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사라와 민중

by 나무

넌 혼자가 아니야

이 말이 간절해서 혼자 울고 있다






사라의 설명은 민중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그냥 사라의 입에서 ‘사실 이건 몰래카메라였어!’ 같은 말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므로……, 저 거지들을 화단에 심었다는 거지?”


민중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어조로 사라에게 되물었다.

두 사람의 말에 촉각을 세운 채 듣고 있던 메론빙수는 욱, 하고 화가 올라왔다. ‘거지’라는 말에 발끈한 그녀는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화단에서 발하나를 뺐다. 당장 달려가 민중의 멱살이라도 잡아챌 기세였다. 처치곤란이 메론빙수의 입을 막고 화단 밖으로 나가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응”


천진한 어조로 사라가 대답했다. 이번엔 처치곤란의 눈이 커졌다.


“뭐? 그럼 우리가 정말 그지라는 거야?”


모자를 벗어서 내던진 그가 화단에서 나오려고 발을 빼자 이번에는 멜론빙수가 그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사라야, 나랑 당장 병원 가자. 너 글도 잘 쓰고……, 특별하다는 거 아는데, 그래서 내가 너 좋아해. 그래도 이건 아니지. 정말, 이건 아니지. 빨리 옷 입어, 가자, 병원에.”


민중이 벌떡 일어나서 외투를 입었다. 사라도 민중을 따라서 일어섰다. 그리고 외투의 단추를 잠그는 민중을 껴안았다.


“날 좀 이해해 줘. 민중아, 이대로는 살 수 없어.”

“그래, 그러니까 가서 진단받고 약 먹자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게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죽는 거야. 그래서 숨고 움츠러들고……, 죽으려고도 했어! 너도 알잖아. 그 어린것들이 자꾸 죽으니까, 귀한 이도, 아기들도…….”


“너 아직도 그 기억에서 헤매고 있는 거야?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건데? 그건 다 사고야. 네가 그냥 운이 없었던 거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 바보야!”


민중이 사라의 어깨를 움켜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사라의 뺨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번엔 피하지 않을 거야. 한 번 싸워볼 거야. 눈 부릅뜨고 똑똑히 볼 거야. 그 죽음을 내가, 한 번 죽여볼 거야!”


민중은 사라의 말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죽여볼 거야’ 같은 말은 사라의 말이 아니었다. 아니 사라의 말이 아니어야 했다.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이곳에서 얼른 나가고 싶기도 했다. 나쁜 일을 저지른 공범이 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라의 마음을 이해 못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사라야! 나, 지금도 귀한이 모습이 생생해. 나도 귀한이, 내 친동생처럼 예뻐했어. 네가 울 때, 나도 진심으로 같이 울었다고. 너 계속 유산될 때도 내 맘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몰라. 너랑 같이 걸어갈 때나 백화점에 갈 때 유아용품점이 보이면 내 가슴이 철렁했어. 나 어린이집 교사인데도, 매일매일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생기는 얘깃거리가 산더미인데 너한테 그런 이야기 편하게 할 수도 없었어. 너 그거 알아? 너하고 친구 하려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것들에 내 맘도 네 맘도 같이 무너지는 걸 각오해야 해.”


“그래서, 많이 힘들었니?”


“그래, 힘들다 마다. 어릴 때부터 세상 짐 다 지고 다니는 너와 어울리는 게 내 성격으로는 보통 일 아니었어. 그런데 이 정도는 아니었어. 이건 있잖아, 큰 죄를 짓는 기분이야. 너 이런 애 아니잖아.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는 네가. 어떻게 산 사람을, 그것도 둘씩이나……, 생매장을…….”


“그거 아냐, 민중아, 그런 거 아냐.”


“죽는 걸 본다며? 그걸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 이제 누가 내 앞에서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까딱 안 할 자신이 있다, 뭐 그런 거!”


“그게 다가 아냐. 처치곤란과 메론빙수는 내가 떠나보낸 그들처럼 어리지도 약하지도 않아. 반대로 아주 강한 사람들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억척스러운 사람들이라고. 삶에 대한 미련도 없어. 그래서 살 수 있을 거야. 분명히 살 수 있을 거야.”


“뭐? 처치? 메론? 아, 정말……, 이건 대체 호러냐? 아니면 코미디? 정말, 나까지 미쳐버릴 거 같아. 진짜, 고기 맛 다 떨어졌다. 저 사람들이 저기서 그냥 저렇게 버티고만 있을 거 같아? 금방 도망가겠지, 정말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말을 뱉자마자 민중은 뭔가 깨달은 듯 깜짝 놀랐다. 그리고 처치곤란과 멜론빙수를 바라보았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 그녀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이 일은 못 본 거로 하자. 난 오늘 이 집에 온 적도 없는 거로. 이제 다시는 너한테 연락 못 할 거 같아. 나, 네 친구 이제 그만할래.”


민중이 가방을 들고 나가려다 시선을 다시 유리문 밖 처치곤란과 멜론빙수에게 돌렸다. 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떨궜다.


“애도 씨는 알고 있어?”


“아니, 아직.”


“애도 씨한테 뭐라 설명할 건데? 그 사람이 이해하겠어? 제 정신이 아니라면 모를까. 참, 잘도 합치겠다.”


현관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예상대로 결론이 났다. 사라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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