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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May 30. 2020

요조 님 죄송합니다

나의 첫 번째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 떡볶이.


요조 님 죄송합니다. 제목만 보고 떡볶이에 대해 써봤자 뭐 얼마나 대단한 글이겠나 하는 억측을 했습니다. 떡볶이로 책 한 권을 썼다니? 떡볶이 가게만 죽 늘어놓은 맛 평가뿐이겠구나. 이런 건방진 생각이었죠. 맛집 안내라든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에세이는 일차원적인 설명만 늘어놓고 끝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첫 페이지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떡볶이 정류장'이 '떡정'으로 읽혔다는 말에 절로 흥미가 돋더라고요. 저도 야한 농담을 꽤 좋아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실제로 제가 알고 있는 가게들이 등장했기에 금방 책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요조 님을 영상으로 보았을 때는 자신의 생각을 침착하고 세심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의 첫인상도 그와 비슷했습니다.                


가장 좋았던 에피소드는 영스넥에 관한 챕터였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다녔지만 사적으로 알지 못했던 영스넥 사장님과의 대화는 에세이 안에 소설이 삽입된 것 같은 색다른 재미였습니다. 특히 울컥했던 내용은 사장님이 아들의 선생님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간곡하게 부탁을 했던 부분이에요.      





사장님 : 그냥 그때 삶이 힘들었어요. 삶이 힘들면 사람이 거칠어져. 우리 집이 그렇게 편안한 가정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힘들고, 내가 애들 아빠하고 따로 살거든, 모든 걸 다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굉장히 힘들었죠. 정신을, 계속 날을 세우고 살았지. ... 학교 몇 번 불려갔죠. 아들하고 같이 몰려다니는 애들은 부모들이 와서 다 자퇴서를 썼어요. 나는 아주 끝끝내 자퇴서를 안 썼어요. 여기서 애 자퇴하면 인생 끝난다고 이를 악물고 버텼지. 담임한테 도와달라고 계속 부탁하고 사정하고. ... 복도에서든지 어디에서든지 얘를 멀리에서 보시면 아는 척 좀 해주시고 끌어안아주시고 용기 좀 주시라고 그랬어요. 근데 선생님이 정말 약속을 지킨 거야!

3학년이 되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땐데, 누가 뒤에서 부르더래. 보니까 옛날 담임이더래. 가까이 다가오길래 목인사만 했대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끌어안아주면서 넌 잘할 수 있다고, 선생님은 너 믿어, 그러면서 등을 두드려주더래. 나중에 엄마, 내가 선생님을 오해했나 봐, 그러더라고요.      



영스넥 사장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눈물을 흘렸어요.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떡볶이 가게 주인의 인생 이야기가 이렇게나 감동적일 수 있다니요.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녔고 누구의 이야기도 가볍지 않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저도 홍대나 합정을 자주 다녔기 때문에 아는 떡볶이 집이 몇 군데 나오기도 해서 반가웠습니다. 특히 박군네가 처음엔 굉장히 맛있다가 점점 맛이 변해버린 과정은 너무나 공감이 되었어요. 그곳이 없어졌을 때 '그 봐. 맛이 변하니 망할 수밖에'라고 생각해버렸는데 요조 님은 친히 메시지까지 보냈다는 것을 보고 얼마나 떡볶이에 대해 애정을 가졌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커피에 대해 요조 님의 떡볶이에 대한 사랑만큼 애정이 있는 편인데요. 저도 여의도에 있는 슈퍼커피의 커피 맛이 변했다고 느꼈을 때 공식 이메일로 항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거든요. 제가 보낸 메일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제목 : 본사에서 대리점들 커피 퀄리티 컨트롤 부탁드립니다.      

내용 : 슈퍼커피 생길 때부터 커피맛이 좋아서 몇 년째 이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일 많이 방문하는 지점은 국제금융로점이에요.

그런데 몇 개월 전 점주분이 바뀌신 후부터 커피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특히 오렌지 비앙코요. 예전엔 오렌지가 싱싱한 느낌이 있어서 씹으면 과즙이 나왔는데

요즘에 먹어보면 오래된 것처럼 과즙이 나오지 않고 씁쓸하고 퍽퍽한 느낌마저 납니다.

그래서 최근엔 오렌지 비앙코를 주문 안 했어요. 몇 번 먹어보고 영 아니다 싶었거든요.

그리고 오늘 라떼를 먹었는데.. 원두는 본사에서 보내는 것이 맞지요? 전에는 특출나게 맛있었는데 이제는 다른 커피전문점들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제가 슈퍼커피 진짜 좋아해서.. 예전처럼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어서 메일보내봅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에는 더 엄격해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미미네 또한 저도 처음 생겼을 때의 추억이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작은 공간에 미미네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튀김 냄새에 홀린 듯 가게 안에 들어갔어요. 당시 백수였던 저에게 새우튀김 한 마리에 2,500원이라는 가격은 한 끼 식사비용과 맞먹었기 때문에 구입에 큰 결심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겨우 새우튀김을 한 마리만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곧 마감이라며 남은 새우튀김을 세 개나 더 담아주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종이봉투 가득 담긴 새우튀김을 가지고 돌아와 반지하방에서 친구와 나누어 먹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새우튀김은 처음이었습니다. 단지 덤으로 더 얻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와, 껍질이 하나도 안 딱딱해. 껍질까지 바삭바삭하고 맛있다.” “진짜. 머리도 맛있어. 난 새우 머리 안 먹는데 이건 머리도 고소하고 부드럽다.”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누며 노란 장판 위에 새우튀김을 깔아놓고 먹었어요. 머리와 다리가 전부 달린 손바닥보다 큰 새우에 튀김옷이 얇게 발린 그 튀김은 딱딱한 부분이 전혀 없어서 입에서 바스러졌죠. 아직도 그때의 새우튀김을 생각하면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아는 가게가 나오면 나온 대로 반갑고 모르는 떡볶이 집이 나오면 또 그것대로 맛을 세심하게 표현해주셔서 책에 나온 모든 곳을 방문하고 싶어 졌어요. 특히 부산의 깡통시장 골목에서 먹었던 떡볶이 맛의 표현이 일품이었습니다.     




이혜연과 나는 이 맛있음은 도대체 무엇인지, 어처구니없을 때 내는 감탄사를 번갈아 내뱉으며 삼천 원어치의 떡볶이를 정신없이 없애버리고 조금만 더 달라고 부탁했다.     



직접적인 맛 표현은 아니지만 이 문장이 책 안에서 가장 공감이 가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극도로 맛있는 걸 먹었을 때는 말이 없어지고 감탄만 연달아 뱉거든요. 그래서 아, 그 정도로 맛있구나! 하면서 떡볶이의 맛이 굉장히 궁금해졌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떡볶이가 당겼습니다. 최고의 리뷰는 책을 읽은 후 다음 끼니가 떡볶이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적어도 책은 읽은 날의 저의 저녁 메뉴는 떡볶이였습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컵에 들은 떡볶이를 먹으며 다시 책을 들추어보았지요. 읽지도 않고 요조 님의 책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요조 님은 말이 없고 차분한 이미지로 알고 있었기에 글도 왠지 지루할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제 편견이었습니다. 책에 담긴 에세이는 모두 산책을 하는 것 같은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조금씩 다른 장소를 보여주었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제각각이라 흥미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잘 쓴 에세이란 작은 경험이라도 자신만의 말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쓴 글은 재미와 감동까지 주는 것이구나하고 감탄했죠. 이 말을 친구한테 전하자 요조 님은 노래하는 사람 중에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이다 라고 하더군요. 친구도 어떤 방송에서 들은 말이라고는 했지만 그 말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였고요.               

아무튼,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었습니다. 재밌는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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