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 여행이 어려운 건가요?

걱정이 많아서 캐리어를 두고 내려버렸다.

by 박강하



티셔츠 세 벌, 바지 두 벌, 겉옷은 두 개, 속옷은 5벌, 양말도 5켤레. 세면도구와 각종 충전기. 가장 중요한 여권. 인쇄한 비행기 예약내용까지. 같은 내용물을 보고 또 바라봐도 무언가 더 챙길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여행뿐 아니라 새로운 것이라면 뭐든지 걱정한다. 재밌어 보이는 모임도 친구와 함께가 아니라면 참여하지 못하고 이직을 할 때는 일 걱정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걱정을 먼저 한다. 이런 내가 인생의 첫 비행기를 혼자 타게 되다니.


다행히 나에겐 윤이 있다. 윤이 어떤 사람이냐면 기차 시간이 가까워져 전전긍긍하고 있는 내 옆에서 이렇게 말하는 친구다. “못 타면 다음 거 타면 돼~” 같은 충청도인인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난 그의 태도를 닮고 싶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느긋해지는 건지 묻기도 했다. 그때 윤은 말했다. “이건 타고 나야 돼.” 아, 그렇구나. 자란건 충청도지만 내가 태어난 건 서울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상하이로 향하기 전날 나는 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행기를 같이 탈 순 없겠지만 공항까지라도 함께 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윤은 흔쾌히 내 집에 방문했고, 열려있는 여행 가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짐 안 싼 거지?”

“이게 다 싼 거야..”


윤은 아무 말 없이 내 옷을 전부 꺼내 다시 접기 시작했다. 나도 옆에 앉아 윤을 힐끗거리며 같은 방법으로 옷을 접었다. 가방에 빈공간이 반이나 생겼다.


다음 날 함께 공항철도를 탔다. 그 안의 사람들은 모두 여행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지만 표정은 정반대였다. 여행의 기분에 들뜬 사람들과 달리 나는 불안하게 먼지 하나 붙지 않은 흰 여행 가방의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힐끗 윤을 바라보니 인스타그램에 열중이었다. 말을 걸고 싶은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 후 홀로 공항 안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비행기 안에 타인들과 함께 앉아있어야 한다니! 그 순간 갑자기 인천공항을 두 정거장을 남겨두고 배속을 쥐어짜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 감각은 곧 아랫배로 이어지고 당장 화장실로 뛰어야 한다고 괄약근이 예고 없는 통보를 했다. 아직 갈 길이 남았다거나 비행기를 못 탈 수도 있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배가 아파서 다음 역에서 내려야겠어!"


그 말만 남긴 채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갔다. 계단을 서른 개쯤 내려간 후 게이트를 지나 좁은 복도를 스무 걸음쯤 뛰어 겨우 화장실을 만날 수 있었다. 시원스레 일을 보고 나올 땐 모든 근심이 사라졌지만 내 손엔 여행 가방도 사라져 있었다. 화장실에 두고 왔냐고? 지하철에 두고 탈출했다. 너무 기막힌 상황을 맞이하면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어지더라. 이성이란 게 작동하지 않았다. 윤은 바로 역무실로 들어가 상황을 설명했다. 역무원은 뜻밖에도 간단한 해결책을 주었다. 역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날은 평일 오후였기에 공항철도 안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분실 우려가 적었다. 그래서 종점까지 간 나의 여행 가방을 직원분이 친절히 챙겨서 가지고 돌아와 주셨다. 물론 윤이 우리가 내린 곳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해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사히 여행 가방을 되찾고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는 두 번째 난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길은 앞, 왼쪽, 오른쪽으로 뻗어있었다. 이때도 윤이 도움을 주었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확신했다. 이곳에 혼자 왔다면 길을 잃었을 거라는 걸. 총 3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에 끝도 없이 펼쳐진 각 항공사 카운터들. 떠나기 전 비행기 타는 법을 검색해본 것도 공항의 규모 앞에서는 조금도 힘이 되지 않았다. 블로그엔 ‘자신이 탈 비행기의 카운터를 찾으세요’라고 쓰여 있긴 했지만 어떻게 찾는 지까지는 쓰여 있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난 가만히 있었다는 얘기다. 윤이 전광판을 찾아 항공사의 위치를 찾고 줄을 서고 짐을 맡기는 것까지 모두를 도와주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옆에서 벌벌 떤 것 정도?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윤은 내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이후는 내가 스스로 해낼 영역이었다. 앞서있는 사람이 외투를 벗고 백팩을 벗어 바구니에 담는 걸 유심히 지켜보고 곧바로 따라 하고 티켓에 적힌 게이트를 찾아 모든 면세점은 무시하고 이정표만 따라 걸었다. 다행히 긴장하여 일찍 나온 덕분에 여행 가방을 잊어버리는 상황에서도 삼십 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도 혼밥마저 잘 하지 못하는 내게 혼자 하는 여행이란 설렘보다 도전이며 두려움이다. 그때마다 이때를 떠올린다. 적어도 지금은 비행기를 타지 못해 떨지는 않잖아? 언젠간 여유 있게 낯선 거리를 걸으며 그곳이 주는 즐거움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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