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언젠가 꼭 간다던 그곳
아들,
아이를 키우다보면 시기의 문제일뿐, 한번은 꼭 방문한다는 곳이 ‘응급실’이라고 해. 대부분의 초보 부모들은 이유 모를 고열과 같은 이유로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이곳을 찾곤 해.
그날, 우리 가족에게도 그 “언젠가”가 찾아왔단다. 추석 연휴기간 중, 평소처럼 낮잠을 잘 자고 일어난 너의 목소리와 숨소리가 살짝 달랐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살짝 열이 나는것 같았어.
점점 열이 올라가고 숨쉬기를 어려워하는것 같아서 연휴기간이지만 진료 중인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했어. 의사 선생님은 너가 급성 후두염에 걸렸다고, 자다가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질 수 있다며 병원에 잘 왔다고 했어.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체없이 근처 응급실로 가라고 했지.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근처 응급실 위치와 이동 동선을 모두 체크했단다)
그렇게 진료를 하고 별일 없이 넘어가는 듯 했지. 엄마와 아빠는 네가 밤 잠을 잘때 좀 더 신경쓰기로 하고 평소와 같이 잠에 들었지. 그런데 새벽에 너가 숨쉬는게 더 힘든거 같았어. 지체없이 미리 찾아둔 응급실로 이동했어.
본능처럼 병원으로 달려가는 그 길, 아빠는 그 몇 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줄 몰랐단다.
사실 아빠는 살면서 응급실에 와본게 처음이었어. 조용한 병원과 달리 아빠 마음속은 아주 시끄러웠지.
“괜찮겠지? 별일 아닐거야, 금방 나아서 얼른 집에 가야지”
응급실의 불빛은 너무 밝고, 의자에 앉은 보호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어. 모두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지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 그 한마디를.
2시에 기다리던 진료를 하고, 관련 처치를 받는 약 1시간 동안 아빠는 육아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인정했단다. 항상 계획과 예비 계획으로 무장한 아빠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어. 무력감도 느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응급실 경험은 아빠에게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남겼어. 삶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건 비극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라는 걸 말이야.
육아를 하면서도 비슷한 걸 매일 느낀단다. 생각해보면 아침 7시에 기상, 8시에 분유, 9시 낮잠, 12시에 이유식… 그렇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도 그대로 되는 날이 거의 없었어. 잠드는 시간이 밀리고, 밥을 거부하고, 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릴 때면 하루의 리듬이 전부 엉켜버리지.
처음엔 그런 어긋남이 불안했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생각하게 됐단다.
“오늘은 이게 우리 리듬이구나.”
그렇게 받아들이자 마음이 훨씬 잔잔해졌어. 계획이 틀어져도, 그 속에서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잘 보낸 하루라는 걸 알게 됐거든.
아들,
인생이란 원래 정해진 시간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중요한 건 그 어긋남을 불행으로 보지 않는 마음이야. 예상치 못한 밤도, 예정에 없던 낮잠도, 모두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리듬이니까. 그리고 그런 순간 모두가 돌아보면 아주 소중한 순간들이니까.
그날의 응급실처럼, 삶은 언제든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잔잔히 유지하렴.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속도를 찾아 적응하는 것이 더 중요해.
오늘도 네가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잠들었지만, 괜찮아. 계획이 어긋난 그 순간에도 네가 활짝 웃고, 우리가 함께 눈을 맞출 수 있다면, 아빠는 그 순간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니까 말야.
사랑하는 아빠가,
2025년 10월 마지막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