 행위를 하는 의례 언어라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악으로부터 보호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그것을 간구하는 자가 온전한 믿음 즉 손톱만큼의 의심도 없이 하는 기도입니다. 힌두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성으로 추앙받는 이는 사위뜨리(Savitri)라는 여인입니다. 그는 남편이 젊은 나이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야마 신 즉 염라대왕 앞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지혜와 순수한 헌신으로 남편의 생명을 되돌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물론 죽음을 물리치는 만뜨라를 계속해서 진심을 다하여 암송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 결과 남편은 죽지 않았답니다. 운명까지 바꾸는 힘을 가진 게 만뜨라라는 거지요. 앞에서 설명한, 죽은 훈령 쁘레따가 더 이상 구천에 떠돌지 않고, 좋은 곳으로 가 환생하도록 기도하는 것도 만뜨라지요. 우리 [삼국유사]에도 이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의상대사가 배를 타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히려 하자,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만뜨라를 외웠고, 그러자 폭풍이 가라앉고 바다는 평온을 되찾았다는 이야기지요.
만뜨라가 진짜로 그런 마술적 힘을 가지고 있습니까, 라고 제게 물으시면, 저는 모릅니다, 라고 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믿음의 세계의 문제고, 그들이 갖는 세계관에 관한 것이지, 과학과 이성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제가 분명히 아는 바는 이런 겁니다. 만뜨라는 단순한 영적 도구만이 아니고, 힌두교와 불교의 세계관 위에서 형성된 문화 안에서 어떤 생각을 구조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겁니다. 논리적 사고의 도구로 기능하지는 않고, 신앙 위에서 사회를 조직하는 데 어떤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거지요. 문화란, 항상 분명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형성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니, 그들의 문화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잣대로 판단하고 규정하고 등급까지 매기는 것은 그들과 싸우자는 겁니다. 그 위에서 인류의 비극이 일어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