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의 순기능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은 마치 껍데기가 씐 듯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인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나는 이 표현이 주는 어감이 제법 마음에 든다. 콩과 껍데기가 틈 없이 맞닿아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손깍지를 낀 듯 서로에게 꼭 맞는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콩깍지는 한 사람을 향해 초점이 맞춰진 나만의 맞춤형 렌즈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사랑이 마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정이라고 가정한다면 콩깍지는 보조바퀴일 것이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에게 양 옆 보조바퀴는 안정감을 줌과 동시에 혼자서도 탈 수 있게 하는 감각을 길러준다. 콩깍지도 어쩌면 같을 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콩깍지는 모든 시선을 사랑으로 향하게 하여 서로를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에서 안정감을 제공함과 동시에 서툰 사랑의 시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관점이 바뀌면 인식도 달라진다. 현재가 중요한 이에게 비워진 물 잔은 그저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는 공허한 존재이지만, 미래를 향해 있는 사람에게는 물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마찬가지로, 콩깍지가 씐 연인의 눈에는 상대방의 틈과 허술함마저도 애정 어린 모습으로 비친다. 식사를 하다 밥을 흘리는 모습도, 한없이 늦잠을 자는 모습도, 그리고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조차 사랑스럽다. 함께하는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연인의 빈틈은 오히려 함께 채워 나갈 수 있는 기회임에 반갑다.
하지만 언젠가 콩깍지는 벗겨진다. 보조바퀴를 떼어낸 자전거가 온전히 자신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그제야 홀로 오롯이 사랑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게 된다. 콩깍지가 씐 시선이 상대를 향한 강렬한 몰입과 집중의 순간이라면, 콩깍지가 벗겨진 후의 시선은 더 깊이 있고 단단한 사랑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보조바퀴를 뗀다면 우리는 움직임의 한계를 벗어나 비로소 더욱 자유롭고 적극적인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만의 속도 그리고 리듬을 가지고 더 넓고 다양한 길을 달릴 준비가 된 것이다. 콩깍지가 벗겨진 이후에도 여전히 같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 한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