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잠시섬
2024년에 진행한 잠시섬 연대기를 공유합니다. 이야기는 2013년 협동조합 청풍의 시작에서 출발해, 2024년까지 이어집니다. 이 기록은 2015년부터 꾸준히 잠시섬을 찾아온 강화유니버스의 친구, 새보미야와 함께 써 내려갔습니다.
2024년 초, 협동조합 청풍은 일본 가미야마 탐방을 통해 협동조합 청풍의 현재를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멸 위기 산촌이었던 가미야마는, 오늘날 IT 기업이 이주하고 청년 세대가 귀촌하는 재생 성공 지역으로 각광 받고 있는 곳이죠.
포틀랜드 탐방의 경우 우리가 초기 단계에 있었으니까 비교할 것이 없는 상태였지만, 이번엔 우리에게도 누적된 경험이 있잖아요. 가미야마와 비교했을 때 우리에게 어떤 강점이 있는지 또 어떤 점을 배워야 할지가 확연하게 보였죠. 커뮤니티에서 시간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 유마담
가미야마가 어떤 단계로 성장해 왔는지 도식화시킨 설명을 들었어요. 재밌었던 건 모두 ‘사람’으로 시작된다는 거였죠. A가 B의 초대로 가미야마에 왔다, A는 실리콘밸리에서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데 지역에 이러저러한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러저러한 일을 했고, 그것을 계기로 다음 단계에서는 C라는 사람이 왔다, 이런 식으로요. 보통 프로젝트를 할 때면 사업의 틀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거기에 이식하는 방식을 쓰곤 하잖아요. 그런데 가미야마는 어떤 사람이 지역에 있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문화나 프로젝트의 필요성이 생겼고, 그런 것들을 인식하면서 단계를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파도
저희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인데, 사람들이 ‘그래서 다음 단계는 뭐예요?’라고 묻곤 해요. 가미야마에서도 그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뭐랄까, 순서가 잘못된 질문인 것 같아요. 작물이 자란 건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 정도 컸네’ 하고 느껴지는 부분이잖아요. ‘이번에는 몇 센티미터를 자라게 해야겠다’ 이런 건 목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열매가 언제, 얼마나 열릴지도 모르는 거고요. - 유마담
가미야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망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단계를 이끌고 갔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사실은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시도되고, 그중 하나가 튀어 올라가는 거죠. 그런 면에서 위로를 많이 받기도 했어요. 다양한 시도들 끝에서 가능성을 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거니까요. 가미야마가 30년 동안 하다 보니 정리가 된 것처럼,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 파도
1991년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30여 년에 걸쳐 천천히 쌓여온 가미야마의 이야기는, 막 10주년을 지나 다음 단계로 넘어서는 협동조합 청풍에게 위로와 영감이 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로 이행할 대표적인 프로젝트, 잠시섬에 대해 고민하며 서비스업이나 여행업이 아닌 ‘환대업’이라는 정의도 확고히 내리게 되었죠.
예전에는 저렴하니까, 가성비가 있으니까, 관광을 하러 오는 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점점 로컬을 탐색하고 싶고, 저희를 알고 싶고,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인사이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고, 커뮤니티 형태가 되었잖아요.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히 서비스업, 숙박업, 여행업이 아니라는 고민을 했고, 그렇다면 우리 업의 정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우리가 어떤 형태로 나아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죠. - 유마담
이곳이 너무 좋고, 이곳의 사람들이 나한테 큰 힘을 주고, 그래서 나도 이곳을 잘 만들어가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던 것 같아요. 잠시 와서 소비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같이 무언가 생산해 나가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 파도
서비스업과 환대업의 가장 큰 차이는 ‘나도 나누고 싶다’, ‘나도 기여하고 싶다’는 감각의 여부 같아요. 서비스업은 돈을 냈으니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고, 환대업은 그 이상의 무형적인 변화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협동조합 청풍이나 강화유니버스, 잠시섬하고 더 맞닿아 있는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어요. - 결
오늘도 잠시섬은 지난 기수의 피드백을 반영하며 꾸준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라면, 게스트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매우 높아졌다는 부분일 텐데요.
크루는 잠시섬을 경험해본 게스트가 호스트로서 잠시섬에 참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크루는 청소와 회고에 참여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하죠. 게스트하우스 숙박과 시급, 근무일별 1식을 제공받고요.
크루는 다른 사람들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일상과 호기심에 관한 감도가 참가자일 때와 달라진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크루 쪽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강화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토백 님이어서 좋았다’, ‘토백 님과 같이 해서 더 즐거웠다’고 얘기할 때면 시골집 할머니가 된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져요.
잠시섬을 마치고 떠나는 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하고, 재방문을 해 다시 또 만나기도 하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도 느끼고요.” - 토백, 잠시섬 10~13기 크루
토백이 오고 나서 뭔가 달라졌어요. 빛이 안 들던 마당에 빛이 드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웃음) 안정적인 크루가 주는 에너지가 있어요. - 윤슬, 잠시섬을 통해 강화로 이주한 청년 예술인
오롯이 게스트하우스 운영 실무에만 집중하는 인력이 확보되면서, 잠시섬의 운영에는 더욱 안정성이 생겼죠. 잠시섬 여행자들에게는 크루 제도가 최소 한 달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강화에서의 체류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창구로 기능하기 시작했고요.
영감모임은 자신의 일상, 취미, 관심사 등을 다른 참가자와 공유하고 다양한 관점과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자유로운 프로그램이에요. 전년도에 시도되었던 ‘잠시섬 프렌즈’의 캐주얼한 버전이라 할 수 있죠. 영감모임 운영을 원하는 참가자들은 잠시섬을 신청할 때 희망하는 날짜와 내용을 입력하고, 호스트의 조율과 도움을 통해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해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밤 이루어지는 회고 시간에 이튿날 진행되는 영감모임의 정보가 공유되어 참가자를 모집하고요. 잠시섬은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게스트는 기획의 경험과 참여의 경험을 두루 해 볼 수 있죠.
3. 한편 게스트들이 협동조합 청풍의 협업 파트너가 되는 다양한 시도도 있었습니다.
잠시섬 12기부터는 예술인들이 잠시섬을 경험하고 창작하는 크리에이터 in 강화유니버스라든지, 여행자들이 잠시섬의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액션콘텐츠 in 잠시섬’ 등이 진행되었어요.
워케이션을 하러 잠시섬에 왔는데, 로컬에 애정을 갖고 그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어요. 제가 올해 하고 싶었던 게 잠시섬에 고스란히 묻어 있는 기분이었죠. 협동조합 청풍에서 협업 제안을 받고, 좀 더 다양한 메신저와 함께 잠시섬을 많은 사람에게 퍼뜨리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어요.
잠시섬을 애정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밀도 있게 담아낸다면 더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 유나, 프리랜서 마케터, 액션콘텐츠 in 잠시섬 운영
‘뜻밖의상담소’와 함께한 번아웃 워크북과 워크숍, ‘마보’와 함께한 명상 앱 콘텐츠, ‘수무’와 함께한 잠시섬빌리지 조경 프로젝트, ‘벗밭’과 함께한 로컬 레시피 개발과 워크숍 등이 진행되었죠. 진달래섬 아트마켓, 시골언니 프로젝트 등 지역 이웃과의 협업 역시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요.
그리고 이러한 잠시섬의 정수(精髓)를 느낄 수 있는 자리도 있었습니다.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컨퍼런스, ‘잠시섬 어드벤처’였죠. 잠시섬에 참여했던 친구들 10명이 기획단을 꾸려 여러 차례 워크숍을 거치며 직접 행사 전반을 기획하고 운영했어요.
잠시섬 어드벤처는 기존 참시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2박 3일간 일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쉼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행사였어요. 처음 시작은 여행자들이 ‘수동적인 참가를 넘어 무언가 기여할 수 있는 감각을 느끼게 하자’였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려고 노력했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쉼, 힐링, 환대, 느슨한 연대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참가하신 분들이 2박 3일을 경험하고 일상에 돌아갔을 때 다시 나아갈, 웃으면서 뚜벅뚜벅 걸어갈 힘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사실 저는 개인 작업을 해 와서, 누군가 참여하도록 판을 짜는 기획에 함께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사람들이 즐기는 순간을 마주하는 게 쾌감이 있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후기를 보며 벅차오르기도 했고요. 사람들이 감동한 자리를 만드는 데 저도 기여했다는 게 좋았습니다.
- 정담아, 잠시섬 어드벤처 기획단
2박 3일 동안 5개의 메인 세션과 24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협동조합 청풍이 운영하는 강화유니버스 라운지와 잠시섬빌리지, 진달래섬 뿐만 아니라 고려궁지·용흥궁공원 같은 지역 명소에서부터 청년 공간 유유기지 강화, 카페 섬섬초월, 연미정 와이너리까지, 강화 곳곳이 잠시섬을 찾은 여행자들을 다시 한번 환대했죠.
잠시섬 어드벤처에서 엄청나게 환대 받은 느낌이에요. 사실 방문하는 사람이 분위기에 어울리기가 쉽지 않잖아요. 크루들이 모두를 잘 챙겨주어서 금세 몰입할 수 있었어요. 웰컴 시스템이 굉장히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2015년 즈음 강화에 거주하며 활동을 했었거든요. 잠시섬에 몇 번 참여한 적도 있고요. 예전에는 ‘휘뚜루마뚜루’ 하는 느낌이 있었다면 (웃음) 지금은 쾌적하고 정돈된 느낌이라 감회가 새롭기도 해요.” - 오아, 잠시섬 어드벤처 여행자
컨퍼런스에 참여하며 잠시섬을 찾은 여행자들은 총 200명. 협동조합 청풍의 다음 단계를 마주하게 된 오랜 친구부터, 애정하는 누군가의 초대로 처음 잠시섬을 경험해 보는 여행자까지, 다양한 감도의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잠시섬 어드벤처를 완성했죠. 그리고 컨퍼런스의 마지막 세션은, 지역의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강화유니버스와 다음 세대’였어요.
협동조합 청풍이 만들어 온 인연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잠시섬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환대를 느껴본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고요. 잠시섬 어드벤처는 강화에서 학교를 다니며 살아가면서도 몰랐던 삶의 형태에 대해 접했던 시간이기도 했고, 기숙사에 살며 주민처럼 강화를 알지만 관광객처럼 강화를 대했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학생으로서 강화에서 살아가는 삶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민하는 것마저 고민이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고 할까요. 물론 성인이 되어도 강화를 계속 오가긴 하겠지만, 확실하지 않은 걸 고민하는 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망설여지고 마주하기에는 두려운 것 같기도 해요.
- 저녁, 산마을고등학교 학생, ‘강화유니버스와 다음세대’ 프로젝트 발표
오늘의 오늘, 잠시섬은 지역 이웃과 여행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또 다음 세대의 자리를 준비하는,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ditor 새보미야 (2015년부터 꾸준히 잠시섬을 찾는, 강화유니버스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