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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Dec 30. 2018

300엔짜리 회를 샀다

요론에서 만난 사람 - 작은 생선가게 할머니




A-coop 마트에 아침밥을 사러 갔다. 갓 만들어진 투명한 용기 안의 도시락들. 닭고기 조림도 있고 유부초밥도 보이고. 이 도시락들은 다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마 섬안에서 만드는 거겠지? 매일 배 타고 새벽마다 들어올 리 없으니까. 이 작은 섬 어딘가에서 꾹꾹 주먹밥을 눌러 동그랗게 빚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왜인지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도시락을 하나씩 하얀 비닐봉지에 넣고 친구와 요론의 가장 번화한 길을 걷는다.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방금 들어갔던 마트 말고는 어디도 문을 연 곳이 없다. 아침이라 해도 칠월의 요론 햇볕은 찌를 듯이 따갑다. 밀짚모자를 챙겨 오길 잘했다. 설렁설렁 아침밥을 사 가지고 들어가는 길이라니 새삼 와악 하고 소리가 지르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소리는 못 지르더라도 발걸음은 리듬을 탔다. 코너를 돌아 완만한 비탈길을 친구와 경주하듯 빠르게 걸었다. 건너편에서 걸어오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쳐서 "오하요 고자이마스.(좋은 아침입니다.)"하고 인사하자 할머니도 같은 인사로 대답해주셨다. 그저 그렇게 지나쳐갈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갑자기 여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칸꼬?" 

"간꼬꾸데스." 

"칸꼬?" 

"간꼬꾸진데스." 


나중에 알고 보니 칸꼬는 관광이냐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발음이 비슷한 "한국인입니다"만 연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난 내가 묵는 게스트 하우스를 알려드렸지만 할머니는 게스트하우스라는 걸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옆의 하얀 문을 가리켰다. 


"코꼬데스.(여깁니다.)" 


"아아-" 하고 대답한 할머니는 갑자기 나의 팔을 두드리며 방금 올라온 길을 가리켰다. 할머니는 계속 무어라고 말했지만 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종종 사카나, 사시미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게 뭐?라는 생각만 들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했고 나와 친구는 영문을 모른 채 할머니의 뒤를 따랐다. 도착한 곳은 처음 요론에 도착했을 때 정말 귀여운 건물이라고 생각한 자그마한 생선가게였다. 할머니는 그곳의 주인이셨다. 안에는 서너 마리쯤 보이는 생선이 한쪽에 누워있었고 한쪽엔 편의점에 봤던 아이스크림을 넣어두는 냉장고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 냉장고 문을 열고 잘린 회가 담진 일회용 접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고햐꾸엔.(500엔.)"


어? 싸네? 할머니의 영업에 당했다는 생각보다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해서 놀랐다. 500엔이라기엔 둘이 먹어도 될 정도로 양이 많았다. 나는 대답했다. 


"오오이데스.(많아요.)" 


할머니는 조금 더 양이 적은 용기를 들어 올렸다. 


"삼뱌꾸엔.(300엔.)" 


음.. 괜찮은 거 같아. 난 300엔을 지불하고 회를 샀다.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주셨는데 그 안엔 젓가락만 들어있을 뿐 와사비라든지 간장이 없었다. 나는 말했다.


"와사비." 


할머니는 손을 저었다. 아마 없다는 얘기였던 거 같다. 대신 탁자 한쪽에 올려진 간장통을 들고 오셨다. 난 할머니가 뭘 하려는지 몰랐다. 할머니는 내게서 다시 회를 뺐더니 랩을 벗기고 그 위에 간장을 한 바퀴 둘렀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냥 먹을 수도 없었다. 와사비가 없으면 간장이라도 있어야지. 난 아무 말 없이 다시 랩에 쌓인 그 회를 들고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의 영업스킬이 대단한 거 같다.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바로 말을 걸고 가게로 데려온다. 그리곤 먼저 비싼 걸 추천한 다음엔 저렴한 걸 보여주며 혹하게 만든다. 음. 역시 나이에 맞게 내공이 있으시군. 


맛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맛있었다. 두툼하게 썰린 흰 살 생선이었다. 식감이 쫄깃했고 뿌려진 간장 하고도 궁합이 좋았다. 다만 유부초밥이랑 같이 먹다 보니 배가 터질 뻔했다. 회를 사 먹은 다음날 친구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할머니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흔쾌히 찍으라고 말씀하셨다. 사진을 찍고 한국에서 인화한 후 다음번 요론에 가게 되었을 때 할머니께 선물로 전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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