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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Sep 26. 2018

드디어 '요론섬'에 발을 딛다

너어무 좋다! 진짜 진짜 가는 거야! 나도 모르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하이톤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친구도 발을 동동거리며 나의 기분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일본에서 국내선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 주변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보며 게이트로 향했다. 여권을 꺼내 손에 들고 있었지만 외국인도 국내선에서는 여권이 필요하진 않았다. 게이트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분명 곧 이륙시간인데 아무도 탑승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지? 여기가 아닌가? 편안한 자세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친구와는 다르게 불안함이 몰려왔다. 여기서 또 실수해선 안 돼! 하는 생각으로 표를 한 손에 쥐고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스튜어디스에게 티켓을 보이며 이곳에서 탑승하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맞다며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하고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러 작은 버스에 탔다가 내리면서 나는 왜 출발시간이 거의 다 되서야 비행기에 탑승하기 시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준비시간이 길게 필요하지 않은 프로펠러가 달린 작은 비행기였던 것이다. 나와 친구는 '귀여워!' 를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요론에 익숙한 이들은 개의치 않고 먼저 비행기에 올라탔고 우리처럼 요론이 처음인 관광객들만 비행기와 한참을 사진을 찍었다.


삼십분을 날아 요론에 거의 도착해서 섬을 내려다 봤을 때 비현실적인 바다색에 놀랐다. 이제껏 봐왔던 바다의 짙은 푸른색이 아닌 섬 주변을 감싸고 있는 에메랄드 빛깔. 마치 이 섬만 지구와 동떨어진 다른 세계에 속한 것 같았다. 게다가 요론 공항은 얼마나 귀여운지. 서울의 지하철역보다 작은 공항 안으로 들어가니 A4 용지만한 작은 안내판에 '게스트 하우스 카이' 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게스트 하우스의 오너 아유바상이 마중을 나온 것이다. '콘니찌와!' 우리는 기운차게 인사했다. 아유바상은 태풍 때문에 고생했다며 잘 왔다고 반겨주셨다. 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2미터 남짓한 컨베이어 벨트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이정도 길이면 그냥 비행기에서부터 짐을 끌고 와도 되겠어!




정면에서 바라본 요론공항




아유바 상의 승용차에 여행 가방을 싣고 도로를 달렸다. 내 생애 그렇게 느린 자동차를 타본 적이 없었다. 시속 30킬로쯤 됐다. 10분도 안되어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는 인터넷에서 본 것과 다르게 새로 칠을 한 것 같았다. 하얀 벽 한쪽의 푸른 문이 그리스를 연상케 했다. 아유바상은 안쪽으로 가방을 옮겨주며 이야기했다.


"지금은 게스트 하우스에 다른 손님이 없어서 둘 뿐이에요. 그러니 잠자리는 자유롭게 선택하면 되고, 요리를 해도 됩니다. 세탁기와 샤워실은 5분정도 걸어가야 해요."


짐을 정리하고 우미카페로 오라는 말을 남긴 후 아유바상은 자리를 비웠다. 둘밖에 없다는 사실에 신나서 우리는 곳곳을 둘러보았다. 거실로 쓰이는 공간엔 바테이블이 있었고 선반엔 여러 책이 꽂혀있었는데 한국어 책도 보였다. 가장 큰 방에는 TV도 없고 이층 침대와 작은 테이블이 전부였다. 그리고 거실 바로 옆엔 한사람이 잘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곳은 여자와 남자가 같이 쓰는 건가? 오늘이라도 남자가 오면 어떻게 되는 거야? 물어보면 될걸 의미 없는 토론을 나눴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짐을 정리하고 작은 가방만 하나씩 들고 나서는데 밖에서 잠글 자물쇠가 없었다. 번호 키도 물론 없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도덕적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짐을 놓고 밖으로 나왔다. '아, 뭐 괜찮겠지~ 여기 스타일인가봐.' 분명 다른 곳이었으면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을 테지만 요론에 오자 엄청나게 느긋해졌다.

 



게스트하우스 '카이'의 외관




아유바상은 숙박요금을 정산하며 이야기했다.


"한국 사람은 엄청 오랜만이에요. 몇 번 오기는 했었지만 많지는 않아요. 요론이 처음이라고 했죠? 한 바퀴 구경시켜 줄게요."


갑작스러운 호의에 놀라고 있는 사이, 아유바상은 벌써 가게 밖으로 나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쫄래쫄래 뒤를 따랐다. 친구가 앞좌석에 타고 나는 뒷좌석으로 들어가기 위해 손잡이를 당겼다. 그때, 빠각 소리가 나며 손잡이가 그대로 내손에 딸려왔다. 난 '헉'하는 소리와 함께 아유바상을 바라보았다.


"스미마셍!! 도시요~~ 혼또니 스미마셍!!(죄송해요! 어떡하죠. 진짜 죄송해요!)"


울상을 지으며 최대한 미안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아유바상은 표정의 변화 없이 '아~ 괜찮아요, 괜찮아.' 하며 내가 든 손잡이를 받아들고는 창문 안으로 손을 넣어 뒷자리를 열어주었다. '진짜 죄송해요!'를 몇 번 더 말했지만 아유바상은 진짜 괜찮다며, 원래 좀 흔들거려서 부러질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앞좌석 아래의 서랍에 부러진 손잡이를 대충 집어넣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는 여전히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차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




아유바상은 먼저 가까운 해변들을 보여주었다. 숙소와 가장 가까운 우도노스 비치는 백사장이 길게 이어진 꽤나 규모가 있는 해변이었다. 날씨가 약간 흐리긴 했지만 깨끗하고 투명한 바다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한쪽엔 튜브를 빌려주기도 하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었다. 아유바상은 이 해변이 가장 가까우니 해수욕하기에 편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우리가 해변을 넋 놓고 구경할 동안 아유바상은 바다를 거닐며 바닥에서 무언가를 줍고 있었다. 차에 돌아오며 아유바상은 자신이 주운 조개들과 소라껍질을 보여주었다. 바다가 예뻐서 그런지 소라도 더 예뻐 보였다. 그 중 가장 큰 소라를 들고 아유바상은 차안을 뒤적거리더니 아까 부서진 뒷좌석 손잡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손잡이 위에 소라를 얹으며 '이렇게 하면 작품처럼 보이죠?' 하고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줄 농담이었지만 나는 다시 죄송한 마음이 들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게스트 하우스 안에 조개로 꾸며진 여러 작품들이 있던데 아마 이런 식으로 하나씩 만들어진 작품들이었던 것 같았다.


그 다음 들른 곳은 안경의 가장 중요한 로케지 '요론빌리지'였다. 실제 영화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으로 그 숙소를 보자마자 나와 친구는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영화랑 똑같아! 숙박하는 손님들에게 폐가 되면 안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후 이곳에서 묵을 예정이라 가볍게만 둘러보고 돌아 나왔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아유바상은 자신을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 요론빌리지의 앞의 도로를 건넜다. 그리곤 풀이 아무렇게나 자란 좁은 길을 걸어 숲으로 들어섰다. 물기를 머금은 풀이 다리에 닿을 때마다 축축한 기운에 종아리가 서늘해졌다. 길을 3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돌로 만들어진 연단이 나타났고, 그 앞은 풀이 자라나긴 했지만 평탄한 바닥이 예전엔 작은 광장이었던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유바 상이 말했다.


"예전엔 요론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한 적이 있어요. 이곳이 페스티벌 장소였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고 즐기는 모습을 잠시 상상하며 또다시 발을 옮기는 아유바상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발아래에 급하게 자리를 뜨는 소라게가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작은 해변이 눈에 들어왔다. 그야 말로 아무도 없는 숨겨진 해변이었다. 아유바상이 말했다.


"여긴 프라이빗 비치입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바위가 양쪽을 감싸고 있는 모양새가 이곳을 더욱 사적인 공간처럼 보이게 했다. 해변의 물은 놀랄 정도로 투명해서 깊어지는 부근까지도 아래의 모래들이 비춰보였다.




요론은 어느 해변을 가도 에메랄드 빛이다

 



그 외에도 요론에 하나밖에 없는 동굴과 '메가네'의 촬영장소인 테라사키 해변 등 여러 곳을 방문한 후, 마지막으로 작은 빙수 집에 들러 빙수를 한 그릇씩 사주셨다. 우리가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지만 태풍 때문에 고생해서 대접하는 것이라며 한사코 권하시기에 우린 빙수를 하나씩 골랐다. 주문한 빙수가 나오고 맛있게 먹으면서 게스트 하우스 방값도 싼데 이렇게 드라이브에 빙수까지 사주시면 남기는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다시 숙소에 우리는 데려다 준 후 아유바상은 집으로 돌아갔다. 우린 저녁을 먹고 항구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기다란 모래사장을 어둑해진 때에 걷는 것은 특별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여기는 요론이라고! 한참을 모래사장 위에서 달리고 춤도 추면서 요론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만끽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털썩 누웠다. '별 보인다!'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았어도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해방감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한국에서는 끝없이 괴롭혔던 미래에 대한 걱정조차 이곳에서는 오려내 버린 듯 떠오르지 않았다. 모아둔 돈을 여행으로 써버려도 되는 걸까. 다시 취직은 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뒤로하고 떠날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오지 못했을 거다. 역시 오길 잘했어!




요론 항구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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