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남현
강화에는 머무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어떤 이는 오래 해 오던 일을 이어갑니다.
강화유니버스와 함께한 이웃을 소개하는 인터뷰 프로젝트, <잠시 더 강화>.
강화에 잠시 더 머물며 갖게 된 100개의 업,
그들이 만들어가는 강화의 100가지 모습을 담습니다.
여덟 번째로 초대한 이웃은 ‘팜 라이프 매니저’ 남현입니다.
강화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농사를 짓는 청년은 없냐며
골똘히 고민하는 청년이 내게 묻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금방 남현을 떠올렸지만
그 청년에게 전할 정확한 말들이 내게는 없었다.
며칠 뒤, 순무 수확이 한창인 가을 아침에
양도면의 어느 밭으로 향했다.
하루라는 정교한 톱니바퀴 안에서
정직하게 보람을 얻어 가고 있는
팜 라이프 매니저 남현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남현은 남현의 업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저는 팜 라이프 매니저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농업이라는 것도 그 자체로 업이지만, 저는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과정을 넘어서 농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치열하게 관리하는 ‘운영자’의 주체를 더 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의 시선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저만의 농사를 짓고 있어요. 자유로이 일하는 노동자이면서, 매번 바뀌는 환경이나 미처 알지 못했던 병해충들과 싸우며 상황 대처 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내년이 3년 차인데 안 했다면 몰랐을 이 농업 생태계를 알아가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팜 라이프 매니저가 되었나요?
특별한 계기 없이 즉흥적으로 시작한 감이 있어요. 부모님께서 농업을 하고 계셨기도 했고, 맨땅에 시작하는 것보다 기반 위에서 시작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반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장점에 대해 생각하다가 현실적인 배경을 고려해 강화도를 선택했어요.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경험하며 부딪힌 게 많아 한국에 돌아와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제 에너지를 온전히 쏟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농업이 제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현장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어찌 보면 조금 빠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어요. 주기적으로 여행을 가야 하는 사람인데 팜 라이프 매니저가 된 후부터는 제약이 생겼죠. 그래서 지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다른 걸로 채워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나의 손길이 닿은 무언가가 잘 됐을 때 그만 한 희열을 느끼게 되죠. 대신 농작물과의 교류 말고 사람과 사람 간의 왕래가 많이 없다는 건 아쉬워요.
남현이 농사를 지으면서 느끼게 된 것들이나 알아차린 부분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농사는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그리고 작물 하나하나 키우는 게 정말 아이를 키우듯 키워야 된다고 할까요? 그리고 정말 부지런해야 했어요. 부지런한 만큼 얻어 가고 나태한 만큼 얻어 가는 농사는 피드백이 바로바로 와요. 그날 해야 하는 무언가를 하지 않고 내일의 나에게 맡기면 더 큰 재앙이 다가옵니다. 나중엔 걷잡을 수 없어요(웃음).
저의 일 자체가 정교한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느 하나 제 손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고, 겉으로는 단순한 일의 반복일 수는 있지만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하루 모두 과정이었더라고요. 저는 정밀하게 맞물려서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한 중심이고 그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모여 내일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일을 하면서 세대 간의 역동성을 느꼈는데요. 부모님께서 벽돌처럼 쌓아 올리신 경험치와 제가 즉흥적으로 내는 에너지가 만나 시너지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상품 가치가 없는 작물들을 골라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저는 불량품 나름대로의 쓸모가 있다고 말해보는 거예요. 사실 먹는 데에 지장이 없잖아요. 가공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제품이 되기도 하고요.
남현이 바라보고 있는 요즘의 농업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해요
과거엔 생계를 유지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농부가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농업 경영인의 모습을 많이 띄고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창업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템 하나를 가지고 무궁무진하게 사업 아이템을 만들어낼 수 있죠. 누군가는 단순히 농사를 짓지만 누군가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누군가는 농작물을 가공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또, 자원순환의 명목으로 부산물이 나오면 그 부산물을 동물에게 먹인다든지 곤충을 업으로 하는 농업인들은 곤충 사료를 만들기도 해요.
어떤 나라는 육식성 사료를 제한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곤충 사료로 대체해야 하는데, 우리 인간도 언젠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환경은 제어할 수가 없어요. 스마트팜도 온도, 습도 등을 제어할 수 있지만 결국 해를 제어할 수 없거든요.
농업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이 많아져요. 예를 들어 탄소배출권이나 기후 위기 등과 같은 것들에요. 약 50년 뒤에는 우리나라에 사과가 사라져요. 재배 지역이 거의 한정돼 있어서 강원도 끝자락에서만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과수 농업의 판도도 바뀔 거예요. 그래서 단순히 내 농사만 짓는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전체적인 것을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시야를 넓혀야 해요.
남현이 팜 라이프 매니저로 일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한편에 온전한 나의 영역이 하나 있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곳은 누구 손 닿지 않는 저의 영역이니까요. 살면서 내가 내 것을 가져본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는데요. 온전한 나의 것이요. 그런데 팜 라이프 매니저로 일하면서는 그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어차피 거의 대부분 은행 거지만(웃음) 그래도. 앞으로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저의 생각과 다양한 것들이 담기는 것이니까요.
순무를 뽑자마자 피어오르는 냄새를
진득하게 맡아보기도 하고
난생처음 트랙터를 몰아보기도 하면서
생각보다 생각만 했던 일들을
하루 만에 이렇게나 이뤄낼 수 있구나! 싶었다.
남현이 기꺼이 건넨 제안과 초대는
단조롭게만 느껴왔던 나의 톱니바퀴를
조금 더 우렁차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지금과 지금의 바깥을 열심히 살피면서
계속, 계속!
인터뷰가 끝나고 외투 주머니에 있던
빨간 목장갑을 발견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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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무히
Interviewee 팜 라이프 매니저 남현
Photographer 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