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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Sep 30. 2018

요론섬에서 생애 첫 스노클링을

이게 자유구나!

요론섬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없다. 그래서 근처 편의점에서 (여기도 24시간 오픈은 아니다) 아침식사용으로 도시락을 사들고 왔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노래를 틀어놓고 오늘 하루 뭘 하며 놀지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예전 어떤 자동차 광고에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설레었던 적이 있는가.' 라는 광고 카피를 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소리였지만 요론에서는 그것이 이루어졌다. 놀러왔으니까


스노클링을 좋아하는 친구는 바다에 가자고 했다. 나도 바다를 좋아해서 요론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장 스노클링하기 좋은 해변이라고 설명되어 있는 아카사키 해변에 가기로 했다. 친구는 챙겨온 래시가드와 스노클링 마스크, 오리발을 가방에 넣었다. 이제껏 한 번도 스노클링을 한 적이 없는 나는 물장구만 칠 생각으로 수영복만 달랑 챙겨 밖으로 나섰다. 지도를 보니 아카사키 해변과 우리가 있는 곳은 꽤 거리가 있었다. 뚜벅이 여행자인 우리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요론의 버스정류장 안내표지판

요론에는 노선이 하나뿐인 버스가 다닌다.(방향은 남향과 북향으로 나누어짐) 하루 5번의 운행만 하는 버스는 시간만 잘 맞춰 타면 정말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우리는 미리 인쇄해둔 버스 시간표를 들고 숙소 가까이 위치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이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가 '오하요 고자이마스' 하고 먼저 인사해주었다. 우리도 같은 인사말로 대답했다. 버스에 타며 기사님께 아카사키 비치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역에 도착하면 알려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담아서. 기사님은 고개를 끄덕였고 안심한 채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버스도 정말 느린 속도로 출발했다. 평생 타본 버스 중에 가장 느린 버스였지만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길을 달리는 제일 기분 좋은 버스 탑승의 경험이었다. 





아카사키 해변에 도착할 동안 사람 구경은 그다지 하지 못했다. 덕분에 버스 내부는 한적했다. 버스에만 의존하여 생활하기엔 불편함이 있어 대부분 승용차나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류장에 멈춘 후 기사님은 잘 알아듣지 못할 말을 우리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것이 이곳에서 내리라는 말임을 깨닫고 감사하다 인사하며 정류장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후끈한 거대 사우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정류장에서도 아카사키 해변까지는 7분정도 걸어야했다. 1분 정도 걷자 땀이 온몸을 적셨다. 남쪽 섬의 햇볕은 처음 겪어보는 사람에겐 뜨거움을 넘어선 따가움이었다. 얼른 바다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점점 더 발걸음이 빨라졌다.




맑고 좋은 날씨로 보이지만 습도와 열기가 엄청나다




해변에 가까워지자 어제 빙수를 먹었던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아, 여기가 아카사키였구나. 나름대로 사람이 자주 방문하는지 빙수가게도, 샤워시설도 있었다. 파나우루 공화국(파나는 요론의 사투리로 "꽃" 우루는 "산호"의 의미. 조상이 남긴 문화 유산과 타고난 자연 경관을 보호하겠다는 소망을 담고 건국된 패러디 국가)의 마크가 찍힌 입구를 지나 완만한 비탈을 따라 내려가니 스노클링하기 좋은 해변답게 곳곳에 작은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잠시 해변을 거닐며 바다색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발소리에 놀란 노랗고 까만 줄무늬 뱀이 빠르게 헤엄쳐 바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거 없이 '뱀이다!' 를 외쳤다. 무섭다기보다 신기하기만 했다. 바다가 투명해서 저만치 헤엄치는 것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놀라웠다. 게다가 이런 예쁜 바다에 사람은 우리뿐이라니.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크게 웃기도 하고 해변을 뛰어다니기도 하며 한참 뛰놀다 바다에 들어갔다.




파나우루 왕국 마크가 있는 아카사키 비치입구




친구는 래시가드를 입고 스노클 마스크에 오리발을 끼고 바다를 헤엄쳐 들어갔다. 나는 수영복 위에 입었던 티셔츠를 벗고 바다 속에 들어가 물장구를 쳤다. 사진이나 TV로만 보던 꿈같은 바다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만으로 웃음이 났다. 한참 바다 속을 헤엄치던 친구가 내 곁에 오더니 마스크를 벗어 내밀었다. 


"너도 해봐. 진짜 재밌어."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덜컥 겁부터 났다.


"아냐. 난 수영도 못하는데." 


"수영 못해도 돼. 이거 쓰면 입으로 숨 쉴 수 있어." 


코에 물이 들어가지 않을까 물을 먹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지만 친구는 후회하지 않을 테니 한 번만 해보라고 자꾸 부추겼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못할 거 뭐있겠어.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친구는 먼저 입으로 숨을 쉬는 것에 익숙해지라고 한 뒤, 물 위에서 힘을 빼고 엎드려 보라고 했다. 자기가 잡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는 무릎정도 오는 깊이의 바다에서 천천히 엎드려 보았다. 친구는 내 배를 받쳐 내가 물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몸이 바다 위에 둥실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몸에 힘을 빼니 거짓말처럼 몸이 위로 떠올랐다. 게다가 마스크 넘어 깨끗한 바다 바닥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난 일어나 마스크를 빼내고 친구를 향해 소리쳤다.


"나, 떴어!"


"어어, 봤어! 그 봐. 되지?"


"우와. 이거 너무 신기해!"


"또 해봐."


나는 이번엔 친구의 도움 없이 엎드렸다. 물론 당연히 이번에도 몸이 떴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그냥 힘을 빼고 엎드리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물에 떠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쁘고 흥분되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물속을 구경했다. 저만치 멀리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난 또 일어나서 친구를 향해 외쳤다.


"나 지금 물고기 봤어!"


"난 물안경 쓰고 수영할 테니까 네가 이거 쓰고 놀아."


친구는 내가 좋아서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더 기뻐하며 스노클 마스크를 양보해주었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용기를 내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발을 옮겼다. 바다 위에 둥둥 떠서 고개를 움직여보니 작은 바위 주위에 물고기들이 모여 있었다. 그 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본능적으로 팔을 휘저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내 몸이 나의 팔의 움직임에 맞추어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마음속으로 흥분해서 외치고 있었다. '내 몸이 이렇게 쉽게 움직이다니!' 마치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와, 이런 게 진짜 자유구나. 이래서 돌고래들이 물속을 선택했구나. 별별 생각이 다 들고 왜 사람들이 수영을 배우는지도, 왜 다이빙을 하는지 모든 게 다 이해가 되었다. 바위 근처에 가보니 귀엽고 작은 색색의 물고기들이 저마다 생활을 꾸리고 있었다. 작은 구멍에 숨었다가 나오는 아이, 자기들끼리 뭉쳐 이리저리 헤엄치는 아이들, 구애를 하는 듯 보이는 물고기 까지. 한참을 쳐다보고 있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카사키 해안 (출처:요론섬 홈페이지)




그러다 허벅지 뒤와 등이 따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에서 나와 허벅지를 돌아보니 빨갛게 살이 익어있었다. 마침 몇 시간을 놀만큼 놀아서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친구는 이런 깨끗하고 물속 멀리까지 보이는 바다는 처음이라고 했다. 샤워를 하고 어제 들렀던 빙수 집에서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바지가 아직 젖어있어서 버스에 올라타고도 우리는 봉을 잡고 서있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앉지 않았기 때문인 걸 깨닫고 우리는 겨우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그제야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 있었다고 익숙해진 요론의 번화가에 내린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런데 단순히 조금 탔다고 생각한 허벅지와 등이 점점 더 따갑고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밥을 먹기 전에 약국에 먼저 들렀다. 나는 약국 주인께 팔뚝을 내보이며, "하다가 이따이데스"(피부가 아파요.) 라고 말했다. 약국 주인은 알로에젤을 꺼내주셨다. 연고 같은 약을 줬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일본어는 초급 수준이라 그냥 받고 나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옅은 화상엔 알로에가 최고라고 한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등과 허벅지가 따가워서 잠이 오질 않는 거다. 자기 전에 친구가 알로에를 듬뿍듬뿍 발라주었지만 후끈함이 사그라드는 것은 잠깐뿐이었다. 겨우 잠이 들었지만 돌아누울 때마다 '아, 따거!' 하며 잠에서 깼다. 아아. 햇볕을 무시한 벌을 이렇게 받는구나. 난 무슨 객기로 비키니를 입은 걸까. 햇볕에게 여행초보자로서 교훈을 제대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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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론 버스 정보


요금 : 일률 200엔

전화 번호 : 0997-97-3331

정류장 지도 : http://www.yorontou.info/docs/yoron-bus-time-table-map.pdf


*2일 자유티켓은 500엔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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