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방향을 묻습니다
가리키는 곳에는 항상 흔들리는 손가락이 있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 위에 수건을 걸친 채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낸 애도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추모에게 캔 하나를 건넸다.
특수청소 일을 먼저 제안한 건 애도였다. 그리고 좌충우돌을 겪으며 벌써 5년이 흘렀다. 이 바닥에서 두 사람은 이미 베테랑이 됐다. 얼마 전, 사무실 확장을 해서 비품 창고와 원룸으로 된 직원용 숙소도 따로 마련했다. 숙소는 미혼인 추모가 거의 혼자 사용하다가 애도가 사라와 별거를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지내고 있었다.
“이제 합치면 다시 신혼이다. 그치?”
“신혼? 결혼한 지 몇 년인데 신혼이야?”
“애가 없으면 신혼이지!”
무심코 말을 뱉어놓고 추모는 아차,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만회하려고 그는 애도의 눈치를 보며 냉장고에서 맥주를 더 꺼내왔다.
“괜찮아, 너무 쫄지 마. 그런 말로 스트레스받는 단계도 아니야. 단련이 된 건지 포기를 한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야말로 지금 고민중과 권태기 시작인 거 같아서 고민중이야. 어제는 어디서 못 볼걸 본 사람처럼 같이 있어도 멍하니 딴생각하고 있고, 왜 그러냐고 물으면 화내고, 하여튼 여자는 너무 어려워. 너무 복잡해. 어떤 점에서 너와 사라 씨가 존경스럽기까지 해. 사실 별거가 얼마나 좋은 기회냐? 이혼은 또 어떻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 아니냐고! 신에 내게 주신 또 한 번의 기회라는 거지. 근데 그걸 마다해? 다시 그 어둠과 공포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대체 왜?”
애도와 사라가 별거를 결정한 건 화단에 심는 족족 화초들이 죽어가서 사라의 예민함과 집착이 극에 달한 이후였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애도는 무엇이 그 균열의 시작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연달아 일어난 세 번의 유산이 그 시작인지, 아니면 사라가 어릴 때 겪은 충격적 사건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건지, 다시 애도가 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지만 과연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균열이 사라진 걸까, 이런 불안이 애도의 마음속에서 증폭됐다.
“내일 출장 준비는 다 된 거지?”
추모가 세 번째 맥주 캔을 따면서 화제를 돌렸다.
“또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이번엔 뭐야? 자살? 고독사?”
애도가 맥주를 마시다가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웬일이냐? 평소에 죽은 사람들에 관해서 함부로 말하면 엄청 화내던 녀석이……, 너도 이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어졌다고 변했구나! 하하, 좀 낯설다.”
애도는 추모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다 빈 맥주 캔을 구겼다.
“저번에 이상한 걸 봤어. 젊은 여자가 죽은 빌라에서, 우르미를 봤어.”
“우르미? 아, 구더기? 그거야 가끔 겪는 일인데 뭐, 새삼스럽게…….”
“그런데 그게, 평소의 우르미와 많이 달랐어. 크고 까맣고 냄새나고 징그러웠어. 그게 분명히 사람이 누워있던 매트리스 위에 우글우글 모여있었는데 순식간에 번지더니 창밖으로 하수구로, 구멍이란 구멍은 다 찾아서 빠져나가는 거야. 끝도 없이 아주 많았어.”
추모가 마시던 맥주 캔을 탁자에 올려놓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애도를 바라봤다.
“고물고물 기어 다니는 우르미들이 순식간에 뭐라고? 아무래도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네 말대로라면 우르미들이 롤러블레이드라도 타고 있었다는 거야? 이 일 하면서 상담받는 사람도 많잖아. 생각나? 우리 처음 이 일 시작할 때 같이 일하고 와서 밥도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고 악몽도 많이 꾸고 그랬잖아. 유품 정리할 때 눈물 흘릴 때도 많았는데, 그때는 정말 이렇게 오래 버틸지 몰랐어. 이젠 좀 인이 박여서 담담해지고 괜찮아졌는데, 네가 헛것이 보이는 게 아무래도 직업병이 온 것 같다.”
애도는 괴로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나도 모르겠어, 내가 본 게 대체 뭔지. 정말 헛것을 봤을 수도 있지. 그래 내가 요즘 무리했나 봐.”
애도는 구긴 맥주 캔을 손으로 일그러트린 후 멀리 떨어져 있는 휴지통에 던졌다. 찌그러진 캔은 휴지통과는 한참 떨어진 곳에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늘 명중이었는데…….’
애도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두통과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 내가 잘못 본 것 같아. 헛것을 본 게 맞아!”
애도는 목련빌라 102호, 성실의 방을 치우다 본 일기가 떠올랐다.
‘세상 사람들 다 나처럼 고독해져라! 똑같이 고통받다가 죽어버려라! 절대 아무도 용서하지 말아라! 제발, 다들 비참해져라. 제발, 제발, 다들 서로를 원망해라!’
다시 그 현장에 와 있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상표가 그대로 붙어있던 원피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웃고 있는 여자의 사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는 다짐과 약속들이 단정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적혀있던 색색의 포스트잇들, 그것은 흡사 숭덩숭덩 빠져버린 새의 깃털 같았다. 더는 하늘을 날 수 없어 땅에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깃털……. 여자의 마지막 일기는 무슨 주문처럼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을 맞을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애도는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현재의 불행을 남 탓으로 여기며 누군가를 끝없이 원망하는 사람, 다른 하나는 모든 게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 그런데 그 여자의 원망과 저주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는지 애도 자신도 당황스러웠다.
‘너무나 흉물스럽고 역한 냄새가 나던 우르미들 때문인가?’
애도는 자신도 모르게 손등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 여자가 바란 건 그저 따뜻한 죽 한 그릇이었는데, 그거 하나면 모두를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그게 그렇게 간절했을까?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누군가 아주 사소한 관심 한 번이라도 그녀에게 주었으면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 않았을 테고 그런 저주나 원망이 가득한 일기로 일생의 마지막을 마치지 않았을 텐데…….’
추모가 애도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너 그동안 맘고생 많았잖아. 과부하 오고도 남지. 그 좋은 은행 때려치우고 갑자기 청소부라니, 지나가는 개도 말릴 일이야. 너 처음에 은행 입사했을 때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알아? 어쨌든 너 아니었으면 나도 바로 이 직업 포기했을 걸. 네가 묵묵히 버텨준 덕분이지. 처음에 청소복 입고 일하러 갈 때마다 사람들이 우습게 보고 하대하고, 그때 나 어른 되고 처음 울었다. 넌 나보다 더 힘들었잖아. 결혼 생활은 또 얼마나 파란만장했냐. 내가 고민중을 좋아하는 게, 애가 단순해요. 이름만 고민중이야. 세상에 고민이 별로 없어. 금방 잊어먹어. 좋은 일도 금방 잊고 나쁜 일은 더 빨리 까먹어. 맛있는 거 사주면 그저 하하 호호, 배만 부르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나 봐. 그런데 사라 씨는 반대잖아. 민중이하고 사라 씨,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됐나 가끔 신기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가보지도 않은 저 너머 세상을 기웃대며 아는 척하는 모양새라 조심스럽긴 한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이 일이 그래도 견딜만한 건 버리고 닦으면 깨끗해지고 윤이 난다는 거야. 그런데 법으로 묶인 부부 관계는 단순한 청소로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 어떤 책에서 ‘일상의 형벌’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어. 그러니까 부부는 좁은 감옥에서 형을 함께 사는 감방 동기 같은 거 아닐까? 이 꼴 저 꼴 다 볼 수밖에 없는데 싫어도 같이 있어야 하는……. 미안, 내가 말이 너무 많았다. 자냐?”
취기가 올라와서인지 애도는 소파에 기대서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더니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야! 왜 그래? 어디 아파?”
신음을 내며 애도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양손을 머리에서 눈으로 옮기더니 다음에는 귀와 코로 살이 벌게지도록 비비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아니 아주 미친 사람처럼 온 힘을 다해 얼굴과 몸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문대는 애도의 행동이 너무 낯설고 심각해 보였다. 추모가 애도의 손을 붙들었다.
“그만해! 그러다가 살 점 떨어지겠어!”
“괜찮아, 작업할 때 뭔가 들어간 거 같아.”
“내일 같이 병원 가보자,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괜찮아, 이제 좀 나아졌어. 걱정하지 말고 어서 자.”
“그런데 얼굴에 그게 뭐야? 색깔이…….”
추모는 애도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애도가 심하게 비벼서 벌게졌던 피부가 이제는 붉은빛이 아니었다.
“얼굴? 몰라, 그냥 너무 눈을 세게 비벼서 그런가 봐. 눈물이 자꾸 흘러.”
“그러니까, 그 눈물 얘기하는 거야! 눈물이 검다고! 아주 까맣다고!”
추모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애도는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손에 검은 물이 흥건했다. 벽에 걸린 거울로 다가가 섰다. 얼굴에는 검은 눈물이 번져서 마치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섬뜩했다. 거울 앞에서 뒷걸음질 쳤다.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저 떨리고 소름이 끼쳤다.
“추모야! 이게 뭐지? 나 대체 왜 이런 거야? 뭘 잘못 먹었나?”
애도가 추모에게 다가서자 추모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세상에! 애도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가까이 오지 마! 나 지금 너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