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브루탈리스트(2025)를 보고

by 박강제

브루탈리스트(2025) 홀릭이다. 지난주 퇴근길에 아내와 만나 아무 내용도 모른 채 본 네 시간짜리 영화에 빠져있다. 좋은 것을 보면 "이거 브루탈리즘"이네라는 말을 붙이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브루탈리스트 곳곳에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한국어 문장에 쓸데없는 관형어를 더하는 것은 글을 어지럽히는 하책이지만 "압도적인 아름다움"이라는 말 대신에 다른 말을 찾기가 어렵다. 핸드헬드로 분주하게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 분)를 따라다니던 카메라가 마침내 자유의 여신상을 거꾸로 비췄을 때부터였을까? 서재의 책장 문이 열리고 토스가 의자의 위치를 햇살이 비추는 창 아래로 옮겼을 때, 물을 뿌린 대리석에서 푸른빛이 발했을 때, 그리고 결국 결말에 이르러 마침내 어둠 속에 그 실체를 드러내는 건물의 모습까지, 맥락에서 자유롭게 아름다운 그 장면들이 나를 짓눌러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옆에는 항상 슬픔과 폭력이 있다. 그가 지은 예배당의 천장에서 내려온 빛은 십자가를 이루지만 그 주변은 그림자가 도사린다. 정육면체가 없는 세상에 깡마른 예술가는 정육면체를 만들어 선보이지만, 맥락 없이 예술을 바라볼 수 없는 권력자에 의해 꼬리표가 붙고 결국 단편적인 이해에 의해 예술가는 쫓겨난다. 유럽에서는 유대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건축할 수 있는 권리와 시민으로서 자유를 잃었고, 미국에서는 이민자의 꼬리표가 붙어 극한의 폭력 속에 자신을 잃는다. 결국 그는 헝가리를 떠나야 했듯이 미국을 떠나게 된다.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에필로그 속 박람회에서 해석되는 로스와 그의 작품이었다. 그의 조카는 80년대 깨발랄한 비디오 편집 효과와 함께 그의 작품에 새로운 태그를 붙인다. 이제 그의 작품은 유대인 학살에 저항한 시오니스트적 작품으로 거듭나고 늙은 예술가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의 건축물만 남게 될 것이다. 말에서 비롯된 사상은 사람과 함께 죽을지언정 콘크리트와 철근, 유리로 쌓아 올린 건축물은 끝내 남을 것이다. 강의 범람을 이겨내고 바람에 마모될지언정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말의 기반보다 단단한 지반에 자리 잡은 그 건물이 인류보다 오래 살아남는 상상을 해본다. 모든 맥락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그 건물이 서광에 푸르게 빛나다 석양빛에 붉게 저물 것이다.



브루탈리스트는 브루탈리즘 건축 사조에서 비롯된 말. 감명받은 김에 국내 유명한 브루탈리즘 건물을 방문하기로 했다. 안도 다다오는 브루탈리즘 사조의 대표적 건축가인데 chatGPT에 물어보니 국내에 그의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곳은 유민미술관뮤지엄 산 두 곳이다. 유민미술관은 제주도에 있거니와 몇 년 전 먼발치에서나 본 적이 있어 원주의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특정 장소를 방문하면 그 장소를 채운 콘텐츠를 주목하기 마련인데 그 건물 자체에 눈길이 가니 새삼 안 보이던 것들이 많이 보였다. 벽과 벽이 어떻게 만나는지, 창은 무엇을 바라보는지, 이곳에는 왜 이것이 있어야 하는지. 아메리카노를 구천 원에 파는 해리슨 리 밴 뷰런(가이 피어스 분) 급의 상술을 제외하면 흡족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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