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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수 Apr 25. 2019

사진으로 긷는 인문 37

10년 전 사진인데, 사진을 다시 보자마자, 그때는 저런 핸드폰이 있었구나를 맨 먼저 떠올린다. 사진의 가장 우선적인 속성이 과거의 기록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의 기표는 기의를 만들고, 그 기의는 또 다른 기의를 만드니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들이 무심하게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도 저런 폰을 썼는데, 심지어는 저이 같이 허리춤에 고리를 걸어 분실하지 않도록 하고 다니기도 했는데, 하는 추억이 순간적으로 스친다. 지나간 시간은 즐거운 추억이기도 하고, 그리운 추억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슬픈 추억이다. 모든 게 다 사라져 버리고 나 또한 늙어가고 있어서다. 사진을 한다는 것은 사진을 찍고 해석하고 전시하고 글과 함께 소통하는 것도 좋지만, 한 번 씩 꺼내보면서 추억으로 잠겨보는 것도 필요하다. 사람이 산다는 게 그리움을 빗겨나 살 수 없을 테니까. 

    

10년 전이라지만, 저 사진을 찍을 때 그 때 그 순간의 기억은 생생하다.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좀 하는 사람이라는 건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 풍체 하며, 저 폰 들고 전화 하는 폼 하며, 사원 한 복판에서 목소리 높이는 거들먹거림 하며, 무엇보다도 저 앞에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에 떨면서 보스의 분부에 어쩔 줄 모르고 떨고 있는 저 가냘픈 사람의 존재로 인해 그리 느꼈다. 순간적으로 위에서 찍어 누르고 싶었고 포커스를 보스에 맞추고 싶었다. 마침 옆에 뭔가 작은 단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 올라가 찍어 누르듯 한 컷을 찍는다. 저이는 자신을 그렇게 찍는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더 천연덕스럽게 거들먹거린다.  

   

악은 사람 누구에게나 그 자체에 본질적으로 깃든 것은 아닐 것이다. 꼭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악이란 타자와 맺는 관계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흔한 이야기지만, 물이 우유가 되고, 독이 되듯, 문제는 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소나 뱀과의 관계에 달려 있는 것일 것이다. 독이라는 것이 그것을 잘못 먹었을 때만 우리에게 해를 끼칠 뿐, 그 존재 자체로 독인 것은 아니듯, 악이란 것도 어떤 상황이 만들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악이 행사하지 못하도록 적절하게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악 자체가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다만,  최소화 시키는 것일 뿐. 곰팡이란 축축한 상황을 기다리고 있을 테고, 공기 중에 물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곰팡이가 다시 피어날 조건이 또 온다는 것은 상수인지라, 악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결국 세계는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정보나 지식을 얻는 것이거나 찍거나 찍혀 나타난 사진으로 사유하거나 기록하거나 기억하는 일이다. 그것은 감각적이어서 감성을 자극하여 실제 사회에서 운동력을 추동할 수단으로 적절하다. 돈, 명예,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는 사진 하기, 사진을 통해 사람과 자연에 대해 앎과 예술을 추구하는 욕망이나 어떤 쾌락을 얻는다면 그것은 선이 된다고 믿는다. 개인적인 명예욕을 위한 것은 해롭고, 대의나 공동체를 위한 것은 유용한 선이 된다고 믿는다. 개인의 성취를 더 큰 욕망의 수단으로 삼는 것,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믿는다. 상을 받기 위한 사진, 명예를 얻기 위한 사진보다는 공감을 꾀하는 사진, 사진 찍는 행위를 통해 나 안의 나를 돌아보고, 주변과 소통하는 행위로서의 사진이 사람 사는 세계에서의 일이리라고 맏는다.      

사진을 통해 지혜를 얻어내기란 어렵다. 시를 쓰거나 음악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사진은 엄연히 존재하는 대상을 자신의 뜻대로 전유해버리는 성격이 너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가도 일방적이고, 독자도 일방적이다. 저 두 사람을 보고 악의 속성까지 언급하면서 사유해 본 것은 매우 사진적인 사유다. 그렇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의식이 과잉되면서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사진이 위험한 것은 읽는 사람에게 해석의 권한이 한도 끝도 없이 주어지는데, 그것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한데, 그로 인해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생긴다는 것이 ‘나’를 거칠게 만든다. 개인의 수양 없이 쓰기에는 멋지지만 위험해서, 치명적인 매혹이다.   

  

감각기관의 대상들을 생각하는 자에게는 

그것들에 대한 집착이 생기며

집착으로부터 욕망이 생기고

욕망으로부터 분노가 생긴다.     

《바가와드 기따》    

 

인도, 따밀나두 깐찌뿌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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