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애도

by 나무

만나지 못했으나 반가웠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집 대문 밖에 가구와 물건들이 얼기설기 쌓여있다. 집은 옛날식 주택이긴 하지만 관리가 잘 된 집처럼 보였다. 야트막한 담으로 둘러싸인 정돈된 마당은 주인의 성실함과 깔끔한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연을 아는 동네 이웃들이 가끔 들러서 안을 기웃거리며 눈물을 훔치거나 안타까운 표정으로 혀를 차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살던 노인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 채 한 참 방치돼 있다가 우편물이 쌓여가는 걸 이상하게 여긴 우편배달부에 의해 발견됐기 때문이다. 애도와 추모는 마스크를 끼고 작업복으로 중무장을 한 채 노인의 흔적을 열심히 지우고 있었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과 죽은 노인의 작품으로 보이는 붓글씨들이 숙달된 몸놀림으로 척척 자루에 담겼다.


“오늘 잘만 하면 일 끝나고 남들 저녁 먹는 시간에 저녁 먹을 수 있겠다. 남들 다 가는 사우나도 가면 좋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추모가 말했다.


“아이고, 그놈의 남들, 넌 왜 맨날 남들 타령이야? 왜, 남들 운동할 때 운동 좀 하지?

그리고 남들 결혼할 때 왜 넌…….”


추모의 배를 바라보며 놀리던 애도가 아차 싶었는지 시선을 돌려 책상에 놓인 책과 노트들을 주섬주섬 자루에 담았다.


“너 말 잘했다. 내가 왜 결혼 생각이 없는데? 다 너 때문이야, 짜샤! 죽고 못 살아 결혼했으면서, 아니, 네 와이프는 유리그릇이냐? 맨날 깨질까 봐 노심초사……, 널 보면 결혼은 벌 받는 거 같아. 학교 다닐 때 받는 벌이야, 학교 종이 땡땡땡 치면 끝나기나하지. 선생님도 퇴근해야 하니까. 근데 이건 뭐 끝이 없어요, 끝이. 난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게 오늘의 날씨야. 근데 결혼하면 마누라 기분이 오늘의 날씨가 될 거 같아. 종일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그런 날씨 말이야. 내가 너, 사라 씨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런데 둘이 별거한다고 했을 때 차라리 서로를 위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너 다시 아파트로 들어가면 나야 뭐 사무실 숙소 혼자 쓰니 편하고 좋지. 다시 합치는 건 네 자유인데 결혼은 사랑이 다가 아니라는 걸 너를 보며 배웠어. 항상 고민 중인 고민중한테 사라 씨에 대해 내가 들은 얘기가 있잖아. 어렸을 적 트라우마에, 거기다가 성격 예민한 작가, 결혼해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달아 유산에…….”


분주히 손을 움직이며 혼잣말처럼 푸념을 늘어놓던 추모는 말실수 한걸 깨닫고 혼자 깜짝 놀랐다. 조용히 고개를 돌리니 애도가 등을 보인 채 미동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며 조심스럽게 애도에게 다가갔다.


“그게… 미안하다. 걱정돼서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사우나 가서 내가 입도 좀 담글 게.”


애도는 여전히 움직이지 안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아, 미안하다고 인마!”


추모가 성큼 다가가 애도의 어깨를 잡았다. 애도의 손에 죽은 노인의 젊은 시절 흑백사진이 들려있었고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이분 완전 미남이셨다. 이때는 자기 최후를 상상이나 했을까!”


애도의 나지막한 읊조림을 들은 추모는 애도가 자기 말을 못 들은 걸 알고 안심했다.


“또 산문 쓰냐? 네 감상문만 없어도 우리 오늘 남들 밥 먹을 때 밥 먹고 사우나 간다. 근데 무슨 나이 든 홀아비 살림이 이렇게 깔끔하냐! 자식들 말하는 싸가지를 보니 지들 아버지한테는 아예 관심 끊고 산 거 같던데.”


추모가 장식장에서 하단에 제자 일동이라고 적힌 감사패를 꺼내 애도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봐, 남의 새끼들은 이렇게 잘 가르쳐놓고 정작 자기 새끼들은 후레 과목만 가르쳐서 후레자식으로 만들었다니까.”


애도는 추모의 말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자루에 담았던 붓글씨 액자를 다시 꺼내 들여다봤다.


“전시회 관람 왔냐? 특수청소부가 가장 경계할 게 뭔지 벌써 잊었어?”


결국, 추모가 큰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근데 이분 왜 목을 맸지?”


책상 위에서 시든 화분을 들여다보던 애도는 거실의 유리문을 활짝 열었다. 폭이 좁은 발코니에 주인을 잃고 생기를 잃은 화초들이 빼곡히 놓여있었다.


작년 봄이었다. 이사한 집에서 화단을 발견하고 그 난리를 겪은 게 벌써 일 년이 되어간다. 심은 화초들이 죽고 다시 심기를 반복하던 사라가 결국 폭발했었다. 그때 애도가 할 수 있던 말은 제발, 이제 그만하자였다. 사라가 폭발해서 ‘그만하자’라고 했는지 아니면 자신이 ‘그만하자’라고 해서 사라가 폭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라는 화단에 심긴 것뿐만 아니라 이미 죽어 없어진 화초와 채소 모종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애도가 ‘그거, 저거’라고 얘기할 때마다 사라는 아이에게 일러주듯 천천히 정확한 이름들을 다시 말해주었다. 애도에게는 그저 사소한 풀들이었고 사라에게는 그 이상이었다.


‘그때 내가 사라에게 어떡했더라, 그래, 얼굴을 묻고 울던 사라의 손에서 모종삽을 빼앗아 던져버렸지, 그때 내가 그랬는데…….’


노인의 죽어가는 화초들을 보면서 애도는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이 미어졌다. ‘왜, 작은 것들은, 여린 것들은, 나한테 오면… 왜, 다 죽냐고!’ 실성한 듯 소리치는 사라의 외침이 아직도 귀에서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뭔가 결심한 듯 애도는 노인이 가꾸던 시든 화초들을 모두 뽑아 자루에 담았다. 얼굴이 점점 상기되고 손도 더 빨라졌다. 그런 그를 추모가 힐긋 보았다.


“그래, 너도 얼른 밥 먹고 사우나 가고 싶지?”


추모는 빙긋 웃으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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