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잘 쓰게 되었냐고요? 잘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어요.

by 박강하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나는 주 5일 일하고 집에 오면 쓰러져 누워있기 바쁘다. 주말엔 12시간 이상씩 자고 매일 해야지 되뇌지만 절대 하지 않는 일들이 쌓여있다. 그런 일엔 대청소, 옷 정리, 책 읽기, 영어공부 등 집안일과 자기 계발이 대부분이지만 글쓰기, 그림 그리기, 각종 공예 같이 취미생활에 관련된 것도 있다. 서른 하고도 다섯을 먹는 동안 그중 제대로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머릿속에만 쌓아두고 평생 동안 '언젠가는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언젠가는 내일, 모레, 다음 주로 미뤄지고 영영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척하며 살았다.


나에겐 항상 모든 것에 의욕이 넘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최근에 글쓰기에 관심을 생겼다고 했다. 때마침 트위터에서 본 강의가 생각나 "나랑 글쓰기 배워볼래?" 하고 물었다. 뭐라도 배우면 도움이 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신청한 날부터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 내가 묻어날 텐데. 난 찌질하고 게으르고 잘하는 것도 없고. 이런 나를 사람들 앞에서 내보인다고? 아 어떡하지. 거짓말해야 되나. 글쓰기 수업에 가기 직전까지 긴장감으로 괜히 신청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첫 수업이 굉장히 가벼워서 걱정은 깨끗이 사라졌다. 어릴 때 살았던 집에 대한 묘사, 다른 사람에 대한 묘사 위주였다. 아, 이 정도면 앞으로도 편하게 들을 수 있겠다 싶었다. 퀘퀘한 구석에 고여있는 생각을 꺼낼 필요 없이 가볍게 써나가면 되겠구나. 그러나 한주 한주 지날수록 조금씩 나를 드러내야 하는 수업이 이어졌다.


처음엔 남에겐 말하지 못할 부끄러운 일들을 꺼내는 데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점점 나를 내보이는 것이 편해졌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 덕분이다. 나는 무섭고 창피해서 못 할 말들을 다들 쉽게 턱턱 내보였다. 대단함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도 조금 더 용기를 내볼까. 한번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나니 다음부턴 편해졌다. 별거 아니네. 그냥 다 꺼내버리자. 허물 한두 개쯤 보인다고 사람이 이상해 보이거나 나쁘게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됐다.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 뭘.


어떤 날은 프로파일링 수업처럼, 어떤 날은 심리치료를 받는 기분으로. 날마다 다른 커리큘럼과 함께 사람들과 공감대를 만들어내며 한참 대화하다가도 수업이 끝나면 산뜻이 헤어지는 관계. 그중 마음에 맞는 사람이 생겨서 나중에 따로 만나기도 하고. 내가 꿈꾸던 모임이었다.


그래서 글을 잘 쓰게 됐냐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쓰게는 됐다. 이제껏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내 글이 훌륭하지 않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딘가에 내가 쓸 이야기가 훨씬 훌륭한 이야기로 이미 완성되어 있을걸 알기도 했고. 하지만 선생님은 이야기했다. 자신만의 시각,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라. 그건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완벽한 글은 상상에서만 존재한다. 머리 위로 번개가 떨어졌다. 그렇구나! 일단 쓰면 되는구나. 그래서 썼다. 내가 겪은 것. 내 생각들. 쓰고 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한데 뒤섞여서 불분명했던 감정과 생각이 명확해졌다. 그러다 보니 더 쓰고 싶어 졌다. 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꼭 세상에 유익하고 훌륭한 글이 아니더라도 내가 쓰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써도 되는구나.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건 정말 큰 수확이었다. 덕분에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을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 그냥 하면 돼. 날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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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썼던 글을 모아 브런치 작가에 신청했고, 한 번의 낙방 후 재도전하여 성공했다.

나와 함께 수업을 들은 친구도 함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제가 들었던 글쓰기 수업 트위터 계정이에요. 여성전용입니다.

https://twitter.com/sogeul_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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