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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Oct 16. 2018

요론섬 사진이 없는 이유

보고 있는 데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해변과 처음으로 바다 아래 세계를 접해본 경험은 화상의 아픔 따위는 별 것 아니게 만들었다. 간조 때 더 많은 물고기를 볼 수 있다는 섬 주민의 말에 관광안내소에서 들어가 간조 시간을 물어보았다. 당연히 간조라는 어려운 단어를 알지 못했기에 손짓 발짓을 섞어 설명했더니 다행히 이해하고 대답해 주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일본어로 간조는 한국어와 상당히 비슷한 ‘칸쬬-’ 라는 발음이었다.) 이번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우도노스 비치에 가기로 했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해변이라 교통걱정도 없었다. 친구는 마침 래쉬가드를 두벌 가지고 있었고, 나에게 하나를 빌려주었다.


하늘을 얼룩지게 만든 구름 사이로 내려온 햇볕이 바다를 반짝반짝 빛나게 했다. 백 미터 달리기를 다섯 번쯤 해도 될 것 같은 넓은 해변가엔 사람이라곤 나와 친구 둘 뿐이었다. 우도노스는 아카사키와 달리 바위가 많지 않았다. 작은 바위 들이 커다란 공깃돌처럼 드문드문 떨어져 있을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바닥이 비쳐 보이는 투명한 바다를 보니 금방 가슴이 설렜다. 서둘러 핸드폰과 돈, 수건 등이 들어간 작은 비닐 가방 두개를 어디에 놓을까하고 둘러보다 가까운 바위 뒤에 잘 기대놓았다.


물에 한걸음씩 들어가자 모래 색과 비슷한 물고기가 재빨리 옆으로 헤엄치며 길을 비켜주었다. 기분 좋은 선선한 바닷물을 가르며 허벅지까지 물이 올라오는 지점에 도착했다. 힘을 빼고 엎드리자 가볍게 몸이 떠올랐다. 바닥의 모래알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고 고개를 움직여 앞쪽을 바라보니 작은 물고기들이 바위에 몰려 헤엄치고 있었다. 손을 휘저어 바위 근처로 다가가자 입이 튀어나온 선명한 파란 색 물고기가 내 얼굴을 향해 헤엄쳐왔다. 우왁! 하면서 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자신의 보금자리를 위협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서 물고기를 보기 시작했다. 주황색, 노란색, 파란색 등등 어항에서만 보았던 물고기들이 실제로 바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백사장을 따라 이동하며 물고기 구경을 했다. 그러다 커다란 바위가 눈 앞을 막아섰다. 바위 앞으로는 성인 한걸음 정도 폭의 모래사장이 있었고 바위 크기 때문에 뒷편을 볼 수가 없었다. 바위 너머가 궁금해졌다. 


겁도 없이 바다 속을 헤엄치며 바위를 둘러 가보기로 했다. 지나가며 보니 바위에는 푸른색 게들이 기어 다녔다.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게들은 서둘러 옆으로 뛰어 틈 사이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커다란 바위를 넘어가니 모래사장위에 또 다른 바위들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우도노스 비치도 사람이 없었지만 이곳은 사람이 방문한 흔적이 전혀 없어보였다. 흡사 동굴처럼 가운데가 뻥 뚫린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 곳을 보면 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 어차피 별게 없을 걸 알면서도 친구와 모래사장을 올라갔다. 모래사장 위에도 게들이 기어가고 있었다. 게들은 낯선 인간들에 놀란 눈치였다. 자연이 깎아낸 거칠게 생긴 바위들 사이를 한 바퀴 돌아보며 오지가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만 세상에 남은 느낌. 연인끼리 오면 참 좋겠네.


다시 바다로 들어가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파도가 전보다 거칠었다. 몸을 좌우로 흔드는 물 속에서 어렵게 걷고 헤엄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위 앞의 모래사장이 사라진 것을 보고나서야 알았다. 아,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구나! 물놀이를 안 해본 티를 내면서 더 수심이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큰 바위를 넘어갔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 조금 애를 먹었다. 우도노스 비치로 돌아왔을 때는 기진맥진이었다. 밖으로 걸어 나가며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 짐 놓아둔 바위가 어디 있었더라?"


"어? 여기가 아닌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짐을 놓아둔 바위를 찾았지만 모래사장뿐, 바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돌아온 곳이 우도노스 비치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다른 지형지물은 우도노스 비치의 것이 맞았다. 불안감을 안은 채 걸어 나오는데 물과 땅의 경계에서 무언가가 파도에 휩쓸려 앞뒤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친구가 소리쳤다.


" 내 모자!"


친구가 물에 흠뻑 젖은 밀짚모자를 들어 올리자 촤르륵하고 머금었던 물이 빠져나왔다.


"이게 왜 여깄어?"


"몰라. 아까 바위 위에 벗어둔거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마주본 우리 둘의 눈빛은 크게 흔들렸다.

아. 설마. 설마.

밖으로 나와 바다를 바라보고 나란히 섰다. 망연자실한 마음에 절로 힘이 풀려 입이 벌어졌다. 그 바위. 분명 이쯤이었는데. 친구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설마 저건가? 수면 위로 한뼘정도 튀어나온 바위 머리가 보였다. 에이. 설마. 난 마치 전문가인양 스노클링 마크스를 쓰며 말했다. 


"내가 보고 올게."


근처까지 걸어가 머리를 바다 속으로 넣는 순간 허탈함에 웃음이 터졌다. 이거 맞네. 바다 아래에 가방은 열린채 내용물은 파도 때문에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먼저 꺼내들고 다른 것들도 하나씩 주워 모았다. 축 늘어진 비닐 가방 두개를 들고 나오는데 친구가 배를 잡고 웃었다. 


"뭐야, 저게 그 바위였어?" 


"우리 진짜 바보다. 물 들어올 걸 어떻게 생각 못했지?" 


"와. 대박 웃기다." 


한참 서로의 모자람에 감탄하며 웃다가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이거 살릴 수 있나? 바닷물에 빠진 건 회생이 불가하다 듣긴 했지만 일단 헹구고 말려보기로 했다. 다른 건 괜찮은데 요론에 와서 찍은 사진들이 너무 아까웠다. 아아. 진짜 황당하다. 


"바다가 천엔을 먹어 버렸어."


"어. 찾아봐도 돈은 안 보이더라. 어디 멀리 갔나봐."


계속 웃음이 터졌다. 


"근데 어떻게 하나도 화가 안나지? 그냥 웃겨." 


"여기가 요론이라서 그런가봐."





-





요론 매거진의 다른 글에서의 사진들은 이후에 다시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과 이 당시 숙소에 두고온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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