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긷는 인문 22

by 이광수

간디는 분단 된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단이 구체화 될 무렵, 그의 영향력은 과거와는 달리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 자리에 그가 감쌌던 자들에 대한 혐오가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그건 명백한 현실이었으나 간디는 그 현실을 애써 부인하였다. 파키스탄으로 가서 다시 한 번 그들을 설득하려 하였다. 이미 국민국가는 건국되었기 때문에 되돌린다는 것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래도 고집을 피우며 그곳을 향해 장도를 더났다. 분단 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해가 기울어가기 시작할 무렵 기도를 하러 가려고 몇 발자국을 뗀 후 힌두 민족주의 광신도가 쏜 총에 맞아 바로 운명하였다. 1948년 1월 30일의 일이다. 그가 남긴 건, '오, 라마 신이시여'...딱 그 한 마디였다. 영락없는 연약한 종교인의 한 마디였다. 그 안에는 비폭력도, 조국의 독립도, 이슬람과의 평화도 없었다. 그 어떤 말보다도 인간다운 언어였다.


그가 쓰러진 자리에 그의 비석을 세우고, 그가 그날 오후 걸어 나온 그 몇 십 발자국과 그가 남긴 마지막 언어를 그대로 형상으로 남겨 놓았다. 아주 속 된 한 인간의 그저 그런 소리가 비석에 새겨지면서 그 소리는 성스러운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하찮은 외마디 소리를 남긴 인간 간디는 성의 언어를 남긴 신의 반열에 들어간다, 저 발자국들과 비석 위에서. 그가 남긴 비명 같은 외줄기 한 마디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 메시지로 둔갑을 한다. 비석에 새긴 건 단순한 이미지임에도 그것은 살아서 역사하는 날 선 검의 힘마저 갖는다. 표식을 남긴다는 것은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당사자가 그런 작업에 대해 무슨 말을 하였고, 무슨 입장을 갖는 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로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이용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수단일 뿐이다. 그들에게 관심은 권력일 뿐, 진실은 아니다. 그들은 진실 혐오주의자다.


죽은 이미지라는 것이 살아 있는 힘의 원천이 되면서 그 인간으로서의 삶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신의 이야기만 남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죽은 신화라는 것이 살아 있는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이 뒤편으로 밀려나버린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도 그것을 거짓이라고 주장하면서 거짓을 진실로 세워 널리 퍼트린 사람이 주인공으로 살아온 것이 우리 역사의 실체다. 진실이 감춰진 것이 슬픈 게 아니라,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 가는 악행이 선행의 자리에서 떵떵거리는 게 슬픈 일인 것이다. 단 한 번도 피하지 못한 역사의 슬픈 코미디다.


신화는 있었을 것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은 없었던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국가나 민족 혹은 종교와 같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것으로 쌓은 정체성으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행위를 확인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문화를 공유한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양육된 사람들이 자라난다. 모두가 한 곳만 바라보고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다. 여럿이지만, 결국은 하나다. 그들이 나서는 곳이면 항상 어디든지, 정의와 평화의 노래가 불러지지만, 여지없이 갈등이 일어난다. 공동체와 공동체의 싸움이다. 상대는 상대대로 자신들의 신화를 만들었을 터이니, 결국 인간의 싸움은 신화의 싸움인 것이다. 인간사 피할 수 없는 섭리다. 만들어진 이분법의 세계가 겪어야 하는 역사의 숙명 말이다.


이 무거운 메시지를 사진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아무 텍스트도 없이 그저 사진으로만 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빛과 그림자밖에 없는, 다른 어떤 수단도 없는 그저 평범한 이미지로 저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할 만한 방법을 찾아보고자 하지만, 별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사진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만, 이것은 이미지고, 그 이미지 자체보다 이미지의 신화적 성격을 더 잘 전해주는 건 없다는 사실에 기대는 것일 뿐이다. 이미지가 세계를 뒤흔든다. 거기에 사람의 실체는 담을 수 없다. 누군가 읽어낼 수 잇으면 읽어낼 뿐이다. 사진으로선 거기까지 할 수는 없다.


“갈릴레이, 내 보기엔 자네는 무서운 길을 걷고 있네. 오늘 밤은 인간이 진리를 보게 된 불행한 밤이네. 또한 인간이 자기 족속의 이성을 믿는 현혹된 시간이네. 누구를 보고 뜬 눈으로 돌진한다고 말하겠나? 바로 파멸을 향해 가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세. 그것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에 관한 것일지라도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을 권력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내버려 들 줄 아나?”

베르톨트 브레히트 《갈릴레이의 생애》

22.JPG 인도, 델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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