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명의 엄마가 만든 작은 마을
아들,
이번 달 마지막날인 오늘 엄마와 아빠는 조금 특별한 자리에 다녀왔어.
너와 같은 25년 1월생 아이 엄마들이 모여 만들어진 강남 엄마 모임(엄마는 이 모임이 '강엄모'라고 불린다고 해)의 송년회였단다.
너와 같은 월령의 아이를 둔 열한 명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까지 다 같이 모여 친목을 나누는 자리였어.
현대 한국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마을 공동체’라는 단어가 사라졌어.
옆집에서 서로 아이를 봐주거나, 집 대문을 열어두고 아이들을 함께 돌보던 풍경, 누군가 아프면 이웃집에서 먹으라고 음식을 갖다 주는 등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와닿을 그런 모습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
기술의 발전 덕분에 현대 사회의 우리는 더 빠르고, 더 쉽게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같은 아파트나 같은 동네 사람들이랑은 쉽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연결되지 않는 거 같아.
그래서 아빠는 네가 태어나고 시작한 이 육아라는 일이 부부 둘만의 일인 줄로만 생각했단다. 육아 경험이 전무한 단 둘이서만 하다 보니 종종 외롭고, 힘들고, 또 답을 찾기 어려운 고난의 시간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올봄, 엄마가 참여한 1월생 엄마 모임이 아빠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어. 강남구 보건소가 주관해서 같은 동네 엄마들에게 육아 관련 교육을 제공하고 서로 기댈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주는 사업이었어.
서로의 아이가 뒤집기를 했는지, 요즘 잠은 어떻게 자는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이런 작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또 서로의 집을 방문할 때 작은 깜짝 선물을 주기도 하는 등 공동체의 온기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모임이었어.
아빠가 놀란 것 중 하나는 이거야. 엄마들이 나누는 다양한 육아 팁들이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육아 난이도에 큰 영향을 미치더라는 것!
예를 들어, 낮잠 잘 재우는 팁이라던지, 이유식이나 분유 관련 각자의 노하우들이 실제로 너의 하루하루에 꽤 다양한 영향을 미치더라.
이런 건 구글 검색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아. 육아 카페와 블로그를 아무리 뒤져도 “지금 이 시기의 너”에게 딱 맞는 정답은 찾기 어렵지.
강남 엄마 모임에서 나오는 비슷한 시기, 비슷한 아이와 함께 하루를 살아낸 누군가의 10초짜리 조언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고 실용적이었어.
앞으로도 같은 월령의 아이 10여 명이 실시간으로 생산하는 육아 실전 꿀팁은 너를 키우는데 꾸준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엄마는 매월 대략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엄마모임에 참석하고 있어. 아빠는 엄마가 엄마모임에 다녀온 날이면 표정이 조금 더 밝아지는 걸 느껴.
아이가 잘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어떻게 하면 육아를 더 잘할 수 있을지 같은 정보 때문만이 아니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감정, 이런 공감들이 힘든 육아 과정에서 엄마의 마음을 지탱해 주는 커다란 완충장치가 되어주고 있었던 거 같아.
육아는 정말로 너무 힘들고 외롭거든. 특히 혼자 하는 육아는 더더욱 그래. 아빠와 엄마 둘만으로도 종종 버거운 순간이 와. 그럴 때 이렇게 같은 월령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작은 커뮤니티는 부모의 감정적 균형을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 같은 역할을 해줘.
아빠는 그게 참 고맙더라. 엄마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엄마가 항상 속할 수 있는 열한 명의 엄마가 모인 강엄모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아들, 오늘 그 시끌벅적한 송년회 자리에서, 아빠는 너와 친구들이 서로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어.
너는 아직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곳이 네가 태어나 처음 만난 ‘사회’이자 너를 지켜줄 ‘마을’의 시작이 아닐까 싶어.
세상은 앞으로도 더 경쟁적으로 변하고 더 빠르게 변할 거야. 이런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유용한 조언은 "남들보다 앞서가라"일지 몰라.
그렇지만 아빠가 오늘 하루 짧게, 그리고 엄마가 경험한 이 작은 공동체를 보니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남들과 함께 커뮤니티로써 성장하는 게 아닐까 싶어.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네가 살아갈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처럼 순식간에 끝나는 게임이 아니야. 아주 긴 호흡으로 수많은 언덕을 넘어야 하는 마라톤과 같지.
그 긴 여정에서 너의 페이스를 맞춰주고, 물을 건네주고, 때로는 넘어진 너를 일으켜 세워줄 ‘너만의 커뮤니티’가 있다면 너는 훨씬 더 즐겁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아들, 네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주렴, 아빠는 네가 똑똑한 머리를 채우는 것만큼이나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을 얻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네가 먼저 친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네가 가진 작은 것을 친구와 나눌 때, 너의 마을은 만들어지기 시작할 거야.
오늘 엄마와 아빠가 강엄모 송년회에서 느낀 이 든든한 안정감이, 먼 훗날 너에게도 꼭 찾아오길 바란다. 세상이 아무리 차갑게 변해도, 서로의 온기로 그 추위를 녹일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랄게.
이유식과 분유 순서가 바뀌었지만 제때 잘 자는 너를 보며, 사랑하는 아빠가
2025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