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VIII. 기복, 그 순수한 바람 10. 링가 Linga 男根
힌두교와 불교의 기복 신앙은 신석기 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땅을 어머니로 생각한 다산숭배가 시간이 흐르면서 체계화한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땅과 짝을 이루는 뭔가가 있어야 다산숭배가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땅만 숭배하는 것이 생산 행위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은 남근을 숭배했습니다. 주로 남자의 생식기 같이 생긴 돌을 줍거나 깎아 만들어 적당한 곳에 안치하고 거기에 물을 뿌리거나 꽃으로 장식하면서 다산을 기원한 거지요. 그들은 우주가 어떤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의해 운행된다고 믿었으니, 그 근저에는 음과 양의 합일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지요. 그 안에서 한쪽은 땅을 여신으로 간주하는 지모신(地母神) 관념이 또 다른 쪽에서는 남근을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는 남근 숭배가 작동한 겁니다. 이 남근을 그들은 링가(linga)라고 불렀습니다.
링가는 밀교 전통 속에서 우주의 절대 에너지 샥띠와의 통합을 상징합니다. 혼자 단독으로는 존재 의미가 없는 거지요. 일반적으로 수직 모양 원통형의 돌을 성화 의례를 거쳐 안치하면 그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닌 링가가 되는데, 대부분 또 다른 돌로 된 접시 모양의 여성 생식기형의 돌 위에 얹히지요. 그 음부처럼 생긴 돌을 요니(yoni)라고 부릅니다. 링가는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와 관련을 맺고, 요니는 시바의 여신과 관련을 맺는데, 그 둘은 결합하면서 그 존재를 확인하지요. 그러니 링가와 요니는 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인 한 가운데의 신성한 공간, ‘자궁실’에 안치됩니다. 이 말은 링가가 다른 종교에서도 나타나듯, 우주의 중심축 즉 악시스 문디(axis mundi)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지요. 링가는 꼭 사원 안에만 안치되는 게 아니고, 의례를 행하는 곳에서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적절한 의례 순서에 따라, 사제가 세정(洗淨)을 정성스레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흔히 우리 초파일에 행하는 관정(灌頂) 즉 불상을 물로 위에서 흘러내리는 관불 의례도 이 전통의 한 예입니다. 관정은, 힌두교에서 하는 링가 관정이나 불교에서의 불상 관정이나 모두 물을 위에서 끼얹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물에 이어 우유, 꿀, 요거트, 기름, 장미 잎 담근 물, 코코넛 물 등을 링가 위에 붓습니다. 가능하면, 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갠지스강이나 야무나강, 고다와리강 등에서 길은 물을 사용하지만, 여의찮을 경우, 깨끗한 우물물을 사용하지요. 물론 이런 링가 세정 의례는 사원에서만 하는 게 아니고, 일반인 가정에서도 합니다.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지키기도 하겠지만, 바쁜 현대인은 그 상징을 더 간소하게 상징화하여 물만 흘러내리기도 하지요.
링가가 이렇게 우주 본원의 최고 존재의 위치에 오르면서, 링가는 자연스럽게 힌두교 최고의 절대 존재인 속성도 없고 모양도 없고 그래서 형상화할 수 없는 우주 근원인 브라흐만이 인간의 눈에 드러나게 재현된 상징물이 되었다, 라는 신학이 발전하게 됩니다. 못 배우고 힘없는 인민들의 신앙을 힘 있는 사람들이 포섭하기 위해 자기들의 세계관으로 연결시키고 흡수한 좋은 예가 됩니다. 그러면서 그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어엿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자기들의 신앙을 ‘당당하게’ 영위해 나가는 거지요.
세계 모든 종교에 다 나타나는 현상으로 힌두교에도 현몽(顯夢)이라는 게 있습니다. 힌두 신화에서부터 영화, 문학, TV 드라마 등 지금의 대중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현몽의 장면은 아주 고전적인 방식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 현몽 가운데 가장 자주 나타나는 게 바로 이 시바 링가의 현몽이지요. 링가가 절대 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기적의 매개체가 되는 거지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정성을 다해 시바를 숭배하니, 어느 날 꿈속에서 어떤 장소에 링가가 현몽해서 꿈을 깨서 그곳에 가서 땅을 파보니, 링가가 나왔단다, 그래서 그곳에 사원을 세웠고, 그 사원이 바로 이 사원이다, 라는 이야기는 전국 도체에 많이 있습니다. 히말라야에 있는 힌두교 성지 가운데 최고의 성지인 아마르나트(Amarnath) 동굴에서는 매년 여름이 되면 얼음으로 된 시바 링가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자연 현상을 시바 신의 형상으로 여겨 숭배하는 참배객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그로 인한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나지요. 그들은 이 얼음 링가의 모습이 매년 달라지는 걸 두고, 시바의 가호나 계시로 받아들이며 여러 방법으로 그 계시를 풀어내는 역술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은 우리 불교 주변에서도 많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납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독교에서도 자주 일어나지요. 기적이든 이적이든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 종교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적이나 이적이 그 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느냐의 여부가 달라질 뿐입니다. 링가는 상징이지요. 진짜로 시바가 현현한 실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느냐 안 믿느냐에 관한 신앙 영역의 문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