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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Oct 17. 2024

너의 삶을 배우고 가르치다

“그래 부부는 맞춰나가는 거지.”

“여느 부부와 다를 게 없어.”     

성격과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어느 집이나 같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며 맞춰 나간다는 생각은 애초에 어림없는 욕심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의 차이가 있기에 북한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각자의 생각은 존중된다. 특히, 우리 두 사람이 차이를 느낀 것은 표현 방식이었다. 단어의 선택 그리고 대화의 방식이 달랐다. 아니 서툴렀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해가 쌓일 때도 있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표현이 서툴렀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다.      



북한 사람의 화법의 특징은 직설화법을 사용한다. 한국 사람이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말을 빙빙 돌리는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로선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니다.”라고 정확하게 말을 못 하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건 내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태도 때문에 대화 속에서 당찬 표현은 무례하다고 느끼게 되고 배려 섞인 표현에서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장모님과의 대화 속에서 ‘~하라!’, ‘~하라우!’ 같은 북한 말투가 공격적으로 느껴질 때가 가끔 있었다. 특히나 함경도 말투에 총까지 잡으셨다는 장모님이시라 더 전투적으로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당의 통제를 받으며 시키는 대로 남을 비판하고 지적하던 생활총화의 대화 습관이 북한 사람을 거칠고 강한 말투로 변모시킨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 공부도 개인의 학업능력 향상보다는 김부자와 당을 위해 설계되어 교육받았고, 서로 감시와 통제 속에 제한적인 환경과 교육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 아닐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솔직하고 신속 정확한 표현을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단어 선택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르친다’가 크게 다르게 와닿았다. “나 좀 가르쳐 줄래?”, “가르쳐 줄게.”라는 말을 북한 사람들은 “배워줄게.”, “네가 배워주면 되지.”라고 표현을 한다. 한국과는 어법이 다르다. 몇 번이나 상대방에게 “가르쳐 줄게.”라고 해야 한다고 알려줬지만, 어느새 “배워줄게.”라고 말하고 있었다. 높임말을 할 때는 모든 말에 ‘~니까?’를 붙이는 특징이 있었다. 말끝에 ‘~니까?’만 붙으면 북한식 높임말이 된다. 군대에서 대화의 모든 끝말을 ‘다, 나, 까’로 하라고 했던 것과 비슷함을 느꼈다.     

‘내가 맞출 것인가? 맞추기를 바랄 것인가’라는 문제는 아니었다. 나와 아내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태어날 때부터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35년이 넘도록 서로를 모른 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다른 경험을 하며 각자의 인생을 위해 달려왔다.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경험을 하며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픈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삶을 알고도 잊을 때가 가끔 있었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인간관계, 사고방식, 대화방식, 생활양식, 사소한 습관들은 뼛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피부에 닿는 체감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면, 내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대방의 모습도 틀린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도 서로를 인정하며 아름답게 삶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당신이 한 말처럼 나는 당신이 걸어온 삶을 ‘배우고’ 싶다.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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