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 그대의 직업이 데려다줄 수 있는 곳까지

아노라(2024)를 보고

by 박강제

관객으로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해 감사한 점은 지나간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 아노라가 개봉했을 때 이런저런 스케줄로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탓에 연도가 바뀐 뒤에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렸다. OTT가 영화계를 지배해도 적어도 나에게 극장은 대체되지 않는다. 아무리 큰 tv가 있고 고화질의 vod에 언제든 접근할 수 있어도 리모컨에 일시정지 버튼이 있는 한 극장은 존재할 이유가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다 죽어 사라지기 전에는 말이다.



아노라는 노동자의 얼굴을 비추는 영화다. 인상적인 오프닝 쇼트는 영화 전반을 함축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 고객의 무릎에 앉아 춤추는 벌거벗은 몸들을 수평으로 더듬던 카메라는 아노라 앞에 멈추고 서서히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 업하는데 한 테이크 안에서 동태의 변화가 만드는 인상의 변화가 흥미롭다. 수평으로 움직이는 카메라가 담는 이미지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이미지다. 수평선 위에 선 몸은 몰개성 하고 계약에 따라 지정된 방식으로 움직이는 개인을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윽고 카메라가 멈춰 서서히 아노라에게 다가갈 때 그제야 보이지 않던 얼굴이 보이고 그제야 그가 사람임을 인지하게 된다.


의미심장한 카메라의 무빙을 통해 만난 아노라는 성실한 노동자다. 그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스트리퍼라는 직업이 데려다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려고 한다. 업무 시간 안팎으로 고객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고 우연히 만난 러시아 재벌의 아들과 결혼을 통해 그의 직업군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과를 달성한다. 남편의 부모가 보낸 하수인에 의해 결혼이 무효화되고 남편이 도망까지 치는 실직의 상황에서도 아노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을 함께 찾자는 하수인의 제안을 수락한다. 하수인과 오월동주 끝에 만난 남편을 설득하고 어렵사리 만난 시어머니에게 공손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하지만 직업을 지키기 위한 아노라의 '일'은 남편 부모의 냉대 앞에서 끝나고 만다. 그들에게 아노라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서비스는 없고 결국 아노라는 직에서 해제된다.


시작과 끝만을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는 신데렐라의 탄생과 몰락이라는 흔한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백미는 따로 있었으니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아노라와 하수인 셋이 만드는 로드 트립이다. 이 영화가 노동자에 대한 영화라는 단서는 영화 초반부터 제시된다. 저택을 떠나는 아노라가 떠난 이후에도 광란의 저택으로 지저분해진 집을 정리하는 청소부를 꽤 오랜 시간 비추는 장면이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맥락을 벗어나는 몇 초간의 장면은 노동으로만 가득 차 있다. 첫 만남에서 아노라와 하수인은 대립하는 존재로 보이지만 로드 트립이 진행될수록 동질성이 부각된다. 4인방의 행동을 형성하는 것은 결국 직업이며 종국에는 그들의 고용인에 맞서 연대 의식을 형성한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아노라와 이고르의 관계다. 한쪽은 날뛰고 다른 한쪽은 제압해야 하는 악연으로 만나 아노라는 이고르를 시시때때로 괄시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둘은 닮은 존재라는 것이 강조된다. 예를 들어 그들의 직업은 멸칭이 있다. 창녀 또는 깡패로 불리는 그들은 소명 의식을 가진 자로서 그렇게 불리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지역색이 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그 이름을 감추고 어떤 이는 그 이름을 좋아하지만 그 이름이 바뀌지는 않는다. 또한 그들은 할머니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아노라는 할머니에게 배운 러시아어로 직업적 도약을 꿈꿨고 이고르는 할머니에게 받은 약과 차로 동료에게 베푼다.


그러니 이 영화의 마지막이 이고르의 차 안에 탄 두 명의 모습을 비추는 것은 응당하다. 영화 초반부 화려한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은 사라지고, 눈 덮이는 차창 아래 와이퍼 소리만 들리는 공간에서 두 사람은 개인 대 개인으로 마주한다. 이고르가 아노라에게 돌려준 다이아몬드 반지는 아노라가 그토록 노력하고 실패했던 그 시간 역시 돌려준다. 무엇을 받으면 무엇을 제공하면서 살았던 아노라는 무의식적으로 일을 하려고 하지만 끝내 멈출 수밖에 없다. 직업이라는 기반 없이 만난 관계가 참 낯설고 결국 울고 만다. 처연하고 아름다운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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