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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Jun 13. 2024

편성준 <읽는 기쁨>

내 에피소드가 찬란한 막을 연다

읽는 분에게 먼저 한 말씀 올립니다. 제 글에 소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글이오니 읽다가 식상하시면 멈추셔도 좋습니다. 구독자 중에는 훌륭하신 작가님이 많습니다. 그분들께는 정말 시간 뺏기 싫습니다. 그냥 미소 한 번 지으시고 가볍게 스크롤을 내려 주시면 저의 맘도 편합니다. 그것도 귀찮으시면 ‘F5’ 한 번 누르시면 제 글은 사라집니다. 방긋 ^^ 


나의 스토리 시작합니다.



<읽는 기쁨에서 쓰는 기쁨으로>


1. 문장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네, 아주 이상합니다.”

“그럼, 고쳐야죠.”

“흠, {~적, ~의, ~것, ~들} 왜 쓰신 거죠?”

“아, 몰라요. 내가 왜 적었는지 몰라요. 일부러 있어 보이려고 쓴 게 아니에요.”

이런 꿈을 꿨다. 얼마 전 읽은 김정선 작가의 책 때문일까?

새벽에 잠이 깬 난 책상 앞에 앉았다.

내일 일어나면 출근할 회사원이다. 정신 차리자. 비문 섞인 나의 문장들을 보며 유난을 떨 정도의 급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매일 설렌다. 지난주 금요일은 글을 끄적이다 또 밤을 새워버렸다. 하지만 출근은 정상적으로 했다. 수년 동안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딩하며 밤을 새운 적이 많지만, 이런 상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일이 아니라서 그런가? 기계어와 인간의 언어의 차이인가? 하여튼 재밌는 요즘이다.

이제 글쓰기만큼은 진심이 되어버렸다. 참 행복한 취미를 가졌다. 


이토록 잠을 설쳤던 이유는 매일 끄적끄적했던 나의 글들이 조금씩 완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A4 100장의 분량이 되었고 미흡하지만, 초고가 완성되었다. 나의 이야기가 쌓여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공개적인 글쓰기는 브런치에서 이미 시작했다. 브런치는 응모 두 번 만에 합격이 되어, 대중이 읽을 만한 글을 써도 된다는 자신감을 내게 주었다.

“이제 사람들 눈치 안 보며 글 적어도 돼?” 했던 기억이다. 비록 재미없는 글이지만 당당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처음 ‘발행’을 누르기 전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그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도 안 보면 어쩌지?”

“'좋아요'를 하나도 못 받으면 어쩌지?” 하지만, 이 모두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적어 내려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글들은 비문들도 많았고 문장력도 부족했다.

“문장을 쓸 줄 몰랐지, 내가 한글을 쓸 줄 몰랐냐?” 이런 느낌이 들었다.

문장의 맛도 모르면서 자아도취에 글을 적어 내려갔던 것이다. 


퇴고 중




2. 결국 책과 서점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게 되었고 심지어 글쓰기 강의까지 찾게 되었다. 이렇게 흠뻑 배움에 빠져 보기는 배드민턴 레슨 이후 처음이었다.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글 쓰는 삶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잘 쓰는 글보다 재밌는 글을 쓰고 싶었다. 유튜브 강의와 인터넷 유료 강의도 들었지만, 나의 목마름을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틈나면 진주문고를 찾았다. 글쓰기 관련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 쓰기 관련 책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들이 내 책꽂이로 찾아왔다. (참고로 내 페이스북 배경사진은 진주문고의 글쓰기 코너의 책장사진이다.) 책을 만나다 보니 서서히 작가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주문고에서 북토크가 열리면 작가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한 분, 두 분. 이렇게 또 작가님들이 마음속으로 찾아왔다. 책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들이 서점을 찾게 만들고 독서를 하게 되고 작가님을 만나게 되고 글을 쓰는 좋은 취미가 된 것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글쓰기뿐 아니라 인생을 사는 데도 도움을 준다. 좋은 글을 쓰려면 솔직하고 성의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읽는 기쁨, p.230>




3. 작가와의 만남.

부부 이야기 글을 쓰려던 나는 진주문고에서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책이었다. 작가님을 알게 된 후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 10월 5일 저녁 7시에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다. 진주문고에 북토크가 열리게 된 것이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이 책을 들고 나타난 작가님은 바로 편성준 작가님이다. 글쓰기에 큰 동기를 유발해 주신 작가님이고 나에게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라며 책을 쓰겠다는 큰 야심을 가져도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작가님과 인연이 되어 ‘편성준의 에세이 쓰기’,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과 함께 하게 되었다. 읽는 기쁨에서 쓰는 기쁨으로 안내를 해 주셨다. 글쓰기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글동무와 함께하면서 새벽 글을 꾸준히 써 내려갔다. 이렇게까지 하는 내 열정에 스스로 놀랐다. 미친 것이다. 말 대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할 말이 또 있다.

“필독이라고 정한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은 보기 싫었어.”

(사실 공부 머리가 없었던 것. 뒤늦게 극복하고 돌 깨는 석사(공학)까지 됨.)


SF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아이들에게 특정 서적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심어주고 싶다면 그 책을 필독서에 배정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읽는 기쁨, p.174>   


또 이상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네. 다시 바로잡고 이어간다.

함께해 준 소중한 글동무님들께 너무 감사하다. 때문에 그럴싸한 초고가 완성되었다.

다듬고, 다듬고, 다듬어 책으로 나온다면 아내의 두 손에 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에피소드가 찬란하게 막을 연다. 




4. 퇴고의 굴레.

하얀 A4 속 빨간펜의 흔적들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아니 섹시하게 보인다. 퇴고하다 보니 형편없는 내 문장들이 민낯을 보여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쓸모 있는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손댈 수 없을 정도라면 휴지통에 들어가는 게 맞지만, 퇴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퇴고는 끝이 없다. 매일 내가 쓰고 있는 인생사. 내일이면 고쳐 쓰고 또 내일이면 고쳐 쓴다. 나를 읽는 타깃 독자는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는가에 따라 나의 용도도 점점 바뀐다는 것을 느낀다.  저는 열심히 퇴고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님들 긴장하세요. 이 폭탄 곧 투고하겠습니다. 지금은 연락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5. 첫 문장이 ‘읽는’으로 시작하여 끝은 ‘기쁨’입니다. 

이 글은 분명 서평이 아닙니다. 책은 읽었지만 이미 훌륭하고 맛깔난 리뷰들이 여기저기서 헤엄치고 있기에 읽는 기쁨만 누렸습니다. 분명 책 속의 51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쓰는 기쁨까지 누리고 있습니다. 글을 다 쓰고 나니 무척 기쁨.


읽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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