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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Oct 23. 2018

요론섬 자전거 일주

자전거이기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요론섬빌리지는 방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고 좀 짜긴 하지만 안경의 로케지라는 장점 투성이지만 뚜벅이 여행자들에겐 불편한 위치에 있다. 요론의 번화가와는 꽤 거리가 있고, 다른 관광지와의 거리도 가깝지 않다. 그런 고로 자전거를 빌렸다. 여행지에서 자전거 타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여유롭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바람을 가르는 일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주 떠올리는 장면이다. 12시간에 1300엔이라고 요론섬빌리지 오너가 알려주었다. 로비에서 기다리다 보니 렌터카와 오토바이도 빌려주시는 사장님이 트럭 뒤에 자전거를 싣고 오셨다. 짐을 넣을 수 있도록 바구니가 달린 은색 자전거는 기어는 없지만 제법 근력이 있는 녀석이었다. 힘을 주어 발을 구르면 금방 속도를 내주는 것에 믿음직한 구석이 있군 하고 쓰다듬기라도 하고 싶었다. 


최종 목적지는 사잔크로스 센터라는 박물관 겸 전망대였지만 중간중간 쉬어가며 길을 가기로 했다. 따가운 햇볕을 막기 위해 반팔에 팔토시, 레깅스에 반바지를 겹쳐입고 밀짚모자를 썼다. 턱 아래 동여맨 끈이 헐거웠는지 그다지 속도를 내지 않았는데도 모자가 뒤로 훌렁 벗겨져 버렸다. 끈이 달리지 않은 모자였다면 뒤로 다시 돌아가 주워와야 할 뻔했다. 끈을 콱 조이니 숨이 막히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땡볕에 자전거를 타려면.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타면 좋은 점은 원할 때 멈출 수 있다는 거다. 자동차로 가다 보면 궁금증이 생긴 장소가 있어도 선뜻 세울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특히 요론섬처럼 별것 아닌 것에 멈춰서는 일이 잦은 곳이라면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여행하기에 더 좋다.


그렇게 찾은 곳이 작은 소품 가게였다. 겉으로 보면 간판이 없기 때문에 대체 뭘 하는 가게인가 싶지만 문 앞에 나무로 만들어진 수작업 소품이라는 한자를 겨우 읽고 어떤 가게인지 알 수 있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가니 선선한 에어컨 바람에 천천히 구경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는 아주머니 세분이 뜨개질로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 오랜만의 손님에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해주셨다. 무엇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형체의 인형에서부터 지갑, 스탠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물건들이 많아 구경거리가 넘쳤다. 우리는 귀여워 귀엽다를 중얼거리며 이것저것 살펴보기에 여념이 었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아주머니가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보셨다. 그렇다고 하니 세분 모두 정말 에~~ 하며 크게 놀라워하셨다.


"여긴 한국사람이 많이 오지 않아요."


"그래요?"


"부산에 가본 적이 있는데, 음식이 아주 맛있었어요."


"나도, 나도 부산에 가봤어요. 우리 딸은 서울에 갔었어."


"나는 매일 한국 사극을 봐요. 너무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어요."


한국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우리를 향하던 말들은 이제 서로 누가 더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느냐로 번졌다. 점점 빨라지는 일본어를 삼분의 일쯤 알아들으며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주머니가 직접 만드신 고추모양 솜 인형을 샀다. 연습용이라 팔기 민망하다며 500원씩만 받으셨다. 3개를 샀으니 단돈 1500원에 구입한 거다. 계속 팔기 민망하다고 하셨지만 오히려 비뚤비뚤한 뜨개질 자국이 마음에 들었다. 친구는 계란프라이 모양의 누빔 동전지갑을 샀다. 친구는 아직도 그 안에 충전 케이블을 넣고 다닌다.

돌아가기 전 아주머니는 반가웠다고, 또 놀러 오라며 드래곤후르츠를 하나 쥐어주셨다. 




여행내내 들고다녔던 지도. 너덜너덜하다.




다시 출발할 시간이다. 바다에 핸드폰을 빠뜨렸기 때문에 순전히 감과 지도만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 한참 동안 오르막이 이어졌다. 헉헉 헥헥 윽윽 입에서 별소리가 다 나왔다. 나보다 체력이 좋은 친구와 거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잠깐만. 잠깐만."


헐떡거리며 말했지만 친구는 듣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다.


"기다려!"


발을 멈추고 힘을 쥐어짜서 외쳤다. 친구가 발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햇볕에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공기마저 후끈후끈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친구가 있는 곳까지 끌고 갔다. 겨우 '좀 쉬자'라는 말을 하고 나무 그늘을 찾아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근처에서 소를 키우는지 음머~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외엔 풀벌레 소리뿐이다. 고요한 이차선 시골길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 길이 맞긴 하겠지."


"방향은 맞아."


"여기서 한 달만 살면 엄청 건강해질 거 같아. 맨날 일찍 일어나서 세끼 잘 챙겨 먹고 계속 돌아다니니까 운동되고."


"맞아. 일 년 중에 지금 제일 많이 운동하고 있어."


둘의 얼굴은 땀에 젖어 아무렇게나 달라붙은 머리카락으로 엉망이었다. 그걸 보고 큭큭 웃었다. 기운이 돌아왔다는 증거다. 다시 힘을 내서 발을 굴렀다. 그러나 방향만 믿고 언제까지 갈 수는 없는 법. 결국 또 헤매게 되었다. 갈림길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와중에 중학생 서너 명이 자전거를 타고 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스미마셍'을 외쳤다. "서전크로스센터와 도꼬데스까." 나의 초급 일본어를 알아들은 과묵한 중학생은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이야기를 나누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타고 앞장을 섰다. 우리는 뒤를 따랐다.


5-6분쯤 따라갔을 때 서전크로스센터가 눈앞에 보였다. 올라가는 길목까지 데려다준 친구들은 그대로 돌아가려 했지만 나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 물었다. 친구들은 흔쾌히 포즈를 잡아주었고 물에 잠기지 않은 필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가방에서 서둘러 과자를 꺼내서 감사의 표시로 나눠주었다. 이런 상황이 생길지 몰라 한국에서 챙겨간 과자였다. 친구들은 과자를 흔들며 '사요나라'를 외쳤다. 우리도 팔을 흔들며 '아리가또'를 외쳤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요론섬의 모습




서전크로스센터는 요론의 역사와 유물들을 볼 수 있는 박물관 겸 전망대이다. 이곳에는 안경에서 나온 세발자전거도 있다! 요론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보니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던 거다. 일층에서는 각종 기념품도 파는데 후추 소금을 사 왔다. 오키나와는 별별 소금을 다판다. 직원분께서 후추를 일본어로 설명했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10분 동안 서로 입씨름하다가 아주머니가 사전을 들고 나와 설명해주어서 그제야 알았다. 벽을 따라 요론의 역사가 쓰여있지만 일본어를 모르니 그대로 꼭대기로 올라갔다. 해변에도 우리뿐이었지만 이날 서전크로스센터에서도 우리뿐이었다. 360도 뚫린 창을 빙빙 돌며 바다와 섬의 풍경을 눈에 담기 바빴다. 예쁘다. 예쁘네.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서는 여유로움이 배가되었다. 역시 좋은 풍경은 쾌적한 곳에서 봐야 한다. 땡볕 아래에서는 '예쁘다' 감탄하다가도 '으 더워!'로 감상이 이내 변질된다.


돌아오는 길은 미리 봐 두었던 간식을 파는 장소에 들르기로 했다. 요론에 가기 전 요론에 대한 것은 무조건 다 읽고 영상도 보며 공부를 했는데 텔레비전에 나왔던 맛집이었다. 할머니 자매가 운영하는 이곳은 자색고구마 롤케이크와 과자가 대표상품이다. 가게는 열려있는데 아무도 계시지 않아서 가게 안에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십 분이 지나도 오질 않으시는 거다. 밖에 나와 힐끗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있노라니 옆집에 사는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여기 손님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어라? 왜 없지." 하면서 가게 뒤로 걸어가 크게 할머니 이름을 외쳤다. 뒤쪽에 할머니 댁이 계신 건지 할머니는 죄송하다며 종종걸음으로 가게에 나오셨다. 롤케이크를 하나 사고, TV에서 (정확히는 핸드폰이지만) 보았다는 얘기를 했더니 반가워하셨다. 나는 가게 밖에 붙어있는 요론 섬 포스터가 남는 게 있냐고 물었다. 그 포스터가 어떻게든 갖고 싶어서 들르는 가게마다 물어보고 있던 참이었는데 할머니께서 찾아보신다고 하시며 다시 뒤로 돌아가셨다. 잠시 후 돌아온 할머니께서 포스터를 두장 들고 오셨다 우리는 포스터를 펼치고 우와!!!! 하고 외쳤다. "혼토니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시아와세데스." 하며 기뻐하자 할머니는 요론 로고가 있는 쇼핑백까지 챙겨주셨다. 2020년 구글로 아무리 찾아도 가게 정보가 안 나와서 일본어로 검색해보니 폐업했다고 한다.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만 같던 곳이 사라졌다는 것이 이렇게나 슬픈 일인 줄 몰랐다. 한참 멍하니 사진만 바라보았다.







저녁에는 마침 요론 축제 날이어서 축제 구경을 했다. 각종 악기 연주와 노래가 이어지고 나중엔 다 같이 모래사장에서 춤을 춘다. 우리도 나가서 처음 듣는 박자에 맞춰 춤을 췄다. 돌아오는데 길에 가로등이 없어서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숙소 안에 있던 손전등을 하나 가져온 참이라 바구니에 대충 고정하고 달렸다. 




무대 뒤로 석양이 지고 있다




같이 춤추는 것이 하이라이트였던 것이 분명하다




오르막에 까만 도로는 으스스했지만 도착해서 하늘을 보았을 때는 다 잊을 정도로 별이 많았다. 요론섬빌리지 안에 있는 공터에서 둘은 한참 입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점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숨어있던 옅은 빛의 별마저 눈에 들어올 때쯤 눈에 낀 렌즈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눈을 비볐다. 하늘이 검지 않고 뿌옇게 보였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눈을 비벼도 같았다. 


"저거 혹시 은하수야? 여기서 저기까지 뿌옇게 보여."


손가락을 사선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친구는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어?! 맞아! 은하수야!"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초승달의 나머지 부분이 희미하게 빛나서 평소엔 절대 볼 수 없던 달의 가려진 검은 부분까지 볼 수 있었다. 이제껏 보아왔던 천체 사진들이 거짓말이 아니었던 거다. 별이 이렇게나 밝았구나. 이렇게나 많았네. 이런 하늘을 매일 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매일 본다면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아 질까. 그대로 떼다가 집 천장에 붙이고 싶었다. 요론에 있는 동안 하늘을 본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마 돌아가서도 버릇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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