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식물성이라 좋아
진짜 같기도 가짜 같기도 한 오이비누 냄새가 나서 좋아
“구름쌤! 원장님이 찾아.”
이슬반 교사가 교실 문을 열더니 민중을 향해 머리에 손가락으로 뿔을 만들었다.
“또? 오늘은 또 왜?”
민중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
‘오늘 아이들은 여전히 개구쟁이들이었지만 별 사고도 없었고 이준이가 민서와 부딪혀서 이마에 살짝 멍이 들었는데 하원할 때 이준이 어머니도 괜찮다고 호호호, 웃었지. 가방에 개인 소지품 다 챙겨서 보냈고 활동한 작품들도 보조 가방에 넣었고…….’
원장실 문을 열기 직전까지 민중은 오늘 지나간 일과를 빠르게 재생했다. 원장이 민중을 보자 한숨을 쉬며 쓰고 있던 돋보기를 벗었다.
“예빈이 어머니 전화 왔어. 예빈이 앞으로 어린이집에서 기저귀 안 했으면 좋겠대. 다른 친구들 다 팬티 입는데 예빈이만 기저귀 입고 있는 게 속상하다셔. 담임한테 말했는데 아직 시정이 안 되는 거 같다고 그러네.”
민중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원장님도 아시겠지만 다 개인차가 있는 거고 예빈이가 속옷에 쉬하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응가라도 하면 그 뒤처리가 너무 오래 걸려요. 어쩔 땐 준비한 활동도 제대로 못 하고 그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신경도 못 쓰고요. 아직 예빈이가 때가 아닌 거 같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원장이 고개를 내 저의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내 아이만 느리다고 생각하니 조급증이 날 만도 해. 엄마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하는 건 날고 뛰고 걷는 또래 아이들 속에서 기어가는 우리 아이를 멍하니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으라는 얘기랑 똑같아. 쌤도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그 마음 이해할 거야. 보조 선생님 지원하라고 할 테니 내일부터 예빈이는 이제 팬티만 입혀요, 오케이?”
"원장님! 그건 가정에서도 부모님이 먼저 노력을 해주셔야…….”
민중의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원장은 다시 돋보기를 쓰고 컴퓨터로 시선을 옮겼다.
교실로 돌아온 민중은 벽에 붙은 사람 신체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람 속에는 심장, 간, 위, 콩팥, 대장, 방광 등등의 장기가 귀엽게 그려져 있었다.
“대체 신은 왜 사람이 똥을 싸게 만든 거야. 난 자격 미달인가 봐, 다 이쁜데 똥은 싫다요.”
민중의 푸념에 옆에 있던 이슬쌤이 한마디 했다.
“겸손하라고, 매일 그 똥을 보면서 나도 별반 다를 게 없구나, 우리 모두 똥을 품고 있는 같은 피조물이구나, 생각하라고.”
“말 된다요. 하긴, 아이들 똥은 어른 거에 비하면 이쁘지.”
민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반응하자 이슬쌤이 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내가 옛날에 혼자 짝사랑하던 교회오빠가 있었거든. 그 오빠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어. 그래도 포기가 안 되는 거야.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고, 내가 완전 폐인이 될 거 같은 거야. 그래서 그 오빠 볼 때마다 보이지 않는 투시경으로 그 오빠 배 속에 있는 똥을 상상했어. 그런데 정말 효과 있었어.”
“아휴, 뭐야 더럽게.”
한바탕 웃고 난 후, 보육교사라는 직업의 고충이야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또 제일 많이 웃는 직업이 아닐까 민중은 생각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면서 아무도 웃지 않는다. 만약 웃고 있으면 정신이 나갔다고 손가락질받을 것이다. 회사에서 책상에 앉아 일하면서 웃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철밥통 공무원들도 웃으며 일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아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다르다. 아이들을 보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교사들 대부분 자주 웃는다. 민중은 아이들이 꽃나무나 풀꽃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본성은 분명 식물성인데 점점 자라 어른이 되면서 동물성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혹시 너무 웃는 것도 직업병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닿다가 시계를 올려봤다.
“퇴근 시간이다!”
***
민중은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사라의 집으로 향했다. 봉지가 바닥에 닿을 듯 꽤 무게가 있었지만,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신학기여서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본 지도 오래고……, 놀라서 기절하면 안 되는데……, 하여튼, 어릴 때부터 사람 맘 쓰이게 하는 재능은 타고났어.’
민중이 벨을 눌렀다. 기척이 없었다. 다시 연거푸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하는 사라의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음성이 들렸다.
“나야 나, 네 죽마고우.”
사라는 예고 없는 민중의 방문에 놀라서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렸다. 베란다로 달려가서 처치곤란과 멜론빙수를 향해 눈짓을 하고 커튼을 닫았다. 처치곤란과 멜론빙수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를 안심시켰다. 사라가 현관문을 열었다.
“서프라이즈!”
민중이 환하게 웃으며 양손에 있는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우리 작가님! 작업 중이었어? 문 여는 데 뭐 이리 오래 걸려?”
민중은 여러 개의 꾸러미들을 꺼내서 식탁 위에 한가득 부려 놓았다.
“우리 어린이집 근처에 갈비 맛있는 집 있다고 했잖아. 너랑 먹으려고 양념갈비 사 왔지. 여기서 파는 갈비 먹고 나면 다른 식당 못 가. 내가 연애한다고 정신 팔려서, 너한테 너무 소홀한 거 같아 미안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해서 겸사겸사…….”
민중이 자기 집처럼 능숙하게 프라이팬을 꺼내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사라는 애써 웃으며 봉지에서 꺼낸 야채와 반찬을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려놨다. 그러면서 온통 신경은 처치곤란과 메론빙수에게 가 있었다. 대책 없이 저지른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빨리 사라의 화단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왕 다시 살기로 결정했면 빨리 합치지그래. 둘 다 왜 그렇게 망설이는 거야? 내가 항상 말했지?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이 고민중처럼 빨리 늙는다고!”
“그렇게 얘기가 된 게 얼마 안 돼.”
“알아, 그냥 심통 한 번 부려봤어. 네 부부 별거 전에는 같이 캠핑도 다니고 좋았는데……. 사실 그때는 은근히 추모 씨랑 단둘이 하는 데이트가 그립기도 했거든. 근데 이제 알겠어. 둘이 노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지겹다, 재미도 없고. 둘이서 할 얘기도 없어.”
민중이 구운 고기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고 깻잎으로 쌈을 싸서 사라의 입에 넣었다.
“어때? 맛있지?”
사라가 잔뜩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를 씹었다.
“환기 좀 시키자.”
민중이 쌈을 싸서 자신의 입에 하나 가득 넣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발코니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사라가 놀라서 민중을 쫓아갔다.
“민중아, 잠깐만!”
민중이 커튼을 젖히고 유리문을 힘 있게 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입에 물고 있던 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민중이 뒤로 주춤 물러섰다. 처치곤란이 어색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멜론빙수가 손을 흔들었다. 벌어져 있는 민중의 입이 닫히지 않았다.
“민중아, 진정하고 이쪽으로…….”
사라가 민중의 팔을 붙잡았다. 민중이 정색을 하며 사라 손을 뿌리쳤다.
“너, 저게……, 대체 뭐야? 저 사람들 누구야? 무슨 짓을 한 거야? 뭐 행위예술 그런 거야?”
사라가 민중의 손을 잡아끌고 가서 식탁 의자에 앉히고 사라도 맞은편에 앉았다. 민중은 상기된 얼굴로 컵에 물을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화단 속 처치곤란과 메론빙수는 죄지은 사람처럼 몸을 움츠린 채 멀리서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꼴이 그렇게 황당한가? 하긴, 놀랄만하지. 그래도 초면에 인사도 없이……, 입에 문 쌈은 왜 떨어뜨리고 지랄이야. 생각해 보니 열받네. 고기 굽는 냄새 풍기며 사람 약 올린 게 누군데, 화낼 사람은 우리 아냐?”
메론빙수의 격앙된 소리에 처치곤란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일부러 약을 올린 건 아니지. 그리고 사실, 난 배도 안 고파, 고기 냄새가 오히려 역해.”
“그래? 신기하네. 난 아무래도 냉장고에서 음식 훔쳐 먹어서 그런가 봐. 저 고용주가 알면 당장 쫓아낼까? 에잇, 나도 몰라. 쫓겨나면 그만이지.”
“우리가 뭔 짓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새벽에 오줌 누고 똥 누고 물 내리는 소리 다 들었을걸. 원래 작가들이 엄청 예민해. 그런데 저쪽, 분위기가 영 별로네.”
처치곤란이 목을 길게 빼고 사라와 민중의 표정을 살폈다.
“세상에 비밀은 없지.”
“그래도 친한 친구 같은데, 이해해 주지 않을까?”
“글쎄, 우리 고용주처럼 사고구조가 특별하면 몰라도 보통 사람이면 절대 용납 못 하지. 처치곤란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 돼? 저 여자, 아까 입에 물고 있던 상추쌈 떨어뜨릴 때 알아봤어. 그냥 보통 사람이야. 내 말인즉 저 여자가 옳아.”
“메론빙수! 말 좀 그만해, 뭐라고 하는지 좀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