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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Oct 19. 2018

천국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요론섬 안의 작은 섬-유리가하마

요론의 하늘은 매일 다른 화폭에 담긴 그림과 같다. 거리를 걷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면 얼마든지 새로운 작품을 질릴 틈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바다는 낯선 색으로 빛났다. 흡사 포토샵으로 그린과 민트를 섞어 채도를 높게 설정한 듯한 색이었다. 섬의 어디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옥색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태풍 때문에 이틀이나 늦게 요론섬에 도착한 우리는 매일이 간절했다. 최대한 많은 바다를 가고 싶었다. 그동안 방문한 해변들은 서로 닮아있었지만 어디도 같지 않았다. 바위가 많은 곳에서는 바다뱀을 보기도 하고 물고기가 숨을 곳이 많은 해변에서는 니모와 닮은 열대어가 아주 많았다. 유명한 관광지를 가지 않아도 어느 곳이건 요론이라는 것에 만족했다. 게스트하우스를 떠나 요론토빌리지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길에 아유바상이 물었다.


“유리가하마에 가봤습니까?”


“아니요. 저희는 그곳에 갈 예정은 없어요.”


“절대 가보는 것이 좋아요. 정말로.”


“그래요?”


“나도 가본 적이 오래되었으니 짐을 숙소에 두고 함께 가도록 해요.”


즉흥적인 제안이었지만 어떤 경험도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었기도 하고 몇 년이나 요론에서 살아온 아유바 상의 말이었기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아유바상은 ‘절대로’라는 표현은 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가보지 않으면 정말 후회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체크인을 마치고 아유바 상의 차에 다시 올라탔다. 


요론섬의 번화가와 정반대에 위치한 유리가하마는 하루 중 몇 시간 동안만 바다 중앙에 나타나는 작은 모래사장 섬이다. 그것도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보통 관광객들은 유리가하마의 출연 여부를 살피고 여행은 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론섬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이다. 나와 친구는 '뭐, 그냥 백사장이 나타나는 것뿐인데, 별거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거다. 




사진출처 : 요론섬 공식 홈페이지




유리가하마는 모든 사람이 글라스 보트라는 바닥이 유리로 된 배를 타고 들어간다. 하지만 해변에 도착한 아유바상은 신발을 벗어 들고 한 손에 쥐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바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엉거주춤 그 뒤를 따랐다. 물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깊이였지만 다리를 잡아끌어 제법 움직이기 힘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모래 때문에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아유바상을 따라 신발을 벗어버렸다. 걷기에 훨씬 수월했다.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사이를 스며들며 간지럽혔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옅은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깃털 같은 구름들이 간헐적으로 흩어져 햇살이 그대로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이백 미터쯤 떨어져 보이는 하얗게 빛나는 백사장이 수평선 중앙에 완만히 솟아있었다. 아유바상을 선두로 우리는 말없이 일렬로 걸어갔다. 


“뒤돌아 봐!”


중간 정도 왔을 때 친구가 소리쳤다. 와!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해변이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사방 어디를 봐도 빛나는 수면이었다. 유리가하마의 뒤로는 급격하게 깊어지는 수심 경계를 따라 파도가 기다란 흰 선을 만들고 있었다. 삼십 분 정도 걸으니 유리가하마였다. 그저 모래뿐인 그 작은 공간에 올라섰을 때 '아아, 천국이네요.'라는 말을 해버렸다. 사후세계는 믿지도 않으면서. 뭐든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모래도 물도 하늘도. 환하고 밝은 세계 속에 나와 두 사람만이 서있었다.




사진출처 : 요론섬 공식 홈페이지




“거북이야!”


친구가 거북이를 발견했다. 와! 하는 소리를 내며 거북이 쪽으로 다가갔다. 거북이는 열심히 모래사장을 기어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바다거북을 봤다. 껍데기에 살짝 손가락을 대어보니 미끌미끌했다. 


“운이 좋네요. 보통 여기까지 잘 올라오지는 않는데.”


아유바상이 말했다. 우와우와! 우리는 계속 감탄사만 내뱉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는데도 아유바상이 왜 이곳은 꼭 와야 한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풍경을 우리 세 사람만 보고 있다는 것은 사치였다.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결혼식을 한다면 꼭 요론에서 해야겠어. 가족, 친구들에게 꼭 여길 보여주고 싶다. 독신주의자이면서 어떻게 하면 가까운 사람들을 여기에 데려올 수 있을지 궁리한 결론이었다.



-



나중에 두 번째 요론을 방문했을 때, 관광안내소에서 들러 유리가하마에 걸어서 갈 예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직원은 불가능하다며 꼭 배를 타라고 권했다. 아마도 주민인 아유바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걸어서 들어가지는 마세요.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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