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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희 Feb 04. 2021

엄마와 새에 관한 진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아빠는 이따금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온다. 철커덕 문 따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빠가 온 모양이다.

"관희, 내가 새 한 마리 데리고 왔어"

"웬 새?"


아빠의 두 손에는 눈을 땡그랗게 뜬 잿빛 새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새를 어떻게 잡아 왔어? 안 날아가?"

"길가에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더라고. 난 무슨 돌멩이인 줄 알았어. 근데 옆쪽에서 고양이가 계속 노려보고 있는 거야. 얼른 번쩍 들어 올렸지"


아빠가 새를 베란다에 내려놨다. 새는 가만히 앉아 검은깨 같은 눈만 말똥말똥 굴리고 있었다.

"근데 이게 뭔 새야? 처음 보는 새네"

"나도 몰라, 우리 산책 갈 때 나무 위에서 맨날 노래 부르는 그 새 같은데"

"그런가? 엄청 예쁘게 생겼네"


비둘기나 까치, 혹은 참새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새는 아니었다. 크기는 새끼 비둘기만 했고, 깜찍함과 터프함을 동시에 소유한 듯한 외모에서는 매력이 줄줄 흘러넘쳤다. 특히 귀 근처의 밤색 얼룩무늬는 어느 저명한 예술가가 물감을 찍어 바른 듯했는데, 잿빛 깃털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 자꾸만 눈길을 잡아당겼다.

"근데 얘 어떻게 하려고?"

"우선 배고플 텐데 밥을 줘야지"


아빠는 밥솥에서 밥을 한 줌 쥐어와서는 천천히 한 톨씩 떼어내 새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새가 과연 쌀밥을 먹을까 했던 나의 우려와는 달리, 기다란 부리에 밥풀까지 묻혀가며 야금야금 먹어 치웠다. 아빠와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오! 밥 먹으니까 조금씩 움직인다!"

"이제는 날 수 있으려나"


부리만 움직이던 새가 총총걸음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리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날개를 다쳤거나 못 먹어서 기운이 없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잠시 새가 앉아 쉬는 듯 보여서 아빠가 왼쪽 날개를 만졌다. 미동도 없었다. 그다음엔 오른쪽 날개를 만졌다. 그러자 날개를 부비적 거리며 왼쪽 방향으로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오른쪽 날개를 다쳤나 보네, 쯧쯧"

"그럼 얘 어떻게 해? 날개 나으려면 시간 좀 걸릴 텐데"

아빠는 아무 말 없이 계속 밥풀을 먹여주었고 나는 흐뭇하게 새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베란다에서 날개 나을 때까지만 키울까?"

"니 엄마 알면 난리 난다"

"하긴..."


상상만으로도 엄마의 잔소리가 고막을 뚫고 흘러들어 나의 중추신경계를 망가트리는 듯했다. 아마도 아빠는 새를 들어 올린 그 순간 엄마의 잔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을 것이다. 일종의 반사 신경처럼.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밖으로 나가 적당한 장소를 탐색했다. 지상에 놓아주면 고양이 혹은 족제비에게 잡아먹히거나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 높은 곳을 찾았다. 아파트 주차장 뒤편의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저 있는 높고 작은 정원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아빠는 아끼는 보물을 내려놓듯이 살포시 새를 놓아주며 말했다.


잘가라. 꼭 살아야 해.


부모님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분주히 저녁을 차렸고, 세 가족이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아빠가 말했다.

"새가 잘 살아 있으려나, 자꾸 마음에 걸리네"

엄마가 "웬 새?"라고 묻길래 내가 대답해주었다.

"낮에 아빠가 날개 다친 새를 집에 대려왔었는데, 엄마한테 욕먹을까 봐 밥만 후딱 먹이고 위쪽 정원에 풀어줬어"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내가 왜 뭐라 그래? 날개 다친 새였으면 보살펴 줬어야지!"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비아냥거렸다.

"뻥치지 마, 지금 여기 새가 있었으면 난리법석에 잔소리 몇 바가지 쏟아 냈을 거 아냐"

아빠가 어느 정도 내 의견에 동조한다는 뉘앙스를 풍기자 엄마가 정색하며 얼굴을 붉혔다.

"이 남자들이 아주 날 몰상식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만드네!"


가만히 헤아려보니 우리 엄마는 철딱서니 없는 우리 부자를 돌보느라 마귀할멈 역할을 담당했을 뿐,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또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지레 겁을 먹고는 무고한 엄마에게 뒤집어 씌운 꼴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엄마를 떠 볼 생각에 "지금 나가서 새 다시 찾아볼까"라고 말하자 엄마는 "찾아서 있으면 데리고 와"라며 성을 냈다. 이미 밤이 깊어 나가지 않았다. 지금 쯤이면 총총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겠지.


다음날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는 길에 아빠가 새를 찾아봤다고 했다. 역시나 새는 없었다고 한다.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우리가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잘 헤아렸으면. 우리가 준 밥풀의 힘을 얻어 새가 훨훨 잘 날아갔으면.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 새가 생각나서 찾아본 결과, 새의 정체는 직박구리였다. 나무에 앉아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하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직박구리. 매번 아파트 단지에서 상쾌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동네 뒷산을 노닐며 등산객들의 발걸음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가 바로 직박구리였다.


엄마에게 미안하고, 직박구리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이제는 엄마를 좀 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고, 어디서든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직박구리를 떠올릴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잠시 스친 작은 인연 직박구리. 긴 부리에 밥풀을 묻혀가며 뻐끔거리던 귀여운 직박구리.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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